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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헬소툰궁전 전경.
체헬소툰궁전 전경. ⓒ 김은주

 체헬소툰 궁전을 향해 걷고 있는 우리 집 자매. 작은 애는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궁전 안으로 들어오자 말끔히 나았는지 씩씩하게 잘 돌아다녔다.
체헬소툰 궁전을 향해 걷고 있는 우리 집 자매. 작은 애는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궁전 안으로 들어오자 말끔히 나았는지 씩씩하게 잘 돌아다녔다. ⓒ 김은주

체헬 소툰 궁전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감이 잡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한테 나타난다는 신기루처럼 거긴가 해서 달려가면 아니고, 저긴가 해서 쫓아가면 또 아니어서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작은 애가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먼저 화장실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하도 다급하게 굴어서 으슥한 곳을 찾아서 급한 볼일을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으슥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애를 밀어놓은 곳이 뜻밖에도 버스 정류장 근처라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나무 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은 애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시켰습니다. 남자의 출현은 정말 반갑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작은 애는 더 긴장했겠지요. 작은 애가 들키지 않도록 작은 애 쪽을 몸으로 슬쩍 가렸습니다.

남자가 얼른 사라져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을 시켜도 아무 대꾸도 않았습니다. 말이 시작되면 길어질 테고 그러면 나의 초조한 상황이 들통 날 것 같아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처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큰 애가 잘난 척 하면서 나섰습니다. 요즘 한창 영어 쓰는 재미에 맛을 들인 큰 애는 자기가 나서서 이 남자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큰 애에게는 동생의 다급한 사정 보다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떠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나누던 이란 남자의 한 마디가 나의 예민한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폭소를 일으켰습니다.

"너의 언니는 말을 못하니?"

이란 남자가 큰 애에게 나를 가리키며 물어본 말입니다. 나를 큰 애의 언니로 착각한 것도 웃겼고, 아무 말 않고 있다고 나를 벙어리로 아는 사실도 웃겼습니다.

"그녀는 영어를 전혀 못해요."

큰 애의 재치 있는 대답도 나를 웃겼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안 맞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했습니다.

큰 애와 한참 떠들던 이란 남자가 떠나고 마침 내 작은 애가 나왔습니다. 남의 집 담이라도 넘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고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배는 여전히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애 기분은 엉망이었습니다.

 체헬소툰 궁전 내부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그림이었다.
체헬소툰 궁전 내부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그림이었다. ⓒ 김은주

 정원을 가꾸고 있는 일꾼. 한겨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정원을 손보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고 있는 일꾼. 한겨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정원을 손보고 있었다. ⓒ 김은주

그런데 작은 애와 달리 우린 행복했습니다. 난 이란 남자가 나를 큰 애 언니라고 해서, 즉 젊게 봐줘서 즐거웠고, 큰 애는, 내 영어 실력은 우리 집에서 가장 나아, 하는 우쭐한 기분 때문에 행복했고, 그래서 우린  행복했습니다.

실실 웃으면서 정말 정겨운 자매처럼 수다를  떠는 큰 애와 나,  배가 아파 찡그린 채 걷고 있는 작은 애, 이렇게 이상한 한 팀이 체헬 소툰 궁전을 찾아 다시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마침내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줄 사람을 만났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세 여학생들에게 물어서 그 애들이 가르쳐준 곳으로 갔더니 체헬소툰 궁전의 커다란 대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그곳은 후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담을 따라 궁전을 한 바퀴 돌고서야 겨우 체헬 소툰 궁전 정문을 찾아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체헬 소툰 궁전의 정원은 이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양식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나무가 잘 가꿔져 있습니다. 나무가 키도 크고 울창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성껏 키워온 나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전 앞뜰에는 기다란 장방형의 연못이 있었습니다.

울창한 나무와 수영장처럼 생긴 연못, 이 구조는 이란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체헬소툰 궁전이 더 유명한 이유는 규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못은 다른 곳보다 많이 컸으며 나무는 정말 울창했습니다. 정원이 아니라 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은 때는 겨울이라 아름다운 꽃은 없고 나무도 숱이 없는 머리처럼 좀 엉성했고, 연못 또한 물을 빼놓아서 황량한 느낌도 있었지만 봄이 되고 여름이 돼서 나무가 무성해지고 장미향이 바람을 타고 궁전 뜰을 가득 메우면 정말 멋진 정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쳐있을 때 체헬 소툰 궁전에 들어오면 천국에 들어온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란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기자기하게 가꾼 정원이 아니라 더위를 식혀주는 한 자락의 시원한 바람 같은  정원이 필요한데 그런 정원의 역할을 이 체헬소툰 궁전의 정원이 해줄 수 있는 것이지요.

 체헬소툰궁전.
체헬소툰궁전. ⓒ 김은주

 체헬소툰궁전 입구에 있는 플랜카드 앞에 앉은 작은 애. 봄날의 이맘광장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우리가 여행한 겨울하고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체헬소툰궁전 입구에 있는 플랜카드 앞에 앉은 작은 애. 봄날의 이맘광장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우리가 여행한 겨울하고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 김은주

체헬 소툰 궁전은 아바스 2세가 별장으로 만든 궁전으로 40개의 기둥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사실은 20개의 기둥인데 궁전 바로 앞에 있는 연못 수면에 기둥의 그림자가 비치고 그래서 40개의 기둥이 된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가 궁전을 찾은 시간은 한낮인데 궁전의 진가를 보려면 보름달이 밝은 그런 밤이 좋지 아닐까 싶습니다. 밝은 달빛을 받아 연못 수면에 내려앉은 체헬 소툰 궁전의 20개의 기둥과 체헬 소툰 궁전이 만들어낼 장관이 그려졌습니다. 그런 달밤에 이곳에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프레스코화가 보였습니다. 이 궁전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입니다. 벽면을 감싸고 있는 프레스코화는 주로 사파비드 시대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특히 꼭 봐야 할 것은 세밀화 6폭입니다. 그 중 3폭은 오스만과 인도, 우즈베키스탄 왕들이 내방할 때 베푼 연회 장면이고, 나머지 3폭은 전투 장면입니다. 이 세밀화들은 이란만의 고유한 화풍을 잘 간직한 그림들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란은 검은 차도르를 걸치고 금주 국가고 아주 심하게 종교적인 나라라서 전반적으로 금욕적인 느낌이 강한데 체헬 소툰 궁전의 벽에서 본 그림들은 자유분방하고 화려했습니다.

'천일야화'의 분위기와 사뭇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이란을 지배하고 있는 금욕주의 내면에는 이런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본성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란인에게는 이 모습이 더 이란인다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스파한#체헬소툰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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