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주변을 산책하고 숙소가 KBS연수원인 관계로 셋트장이 있다기에 한번 야외촬영장을 찾았으나 출입은 안 되어 밖에서 잠시 구경을 하였다.
아침 식사 후 오전 일찍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의 안내로 몇 개의 조로 나누어 화성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화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중간 중간 이동 도중에 쓰레기 줍기 등 정화활동도 이어졌다.
수원화성은 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과학적 설계에 의한 한국의 성을 대표한다.
축성은 조선 후기 정조 때인 1794년 착공하여 1796년 9월 10일에 준공되었다고 하며 여기에는 정조가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주변을 신도시 개념으로 화성을 건설했고 그의 효심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화강암과 벽돌로 쌓는 축성 공사에는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이었다.
또한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네 개의 대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과 다섯 곳의 암문, 북수문, 남수문 두 곳의 수문이 있다. 네 개의 대문에는 모두 옹성을 둘러 적이 쉽게 문을 부수지 못하도록 하였고 성곽에는 돈대, 각루, 공심돈, 적대 등이 있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창룡문가장 먼저 찾은 창룡문은 동문으로 6.25 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고 장안문보다 규모는 작으나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고 한다. 성벽에는 당시 축성에 관한 글이 남아 있다.
수원화성 연무대 연무정이란 활터에서는 활쏘기 등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보이며 넓은 공간에 잘 확보되어 있다. 연무대 주변 연무초등학교는 활쏘기를 비롯하여 국내 우수 양궁 선수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동암문을 거쳐 잠시 휴식하고 정조가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옮기고 수시로 능행차를 하였는데 이때 정조가 능을 바라보며 아버님께 안녕히 잠드시기를 비는 마음이 지극하였음을 알 수 있는 능행차도 그림이 화장실 벽에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어 주목되었다.
장안문은 화성의 정문으로 옹성과 두ㅊ개의 적대를 세워 보호했다. 용 머리에 열차를 달아 운영중인 화성열차가 주변을 다닌다. 성벽에 명문 돌은 복원하여 놓았다.
홍이포는 장안문 양쪽의 적대 위에, 불랑기포는 동장대 담장 뒤편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장안문 양쪽에서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공격도 할 수 있는 방어시설이다.
화서문 옆에 서북공심돈이 있는데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경계할 수 있도록 높게 지어진 망루이다.
화성행궁내 신풍룽 앞에서 무예 24기의 무예시범이 1시간 정도 이어졌다. 활쏘기를 비롯하여 각종 무예 시범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연포갈비에서 유명하다는 갈비탕을 먹으며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이틀 동안의 수원 일정은 역사도시 수원과 화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상 연무대에서 화성행궁 앞 광장까지 이어지는 능행차도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