메뉴 건너뛰기

close

방관자 효과

 

심리학 용어 중 '방관자 효과'란 말이 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1944년, 키티 제노비스가 뉴욕 시의 자기 집 근처에서 오전 3시 30분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그녀가 격렬하게 반항을 했기에 강도와의 사투는 30분 이상 계속 되었는데 주변의 40가구에서 그 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누구도 그녀를 구하려고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그녀는 그대로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달리와 라테인 실험을 보면 어떤 사람이 위급상황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일 경우에는 책임이 분산되며 방관하게 되나 어떤 이의 위급상황을 나 혼자만 보았을 경우는 대부분 그 사람을 돕게 되는 실험결과를 얻었다. 즉, 방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그들이 악해서라기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 집단의 심리는 그렇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황의 힘이다.

 

지하철 영웅

 

그러나 상황이 모든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하철 영웅들이다. 철로에 떨어진 5살 아이를 보고 들어오는 열차 소리가 들리는데도 철로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아이를 구해낸 고등학생 이야기나 일본 지하철에서 취객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우리 귀에 들려온다.

 

그들은 방관자 효과 속에 군중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들은 특별한 사명감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 눈에 위험에 처한 사람이 줌으로 당긴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당연히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속 방관자 효과

 

한국사회는 해방과 미군정, 독재정부를 거치며 부당한 권력에 마구 휘둘리며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때론 방관자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기도 하였으나 때론 들풀처럼 일어나 폭력에 저항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민주 시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419혁명, 전태일 열사의 죽음, 5월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 97년 평화적 정권교체, 2002년 효순미선이 촛불,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탄핵반대 촛불,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정국....

 

이러한 사건들을 거치며 우리 국민들은 조금씩 조금씩 민주주의를 학습해왔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아픔에 대해 많은 시간 방관자의 모습으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87년 항쟁 이후 독재 대 민주의 전선이 김영삼씨의 3당야합을 통해 허물어지면서 한국사회는 지역감정이란 망령에 휩싸여 상식과  정의, 진실이 휴짓조각처럼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성공만 하면 모든 부패와 부정은 눈감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양심은 썩어 뭉드러져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비상식적인 사회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통과 신음 속에 죽어갔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방관자였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모두에게 분산되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형국에 있었다.

 

한국사회의 지하철 영웅

 

그런데 갑자기 책임지려는 정치인이 나타난 것이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정의와 양심을 버리고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희생을 삶의 기본 가치로 설정하고 원칙과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한 정치인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노무현의 출연이었다.

 

그의 출연은 우리 모두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역구도로 인해 어떠한 정책도 상식적으로 처리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계속 고통받고 있는데 어느 정당도, 어느 정치인도, 어느 집단도 이 문제를 책임지지 않았다. 모두가 피해를 보고 있으니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가 바로 한국의 현주소였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은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지하철 영웅처럼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지역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당선이 보장된 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달려가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지역구도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대통령직을 걸고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하였으나 진보세력도 보수세력도 그 어느 정당도 그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당시 여당조차도.

 

그렇게 정치는 지금까지 지역구도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데도 진보와 보수는 이 문제는 해결하려하지 않고 정책적 시비문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노무현 서거 이후 무얼 해야 하나

 

진보세력과 야당은 검찰조사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좋다. 그런데 가볍게 사과해버리면 우리는 이명박의 입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나? 민주당은 이런 정국 속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나 국민들은 그것이 쇼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어떤 태도로 일관했는지 국민들은 다 지켜봤다.

 

그런데 민주당 국회의원 중 누구도 그랬던 태도에 대해 책임지고 의원직을 내려놓은 사람 하나 없다. 야구선수도 추모 기간동안 도루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판국인데 말이다. 진보세력은 '이명박도 수사하고 노무현도 수사하라'고 외쳐댔으면서 이제와서 추모제를 개최하고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정국 속에 이명박 반대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들고 싶은 욕심만 느껴질 뿐이다.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습관이 되어버린 투쟁. 관성화된 투쟁. 희망이 없는 투쟁.'

 

이것이 소위 진보세력의 현주소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습관이 되어버린 진심없는 투쟁

 

울림이 없는 투쟁이 계속 되고 있다. 사실 적은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그 적은 내 안에서 맘대로 활보하게 내버려두고 밖에 보이는 적을 계속 크게 만들어 사람들을 동원할 생각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절대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진심없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민주당과 진보세력은 자꾸 눈을 밖으로 향하도록 국민을 현혹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은 느긋한데 앞에서 다그치니 형세가 좋지 않다. 국민은 진심으로 추도하고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은 투쟁할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성찰하고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노무현의 투쟁에 대해 방관자로, 때로는 비웃음으로 책임을 회피하던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반성과 성찰은 시작되어야 한다. 진심이 담긴 성찰과 반성에서 국민들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성찰하고 반성하라. 그리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직을 포기하는 선언을 해라. 집회를 잠시 쉬겠다는 선언을 하고 활동가들도 잠시 쉬면서 반성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시위를 많이 하는 것보다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성찰이 담긴 고백이 넘쳐나야 한다. 국민들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여기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

 

                                                                  아름다운마을신문 기자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인수동 아름다운 마을신문과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진보세력의 성찰#노무현#지역주의#지역감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