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친서민과 중도'를 강조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과격하게 부자위주 정책을 끌고 간 정권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정책자문단과의 토론에서 자신은 서민친화적 정책을 사용해왔으나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다시 말해, 지난 1년 4개월간 줄곧 추진해왔던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 규제완화, 복지억제 정책이 성장을 촉진하여 과실이 서민에까지 퍼지게 하는 친서민정책을 펴왔지만,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소득층 감세, 규제완화, 복지억제를 부자정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똑같은 정책을 대통령은 서민정책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소통부재정권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왜 이러한 정책을 서민정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ABR(Anything But Roh ; 무조건 노무현과 반대로!)에 대한 인식이 이 대통령에 뿌리박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지난 정권에서 심화된 양극화, 빈곤층의 급증 등의 현상이 노무현 정권의 좌파정책에 따른 하향평준화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렸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 고소득층 감세, 규제완화, 복지 억제를 통해 성장을 촉진하여 서민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지난 1년 4개월 동안의 이명박식 친서민정책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에 합의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명무실화 하였으며, 법인세를 감세한 '완화된 이명박 정권'이었지 결코 좌파라고 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 복지정책이 개선된 점은 차별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군사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재벌위주 경제성장정책이나 노동배제적 경제정책, 건설부문의 비대화를 개조하는 '구조개혁'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과거 군사정권과 비슷한 정도의 경제정책을 펴나간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에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좌파정권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색깔공세일 뿐이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중동의 정치공세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현실을 직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좌파척결'이란 이유로 정책효과도 의문시되는 고소득층 감세와 규제완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그나마 지난정권에서 확대해놨지만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규모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복지정책을 억제하는 정책도 서슴없이 벌어졌다. 이 정책이 7% 성장을 촉진하여 서민에게 일자리가 퍼진다는 과신이 이 대통령에 짙게 배여있다. 그의 믿음이 얼마나 철저하냐면 글로벌 경기침체로 전세계가 그와 반대되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민들을 위한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야당공세 때문에 진정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런저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득양극화의 심화→비정규직 확대→내수부진→비정규직 확대→양극화 심화의 악순환은 노무현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악화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더 떨어지고 고용률도 추락하고 있으며 청년실업은 악화됐으면 더 악화되었지 좋아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주식시장만 반짝 상승하고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국민의 체감경기는 한겨울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통령이 명확히 인식하고 ABR 사고방식을 고치는 데서 친서민정책을 시작한다면, 환영한다. 그러나 기업형 슈퍼의 골목진출 규제가 단지 '규제정책'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이 대통령의 실체는 바뀌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WTO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를 들었으나 같은 WTO회원국인 프랑스, 독일 등에서 규제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규제정책은 (경제를 망쳤다고 믿는) 노무현 정권을 따라하는 것이며 자신은 절대 이를 따라하기 싫다는 고집이라면 이는 그가 추구한다는 실용에도 근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IMF이래로 이어져 온 지나친 시장우위에 따른 소득양극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미 소유권은 확대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인권, 노동권, 생존권 등의 기본권은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일상화된 정리해고 및 재교육부재와 하향재취업, 800만 비정규직 그리고 용산참사가 이를 방증한다. 늘어나는 강력범죄, 자살률도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세계최저수준의 출산률도 한국이란 나라는 아이 낳고 살 기본환경조차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정책은 사회 각 부문의 공공영역의 확대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복지, 교육, 노동, 주거, 의료 등의 영역에서 사회보장을 확대하여 서민에게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기업형 슈퍼를 규제하여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것 또한 고령층의 실업을 막는 대책으로 급선무이다.
무엇보다도 조중동이 짜놓은 노무현=좌파=아마추어=경제실패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강조한 한국정치를 개선할 근원적 처방의 하나이다. 이에 따라 지나친 시장 우위의 정책을 교정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진짜 실용주의자라면 그간 그가 서민정책이라고 믿고 추진해왔던 고소득층 감세, 규제완화, 복지억제 정책의 한계에 대해서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