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亡淚)불타버린 망루 마주 보이는 전선줄에새 몇 마리 앉아 운다어디서 오셨는가지상에서 영원히 철거당한 몸몇 달째 땅속에도 들지 못한 차가운 주검 냉동실에 버려두고 이 저녁 마실 나오셨는가어두운 골목엑스표가 그어진 낮은 집들 사이 허리 굽은 그림자가 지하계단에 앉아 건너편 마천루를 올려다본다 황달이 든 가로등이 넝마처럼 쪼그려 앉은 그림자 벽에 새긴다바람이 분다"차라리 떠나불자"새가 운다[시인의 말 1]살아서는,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를 능멸하고
며느리 앞에서 노인을 굴욕시키던 용산.
존엄은 물론 죽음에 합당한 최소한의 예의도 도리도 없는 나라.
유가족이 예쁘게 색칠한 스티로폼 꽃을 다는 것에도
욕설과 발길질이 돌아오는 우리의 조국.
새가 운다.
망자들이 마실 나왔나 보다.
냉동고 안이 시려워 잠시 도망 나왔나 보다.
저 뜨겁게 얼어붙은 시린 몸뚱이에서 불기를 빼다오.
[시인의 글 2]*부디, 용서하세요
홍수에 떠밀려가는 강처럼 거리는 청회색 하늘로 넘쳐흐르고 마천루가 하늘을 뚫어 먹구름이 줄줄 새어 나오는 도시 한가운데를 전동차가 울부짖으며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내게 던진 여인이 전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바스라지는 검은 꿈속에서 저는 타들어가는 당신을 안고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불길이 목구멍과 식도를 태우고 내장을 그슬리고, 녹아내린 나일론 천에 달라붙은 엉겨 붙은 살점과 타들어간 뼈들이 제멋대로 소리치는 자동차 바퀴 속으로 들어가고 알록달록한 진열장 속 마네킹들의 웃음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병원으로 뛰어가는 동안 당신은 계속 쪼그라들어 마침내 아주 갓난아이처럼 작아졌습니다.
나는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가로등들이 황달이 든 얼굴로 서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의 쪼그려 앉은 그림자를 벽에 비추고 있었습니다. 철석같이 믿은 병원은 당신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진동하듯 떨더니 눈이 스르르 감기는 즈음에야 저는 소리쳐 항의했습니다. 그제서야 의사는 당신 입에 주사바늘을 집어넣었습니다. 저 가녀린 입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다니! 소스라치며 막으려다 그래도 의사의 처치이니까 하고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의사가 건넨 우유병을 아기에게 먹이려는데 우유병이 뚫려 다 새어버렸습니다. 다시 우유병을 가져와 먹이는데 몇 모금 마시다 영영 눈감아버렸습니다.
저는 아기를 흔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 아이를 죽게 한 제 어리석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아기는 제가 죽였습니다. 아기 입술에 물만 축여주었더라도 아니 병원과 의사를 철석같이 믿지만 않았더라도 아기는 곧 기운 차리고 방싯거렸을 겁니다. 더 간절하게 말했어야 합니다. 더 절박하게 행동했어야 합니다. 뜨겁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아아아 모음뿐인 외침과 절규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이 아픈 주검들 앞에 예의도 슬픔도, 하다못해 염치조차 없이 개죽음을 만들고 있는 파렴치한 세상을 날마다 받아들여야 하는 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정말 죄인입니다. 이런 아픈 세상을 아픔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감각이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쫓아내고 하루를 못 기다려 깡패와 공권력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여기 살아남아 님들 앞에 선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살육에 가까운 당신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가공의 방법으로 자행된 공권력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 짓밟고 관계는 금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된 괴물 같은 바벨탑,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어버이입니다.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 몰려 마침내 벼랑에 선 자식에게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벼랑 아래로 밀어낸답니까. 억울하다고, 내 말을 더 들어보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자식에게 어느 어머니가 으름장을 놓으며 각목으로 두들겨 패고 석유를 부은단 말입니까. 국가의 녹을 먹는 권력자는 국민의 어버이여야 합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하루 종일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부모 공양하고 자식 길러내며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사는 가난한 자식들에게 어느 부모가 생존과 죽음의 양자택일만을 강요한답니까. 어느 미친 어버이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가난한 자식들의 것까지 빼앗아 부자 자식에게 보탠답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용납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이런 세상을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서로 사랑하는 대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뼈아픈 세상을 용납하고 있는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제발 저 짓은 내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희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리나니 부디 저희들 스스로 이런 저희들을 용서하게 해 주세요. 그 용서의 힘으로 당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김해자 시인은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 <축제> 등이 있다. 2008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