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 코스는 멋진 배를 타고 호핑 투어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전날 저녁 늦게 도착해 하룻밤을 묵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자 가이드가 앞장을 선다. 호핑 투어라니 기대가 되는 말이다. 첫날부터 몇 개의 섬을 돌아볼 것인가. 지난 5월 26일 필리핀 여행 첫날은 세부 섬과 다리로 연결된 막탄섬에서 출발한 이상한 모양의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됐다.
배는 마치 양쪽에 엉성한 날개를 단 것 같은 모습이었다. 30여 명이 승선한 날씬한 몸체의 배는 양쪽에 기다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날개를 달고 있었다. 대나무 날개는 배가 달릴 때면 물위를 스칠 듯 말듯 널따랗게 펼쳐져 있는 모양이 여간 신기한 모습이 아니었다.
배는 막탄섬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까오비안 섬으로 달리고 있었다. 모양은 조금 어설퍼 보였지만 배는 보기보다 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검푸른 수평선 위에 떠오른 시원스런 뭉게구름과 찬란한 햇빛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호핑 투어에 나선 날개달린 배와 몸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선원들"어! 저 사람들 좀 봐요? 저들이 왜 모두 저기 나가 앉아있지? 위험해 보이는데."
우리가 배를 탈 때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처음 배가 출항 할 때 뱃머리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새 오른쪽 대나무 날개 끝 부분에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날개부분이래야 조금 굵은 대나무 두 개를 묶어 만든 장대일 뿐이었다. 그런데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배의 어설픈 대나무 날개 위에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아슬아슬했다.
"사람들이 왼편에 몰려 있으니까 균형을 잡아주려고 저들이 오른편 날개에 앉아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내려 쪼이는 따가운 햇볕을 피하려고 사람들이 왼편 그늘 쪽에 몰려 있었다. 30여 명이 타는 배였지만 폭은 매우 좁은 편이어서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릴 겨우 전복 될 위험이 있었다. 배 양쪽에 날개처럼 달린 대나무 날개도 그런 위험에서 배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배에서 일하는 세 사람의 선원들은 그 무게의 불균형을 잡아 주려고 스스로 반대편 대나무 날개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배가 조금 더 달려 방향이 조금 바뀌자 사람들의 자리도 조금 바뀌었다. 그러자 그들 선원 세 사람은 다시 배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달린 배는 저만큼 작은 섬이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엔진을 멈췄다. 곧 가이드가 갑판 앞쪽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구명조끼와 물안경, 오리발, 그리고 스노클링 장비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선원이 각각 구명조끼를 입고 옆에 섰다.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에 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가 옆에 서있는 현지인 선원들에게 장비를 착용하도록 시범을 보이면서 스노클링 요령을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다가 아주 얕아 보이죠? 몇 미터나 될 것 같아요?"
그의 질문을 받고 바닷물을 살펴보니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깊어야 2~3미터쯤 될까? 밝은 햇살이 관통한 바닷물은 매우 투명하고 맑았다.
"2~3미터쯤 될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여긴 수심이 보통 5~7미터쯤 됩니다. 보기보다 훨씬 깊죠? 오염이 안 된 청정 해역이라 물이 맑아서 얕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가르쳐드린 요령대로 구명조끼 착용하고 들어가시면 안전합니다. 너무 힘들면 손을 흔들어 주세요. 안전요원들이 바로 도와드릴 테니까요."
난생 처음 필리핀 바다에서 스노클링에 도전하다관광객들은 하나 둘 안전조끼를 입고 물안경을 착용한 후 숨통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바닷물로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하여 바닷물로 들어갔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 물속으로 들어갔다. 난생 처음 바다에서 해보는 스노클링이었다.
수영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강물에서 놀며 배웠던 수영이라기보다 개헤엄이었지만 물에 떠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물에 들어가니 사정이 달라졌다. 구명조끼를 입은 몸이 물에 쉽게 뜨긴 했지만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조금 전에 교육 받은 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배에서 20여 미터 멀리 나아갔다. 물속에 서있는 것보다는 엎드린 자세가 오히려 수월했다. 얼굴을 물속에 담근 상태로 물안경을 통해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히야! 멋있다. 저 아름다운 풍경!"
하마타면 감탄사를 터뜨릴 뻔 했다. 배 위에서 내려다본 물속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산호초와 작은 열대어들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바다 스노클링이어서 바닷속 풍경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청정해역인 필리핀 바다 물속이었으니 스스로 놀라고 감탄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작고 귀여운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광경이라니.
그렇게 10여 분 동안 멋진 풍경에 취해버렸다. 그리고 물 밖으로 머리를 들었을 때였다. 아차! 배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모르는 사이 해류를 타고 흘러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어림잡아 50여 미터, 배위에 있던 가이드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배가 있는 쪽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출렁이는 바닷물이 자꾸 진로를 방해한다. 입에 문 숨통으로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몸은 점점 더 지쳐가고, 그렇다고 구조를 요청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계속 헤엄을 쳤다. 그렇게 어렵사리 배 근처에 도착하여 예의 대나무 날개를 붙잡았다. 아! 살았다.
배의 양쪽에 날개처럼 달려 있는 대나무 날개가 배의 균형을 잡아 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붙잡고 잠깐씩 쉴 수 있는 용도 말이다.
짜디 짠 필리핀 바닷물 한 모금으로 스노클링의 쓴맛을 보다
그렇게 잠깐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얼굴을 물속에 담갔다. 그리고 대나무 밑을 통과하는 순간, 꿀꺽! 한 모금의 물이 목으로 넘겨졌다. 아! 짜다. 정말 너무 짜서 짜다기보다 쓰디쓴 맛이라니. 정신 아찔해진다.
익숙하지 않은 스노클링이어서 입에 문 숨통을 잊고 실수를 한 것이다. 숨통을 입에 문 채 바닷물에 맞닿아 있는 대나무 날개 밑을 통과하는 순간 숨통으로 왈칵 들어온 물이 그만 목으로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짠 바닷물을 삼킨 충격 때문에 스노클링을 더 하고 싶은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직 빨리 물 밖으로 나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갑판으로 올라가 물 한 병을 마시고 난 후에야 입안의 쓴맛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난생 처음 해본 필리핀 바다의 스노클링에서 짜디짠 바닷물 한 모금으로 쓴 맛을 단단히 본 셈이었다.
배 위에는 잠깐씩 물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와 있었다. 스노클링을 즐기던 나머지 몇 사람이 돌아온 후 배는 다시 출발했다. 그리 멀어 보이지 않던 섬에 10여 분만에 도착했다.
까오비안 섬에서 만난 음식과 풍경
까오비안 섬은 우리 제주도처럼 곰보형태의 검은 바위가 뒤덮인 화산섬이었지만 평탄했다. 작은 섬이어서 선착장도 변변치 않았다. 섬 가까이 접안한 배와 예의 검은 바위 사이에 기다란 판자를 걸쳐 놓은 위를 출렁출렁 아슬아슬하게 걸어 섬에 올랐다.
배에서 멀리 바라본 우리네 초가지붕처럼 보였던 작은 집들은 음식점의 손님용 작은 정자들이었다. 자리에 앉자 곧 음식들이 나왔다. 숯불에 구운 닭다리 요리와 소시지 구이. 그리고 새우와 오징어 등 생선들이 주류를 이룬 요리는 맛이 매우 좋았다. 아주 특이한 것은 밥을 그릇에 담아 주지 않고, 큰 그릇에 사람 수만큼 밥공기 형태로 쏟아 내놓은 것이었다.
작은 섬이었지만 선착장과 식당 주변에 몇 명의 현지인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서있는 광경이 놀랍다. 가이드에게 이곳도 무슨 위험이 있는 곳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 나라도 미국처럼 총기 휴대가 자유로워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라 한다. 외국 관광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고용한 사설 경비원들을 무장시켜 지켜준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음식점 밖으로 나서자 하얗고 결이 고운 모래밭이다. 모래밭을 조금 걷자 곧바로 바다가 나타난다. 섬의 폭이 그만큼 좁았던 것이다. 바닷가에는 예의 우리 초가집 모양의 나뭇잎을 엮어 지붕을 덮은 정자들 몇 채가 서있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 정자 한 곳에는 아이들과 함께 한 가족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답게 앉아 있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그들은 중국인들이었다. 모래밭 옆 숲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고, 털이 하얀 백마의 고삐를 잡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순해 보이는 현지인이 있었다. 그는 관광객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버는 마부였다.
"겨우 작은 섬에 들러 점심 먹고 가는 것이 호핑 투어라고? 이름이 너무 싱겁구먼."
일행의 말처럼 참 싱거운 호핑 투어였다. 다시 날개 달린 배를 탄 일행들은 막탄 섬으로 돌아가 오후 일정을 기다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