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은 한국 사회의 금기 영역에 도전해 온 학자다. 2007년 그는 기독교 보수 교리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한 바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그는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율법지상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현세기복적인 한국 기독교의 일그러진 모습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당연히 이런 행동은 한국 사회에 날카롭고 광범위한 파장을 일으켰다.
혹자는 김용옥이 기독교를 비판하자 '자기 전공을 벗어나 타인의 영역에 개입하는 만용'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김용옥의 첫 저서를 보면 그가 일찍부터 기독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남녀 불문 누구나 여자의 보지 구멍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부정하는 창세기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 주어야 하나?" (<여자란 무엇인가>에서)이를 통해 볼 때, 그가 주도하여 유발한 기독교리 논쟁에는 의외로 오랜 시간의 사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김용옥의 현 위치는 어디쯤이고 그의 학문적 의의는 어떤 것일는지?
단아하고 박식한 원로학자 박이문은 그의 역저 <노장사상>(문학과 지성사) 서문에서 유학생 시절의 김용옥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노자>나 <장자>의 텍스트에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그 의미가 선명치 않은 몇 군데 구절이 있었다. 이러던 차에 타이베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김용옥씨를 만난 것은 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원문을 통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자세하고도 정확한 설명을 듣고 많은 것을 비로소 깨쳤다. 나는 젊은 그의 학력에 큰 인상을 받았다."이로부터 얼마 후 김용옥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다.
"20세기 인류 문명의 쓰레기장 같은 한반도에 나는 제4의 유학을 떠나는 결심으로 돌아왔다."최악의 군부독재가 행해지던 전두환 시절, 김용옥이 조국에 돌아오면서 뱉은 말이다. 그의 발언은 범상한 해외 유학파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모두(冒頭) 발언에서 매우 강렬하고도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첫 저서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기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자기 전공에 놀라울 만큼의 치기와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치기건 자부심이건 무엇을 말하든지 논리를 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왜 삭발했는가'에 대해 600장 분량의 논거를 대기도 했다.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부덕한 선배나 스승 연배의 학자들부터 잡도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서양 것 가져다 우려먹는 짓부터 삼가라." "한국의 사학자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부터 제대로 번역해 놓고 다른 일을 하라." 그의 질타는 지당한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학에서 퇴출(?)되었다. 나는 김용옥이 제도권으로 다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대학으로 갔다면 그토록 자유분방하고 생산적인 담론들을 주저 없이 펼치지는 못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민족주의와 한의학, 그리고 노자와 석가와 공자를 섭렵하더니 이제는 기독교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올 3월까지 <중앙 선데이>에 이른바 '경외성서'라고 할 수 있는 <도마복음서>의 주석을 2년에 걸쳐 연재했다.
나는 그가 만약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미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만약 영·정조 시대에 났더라면 실학자 누구보다도 더 예리하고 통섭적인(consilience) 논저를 남겼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60에 이른 나이로 볼 때 여전히 순박하고 정열적이다. 그는 자칭 국보였던 양주동보다 단연 '국보적'이다. 그는 미국의 인문학자 촘스키보다 단연 인문적이다. 그는 연암 박지원에 비해 현저히 국제적이고 다산 정약용에 비해 월등히 창조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석가나 예수를 자기와 대등한 한 인간으로서 대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한국의 학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김용옥이 최고로 여기는 역사상 인물은 누구일까? 그의 저작물을 통해 볼 때 아마도 공자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가 공자를 좋아하는 것은 <논어> 때문이다.
"나는 최근 원고지 1만 장에 이르는 3권짜리 집대성의 <논어한글역주>를 출간하였다. 왜 하필 <논어>인가? 21세기 벽두 오바마가 미 대통령으로서 희망의 사륜(史輪)을 굴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과연 <논어>라는 책이 인류문명의 패러다임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나는 그(인류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논어> 일서에서 발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의 사상적 핵은 퓨리터니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성서>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21세기적 대결은 결국 <성서>와 <논어>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21세기는 과연 <성서>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논어>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 <중앙일보> 2009.1.21 '도올고함'에서공자에 관한 가장 생동감 있는 기록 <논어>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저작물로는 사마천의 <사기>가 꼽힌다. 공자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저작물들이 모두 <사기> 속에 있는 '공자세가'를 원형으로 출발한다. 여기에서 세가란 제후를 의미한다.
유방은 한나라 고조이다. 초나라 패왕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시켜 해하성에서 격파한 유방은 기원전 2세기경의 인물이다. 그는 제왕으로서 파격적으로 공자의 묘에 참배를 했다. 그로부터 1세기 후의 사람인 사마천이 공자를 제후 편에 넣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보통 '픽션'이라고 하면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대소설을 픽션이라 하는 것이다. 픽션과 대조되는 말로 논픽션이 있다. 논픽션이라고 하면 수기나 전기 또는 역사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논픽션이라고 하면 당연히 실화인 줄 안다. 그러나 논픽션이야말로 픽션보다도 어느 면에서 허구성이 클 수도 있다. 사람들은 픽션을 읽을 때 애초부터 픽션인 줄 알고 대한다. 홍길동이나 히스클립을 실제 인물이라고 여기고 <홍길동전>이나 <폭풍의 언덕>을 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자나 예수는 실존 인물로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록해 놓은 <사기>나 <복음서>의 내용은 사실인 줄 알고 읽는다. 그런데 만약 사실인 줄 알고 읽는 책에 허구가 끼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조작물이 된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공자보다 무려 400년 뒤의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치밀하고 정직하다고 한들 어찌 공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기술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마천은 해석되었던 사료를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김용옥은 <사기>나 <복음서> 같은 위대한 역사서들의 후대 조작설을 맹신하는데 당연히 필자는 그의 맹신에 공감한다.
공자는 예수처럼 처녀 잉태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한 번 죽은 후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다. <공자세가>에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옛날이야기에서 흔히 있을 법한 괴력난신(怪力亂神)도 전혀 없다. 쉽게 말해 사마천이 말하는 공자의 삶은 예수에 비해 현저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마천의 <공자세가>가 공자에 관한 진실만을 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위대한 사람에 관한 기술에는 어김없이 신화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세속적 관점에서 매우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노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10대 소녀였다. 공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얻기 위하여 여자를 구해 '야합'한 결과의 소생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우리말로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의 부모가 이구산에서 빌어 그를 낳았다고 해서 이름을 구라 했다는 의견도 있고 그의 이마가 돌산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공자와 그의 아들, 손자 3대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칭 위대하다고 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사마천의 '공자세가'를 비롯한 공자 저작물들에는 실감나는 인간 공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저작물의 필자들은 현실 감각보다는 공자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우선시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논어>는 다르다. 논어에는 공자의 삶이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논어에는 과장은 물론 윤색도 거의 없다. 요컨대 논어는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정직한 텍스트인 것이다. 여기에 논어의 또 다르고 유별난 의의가 있다.
<논어> 속의 공자는 다분히 인간적이다. 논어에 담겨 있는 공자의 어록들에는 인간 공자의 희로애락이 생동한다. 이런 점에서 논어야말로 공자를 전달하는 가장 생동감 있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김용옥은 선언하다시피 말하고 있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축복"이라고.
<논어한글역주>의 가치와 의의"조선사회가 유교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논어>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왕국일 수도 있다. 조선왕조에는 <논어>가 읽힌 적이 없다. 오직 주자집주본(朱子集註本) <논어>만 읽혔다.(...)다시 말해서 주자가 해석해 놓은 <논어>만이 읽힌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에는 놀랍게도 <논어> 주석이 없다. 퇴계도 율곡도 주석을 내지 않았다. 1813년에 완성된 다산의 <논어고금주>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논어>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이 부재했던 것이다. 오직 주자의 <논어> 해석이라는 도그마만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계가 자유로운 신학논쟁을 거부하고 도그마적 성격을 노출시키는 것도 이러한 주자학 전통의 승계선상에 있다." - <중앙일보> 2009.2.4 '도올고함'중에서김용옥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왕왕 듣는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오류나 무리수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오류나 무리수는 천재들이 곧잘 범하는 공통적 속성이다. 부처나 예수라 한들 실수나 무리수가 왜 없었겠는가?
한국 사회는 김용옥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이 꽃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김용옥에게 과분할 정도의 은의를 입었다.
다만 앞으로의 김용옥은 '사람은 누구나 보지 구멍에서 태어난다'는 진리를 부정하는 <창세기>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왜 사람들은 그런 <창세기>를 줄기차게 신봉하는지를 밝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의 정열과 순박성이 끝까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한국 사회에 무거운 에너지를 더 공급해 주기를 감히 요망한다. 이런 작업을 김용옥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