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분위기의 일반적인 풍경과 달리 활짝 웃는 후원자와 인턴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어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무실 밖 세상 속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돕고 제도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는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39)를 만났다.
지난 5월 20일 서울 도봉·양천·금천구에서 주민 14명이 해당 구청장들을 상대로 낸 주민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났다. 기초의원들이 받는 의정활동비 가운데 의원들의 임금인 월정수당인상을 지나치게 많이 올린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기초의원 의정비가 평균 36%가 인상됐을 정도로 의정비를 올린 자치단체들이 많았다. 이번 판결로 도봉구 의원들은 2136만원씩, 양천구 의원들은 1915만원씩, 금천구 의원들은 2256만원씩 구청에 반납하게 됐다.
이번 결과는 2006년 주민소송제가 도입된 이래 처음 이끌어낸 승소로, 주민감시의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비라 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막기 위해…"주민소송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집행이나 회계 처리가 잘못 됐을 때 주민들이 낭비한 예산을 환수하기 위해 해당 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다. 김 변호사는 '공감'에서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과 함께 의정비 환수를 위한 활동을 지원하다 이번 소송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회 의원이 유급화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2007년 9월 지방 의회들이 의정비를 대놓고 올렸습니다. 의정비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장,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민 의견 반영이 중요한데 여론조사, 전화자동응답조사(ARS),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한 설문조사에 다른 지역구민이 참여할 수 있게 돼 있는 등 의견수렴방식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설문조항 자체도 보수 인상을 전제로 하거나 인상을 유도하는 식의 내용으로 편향되어 있었습니다."또 각 지방의회들이 임의로 월정수당 및 여비가 포함된 의정비를 인상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봉구의 경우 구의원들이 2007년 의정활동 조례를 임의로 바꿔 의정비를 95%나 올렸다. 지방자치 실현과는 무관하게 의원들이 자시 잇속을 챙기는 것을 보자 주민들이 서명을 받아 감사를 청구했다.
"변호사 역할보다 자발적인 주민의 힘이 더 커…""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정보가 상대측에게 편중돼 있고, 불리한 점을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가 힘듭니다." "이번 소송의 경우 돈을 사용한 내역과 관련 회의록이 있었고, 조례 개정 전후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는 문서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렸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소송 전에 주민감사청구를 위해 필요한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아내느라 1인 시위와 유인물을 배포한 주민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주민소송은 승소하더라도 인지료, 송달료, 복사비에 대한 보상 외에 특별히 원고에게 이익이 되는 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환수된 예산의 일부를 원고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것과 차이가 있죠. 국내에서는 변호사 선임료, 교통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사재로 써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보상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첫 주민소송에 이긴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너무 좋아하셨고 얼마 전 사무실에 찾아와 백만 원을 후원금으로 주고 가셨습니다."주민 1명만으로도 감사 청구가 가능한 일본의 경우 지난해 약 700건 정도의 감사청구가 이뤄졌는데 우리나라는 3년 동안 약 10건에 불과했다. 앞으로 주민 감시가 활성화돼 지방재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으로의 관심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공익제보자"김 변호사는 앞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공익법 영역에 대해 '공익제보자'를 꼽았다.
"공익제보자들은 사회의 부패를 시정하는 의인인데도 배신자로 여겨져 제보 후 자살을 생각한 경우가 90%에 이를 정도입니다. 옳은 일을 하고도 피폐한 처지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도울 생각입니다."1989년 대학에 들어간 김 변호사는 누구나 자유롭고, 차별 없이 당당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세계에 대해 해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아 선생님을 꿈꿨다. 교단은 아니지만 사법연수원에서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공감'을 탄생시키며 공익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로 '공감' 창설 5주년을 맞았다. 그간 빈곤과 복지 분야에서 노숙인 인권침해 조사 및 법률상담, 비닐하우스촌 주거지전입신고 소송, 군대 내 의문사를 밝혀내는 일에 앞장 서 왔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차분한 어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 변호사 같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둡지 않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방연주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