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모님! 얼굴 고치고 싶은 것 말씀하세요! 제가 모두 해 드릴 수 있어요!"
"알아서 예쁘게 해 주세요!"이마를 고속도로로 넓히고 귀와 턱을 고쳤다. 내 얼굴이 아닌 듯 자연스럽지 않다. 어딘가 길가다 한 두 번 스친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낯선 중년의 여인이다. 딸은 좋다고 하지만 나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은 살아온 흔적이 엿보이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다. 하지만 철이 들기 전 한때는 내 얼굴이 좀 더 예스럽고 균형 잡히기를 바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천명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진 얼굴을 보니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낯설기만 해서 가급적 보지 않으려 한다.
어릴 적에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굴곡진 이마가 평평하길 바랬다. 왼쪽과 오른쪽의 얼굴 균형이 맞지 않게 보이는 주 요인인 오른쪽 턱 선이 좀 들어가고 코도 조금 높았으면 좋았을 터였다.
그리고 두툼해 보이는 눈두덩도 조금만 들어가면 원래 있는 속 쌍꺼풀이 선명할 것이고 보청기 때문에 한쪽이 처진 귀도 잡아주면 미스코리아 지역예선쯤은 통과할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었다. 텔레비전에서 본대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멋스럽게 팔과 엉덩이를 흔들며 워킹연습하는 장난도 했던 유년의 기억이 난다.
여권 갱신시기를 놓쳐 다시 여권을 만들어야 했다.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갔다. 내가 별로 반기지 않는 일들이 공공기관에 가는 일과 먹지 못하는 술 먹는 자리와 부르지 못하는 노래방에 가는 일과 사진 찍는 일이다.
사진 찍는 것을 피하는 이유는 사진사의 요구 사항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 모양을 보고 나름대로 발군의 눈치코치를 발휘하려 해도 카메라에 가려져 사진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그러다 보면 사진사도 답답해서 손짓 발짓하다가, 내 곁으로 여러 번 오가면서 포즈를 잡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사진찍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아주 번거로운 일로 인식되어 가능한 피하고 싶은 상황이 수십 년간 습관이 된 셈이다.
지난 사진은 안경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해서 안경 안 낀 사진이 필요해 사진관에 갔다. 머뭇 머뭇하면서 찍었고 다시 계속 찍어야 하는 과정을 생각했는데 두 세 번 찰칵하더니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컴퓨터에 나타난 내 얼굴을 갖고 그래픽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안경 안 낀 얼굴의 눈빛이 좀 선명하지 않다고 컬러 렌즈를 살짝 입혔다. 보청기가 걸리고 처진 귀는 아예 일제시대 전쟁 때의 수훈물을 위해 도려내는 귀처럼 싹둑 잘라 베어버리고 다른 귀를 갖다 붙였다.
사진관에서의 시행되는 얼굴 공사는 계속 되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보이는 주근깨는 없애고 약간 굴곡진 이마는 고속도로 공사를 했고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 턱선도 깎았다.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척척 하는 얼굴 공사는 내가 어릴 때 조금 고쳤으면 하는 부분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은 옷도 여권사진 기준법에 의하면 비교적 단정한 옷이 아니기 때문에 새 옷을 입혀야 된다고 하며 개량한복과 정장 옷들을 보여주며 택하라고 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인 그래픽 작업을 통해 내 얼굴이 다시 태어났다. 작업 한 사진사의 수고로움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원형 그대로 복원해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사진을 받아 왔다.
그렇게 별 말없이 사진을 받는 나를 보고 옆의 딸이 답답했던 것 같다. "엄마, 가만있어 봐! 사장님! 잠깐만요…" 하더니 이것 저것조금 더 고쳐달라고 한 술 더 떴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오히려 엄마가 시대에 뒤져 소비자의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가능하게 이루어진 것들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랑과 희망 그리고 도전에 의한 결과 뿐 아니라 달라진 시대상황에 따라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지금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상황이 바뀌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태어난 주름살 하나 없고 주근깨 하나 없는 매끈하고 눈이 커진 내 얼굴은 여권에만 사용하고 아무데도 써먹지 않을 작정이다. 딸은 좋다고, 잘 나왔다고 하지만 나는 지천명의 이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희로애락과 심상이 고스란히 담긴 풍상 어린 지금의 내 얼굴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하는 꽃 마음을 하나씩 살려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영혼의 길이 메마르지 않은 꽃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