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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지리산 천왕봉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의 함태식 선생. 40년 가까이를 지리산 대피소에서 살다 지난 봄 하산한 '지리산의 전설'이 노구를 이끌고 다시금 산에 오른 것이다.

 

고령의 그가 굳이 산에 오른 이유는 케이블카 허용 논란 문제 때문.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 및 1인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천왕봉까지 올라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다시 천왕봉에 선 지리산 호랑이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 선생은 요즘 케이블카 반대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환경수호의 최전선에서 각종 선언이나 서명에 단골로 참여하고 있다.  지리산의 산 증인으로 통하고 그의 경력 탓에  4대강 개발과 케이블카 등 환경 훼손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징성이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팔순의 노인은 천왕봉(해발 1915m)에 직접 오르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케이블카 찬성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노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비웃으며, 두발로 직접 지리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케이블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언제 어디서든 단호했다. 또 다시 걸어서 천왕봉을 오르지 못 할지언정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오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산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곳이지, 케이블카 같은 것을 타고서 올라 다녀서는 안 되는 곳이야. 그런 식으로 산을 훼손시켜서는 안 돼"

 

지난 27일 피아골 탐방 안내소 옆 숙소에서 만난 함태식 선생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간 살아온 삶이 그러니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22일의 케이블카 반대 1만인 선언에 이어 7월 2일 발표된 사회인사 100인 선언에도 그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내가 평생 자연보호와 환경보호 떠들면서 살았잖아.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보호파야. 그런데 자연이 훼손되려는 것을 어찌 그냥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나라 국립공원 처음 만들 때 내가 한 몫을 했는데, 국립공원 어떻게든 지켜내야 할 것 아닌가. 4대강도 그렇고 케이블카도 그렇고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려는 것은 하면 안 되는 일이야. 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환경부가 제 역할 못한다면 없애야 마땅한 것이지"

 

그의 모습은 산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천왕봉 1인 시위가 이어질 때는 그를 찾던 등산객들이 많았고, 지금도 일부러 그를 찾아와 인사하고 가는 등산객들도 꾸준하다고 한다. 팔순 노인이 나서는 것에 후배 산악인들 또한 케이블카 반대 운동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와 함께 천왕봉에 올랐던 구례의 서문용씨는 "힘들어서 중간에서 포기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오르시더라"며,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기운이 난다면서 다들 감동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함 선생은 "힘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하산 문제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몸이 많이 약해졌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산에 오르니 좋더라"면서 "4년 전인 78세 때 마지막 종주를 할 때 천왕봉에 올랐는데, 케이블카가 다시금 천왕봉에 오를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지난 봄 그는 고령을 이유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피아골 대피소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서 지리산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었다.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처지인데 거처가 마련되지 않자 고민이 많았던 것.

 

하지만 산악인들을 비롯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리산 호랑이'에 대해 예우를 갖췄고 계속 지리산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현재는 피아골 탐방안내소에서 탐방 안내 업무를 맡고 있다. 함 선생은 "집도 좋게 꾸며주고 신경도 많이 써주고 있다"면 생활에 만족해했다.

 

케이블카 반대 시위에 나선 것에 대해 불편해 하는 반응이 있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인데 누가 뭐란다고 달라질 수 있겠냐"는 것.

 

그래서인지 함태식 선생은 환경부가 케이블카를 부추기는 모습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며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할 곳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환경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어. 맡겨진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한 것이잖아. 환경부라면 이름에 맞게 환경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지. 알프스나 다른 선진국도 케이블카를 안 하는데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거지."

 

그는 젊을 적 인천에서 연탄 공장을 운영했던 것도 산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땔감을 위해 산에서 나무 해다가 숯을 만들었는데, 산을 아끼려면 그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 이유도 있어 소싯적 연탄사업을 했던 것이고."

 

그는 "등산 운동은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국민보건운동이고, 체력은 국력이라고도 하는데, 산에다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막는 잘못된 행동"이라면서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되는 일"이라 강조했다. 하이힐 신은 채로 케이블카 타고 산에 올라 오물 버리고 하면 산이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케이블카 허용' 환경부가 함태식 선생에게 준 표창장

 

지리산의 가치에 대해 길게 설명하던 그는 '지리산은 삼신산과 하나의 영산이기에 더더욱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옛 말에 일(一)봉래 이(二)방장 삼(三)영주라 했거든. 그래서 삼신산이야. 봉래는 금강산이고 방장이 지리산이야. 영주는 한라산이지. 왜 영산이냐 하면 산꼭대기에서 물 나오는 곳은 드문 데 지리산은 산 정상부에도 물이 있거든. 그러다 보니 지리산에서는 수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신산이야. 이런 곳에 철탑을 세우고 말뚝을 박겠다는 것인데, 절대 용납해서는 안 돼."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신분으로 있으면서 개의치 않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함태식 선생이 고맙다"고 말한다. 나이도 있으셔서 몸을 사리실 만도 한데,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함 선생은 지리산에서 반평생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내가 나이가 있어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켜온 산인데, 나 편한 것만 신경 쓸 수 있겠는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동참할거야. 그리고 내가 박정희 때부터 체질적으로 반골이잖아"

 

한편 함태식 선생은 지난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그간 환경보호에 쏟은 공을 인정받아 환경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상은 지난 29일 국립공원 관리공단을 통해 그에게 전달됐다.

 

올 봄 그가 떠밀리듯 지리산을 내려올 위기에 있을 때, 잘 알지 못하는 몇 몇 산악인이 정부에 청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지리산을 지키는 일에 공이 큰 사람인데, 공로라도 치하해야 할 것 아니냐면서. 객관적 공이 인정되는지라 정부도 지리산에서 보인 그의 환경 보호 노력을  인정한 것.

 

케이블카를 허용하려는 환경부 장관이 이를 반대하는 함태식 선생에게 준 표창장을 준 셈인데, 그 과정을 설명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상도 없이 표창장만 주는 것은 받고 싶지 않아. 부상으로 케이블카 안하겠다는 약속이나 해달라고 할까? 허허허"

 

나이 여든의 어른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이명박 정권 녹색성장은 개발과 파괴로 이득 얻으려는 녹색착취"

사회인사 100인 케이블카 설치 반대 선언

 

 

주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할 수 있게 하려는 환경부의 자연공원법 개정안 의결이 가까워 오면서 이의 중단을 요구하는 각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을 비롯해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지리산의 함태식 선생, 히말라야를 완등한 산악인 엄흥길, 한왕룡씨 등은 2일 국회에서 사회 인사 100인 선언 기자회견을갖고 '국립공원을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의 개발정책 포기 및 케이블카 건설을 부추기는 자연공원법 개악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자연공원법까지 개정하고 나선 환경부가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지적하고 환경부 이만의 장관에 대해서도 '역사와 미래세대의 준엄한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100인 선언' 기자회견에 100인을 대표해 참석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개발정권이 들어선 이후 환경 보전을 위해 애써야 할 환경부가 케이블카나 놓으려는 짓을 하고 있다"면서 "국립공원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에 대해 "녹색을 개발하고 파괴해 이득을 얻으려는 녹색 착취"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케이블카 반대를 위해 열심히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1만인 선언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광고를 통해 발표됐다. 지리산권 4개 시군에서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반대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지난 6월 내내 과천정부종합청사와 북한산, 청와대 앞 등지에서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1인 시위가 계속되는 등 환경부의 자연공원법 개정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일 기자회견에서 녹색연합 김제남 정책위원장은 "문광부는 생태 관광을 이야기하는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한 것은 현 정부가 말하는 녹색성장에도 이반되는 처사"라며 "선진국들은 2~3000m의 높은 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숲길이나 둘레길처럼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탐방로를 개발하고 접근방법을 늘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상에 발을 내딛게 하는 것과 국민들의 접근권을 높이겠다는 것은 다른 사안이다"고 지적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유정칠 대표는 "케이블카는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인데, 지자체들이 이번에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지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하고 "현재도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한 데 이를 더 길게 정상까지 올리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상까지 들어서면 파괴 심각해진다며 환경 개발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케이블카를 허용하려는 정부의 방침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특히 자연공원법 개정과 관련한 불교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서다. 조계종은 2일 양산 통도사에서 2000명의 스님이 모인 가운데 결의대회를 갖고 자연공원구역에서 사찰부지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나라당 쪽에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 그는 "불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며 "환경부의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거치기만 하면 되는 사안이라 수시로 당정협의를 갖고 있는 여당이 해결해야 될 사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의 시행령은 적절한 선에서 손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녹색연합 고이지선 국장은 "7월 중 시행령 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고 지자체들이 바로 케이블카 설치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금까지 환경부의 자연공원 개정에 규탄 여론을 모았다면 앞으로는 지역 중심으로 반대활동을 펴고, 케이블카가 아닌 다른 대안 제시를 통한 지역 활성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환경부의 실무 관계자는 "7월 중 국무회의 상정은 어려울 것 같다"말하고, "현재로서는 시행령 안을 고칠 계획이 없으나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조정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케이블카#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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