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일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나 이제 49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비극적인 죽음 앞에 사과하거나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정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 자연인의 죽음으로 그치고 마는 것일까? 이제는 슬픔과 비통의 감정을 가슴 깊숙히 묻어둔 채 그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와 모순에 대해 좀 더 냉철한 이성으로 비판하고 토론하고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시점이 왔다. 이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 속에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노 전 대통령은 분명히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무신론자에 가까웠던 노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개의 인간에게 자살이란 '우주의 종말'과 다를 바 없다. 한 인간이 '우주의 종말'을 선언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외부적 조건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그의 죽음을 단순히 '자살'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는 어쩌면 상징권력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죽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가 어떤 상징권력과 싸워왔는지는 모두들 알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의 삶은 '극우신문과의 투쟁' 그 자체였다.
조선일보? 조롱일보?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이나 검찰을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자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좀 더 본질적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어쩌면 검권이나 정권도 크게 보자면 상징권력의 작동기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징권력의 최정점에 바로 <조선일보>가 우뚝 서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그 상징권력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기초적인 사실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이 정권에 보낸 비난과 저주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몇 달에 걸쳐 <조선일보>가 보여준 광기와 살의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많이 떠돌아 다녔던 <조선일보>의 만평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록해 역사의 박물관에 전시해야 할 것이다. 사설이나 칼럼과 달리 만평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창작의 자유를 보장 받는다. 뒤집어서 이야기하자면 만평이야 말로 그 신문의 가장 본연에 가까운 감정과 논조를 대변해 주는 매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만평은 거의 일방적인 비난과 조롱, 저주 악담의 '악플' 수준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치열한 경쟁 조선일보가 다른 언론에 비해 '확실히' 더 심했던 걸까? 우선 양적인 면을 보자. 일간지 6개(경향신문, 한겨레, 국민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지방지 14개(경인일보, 영남매일, 울산매일, 강원일보, 경남일보, 경북일보, 경기일보, 새전북신문, 전라일보, 시민일보, 중도일보, 대구신문, 대구일보, 부산국제신문), 전문지 2개(매일경제, 서울경제)의 만평을 조사해 보았다. 박연차 수사와 관련한 모든 만평을 조사대상으로 삼았으며 보도태도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조사 기간은 노전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3월 26일부터 서거 이틀 후인 5월 25일까지였다.
'박연차 수사'를 둘러싼 시사 만화의 일반적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노 전 대통령과 그 일가 혹은 측근들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는 만화가 179건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검찰 수사가 장자연리스트나 천신일 회장과 관련해서는 지지부진한 것을 비판하는 수사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만화가 59건으로 나타났다.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비판이 27건으로 가장 적게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가 가져올 사회적 영향력과 충격을 고려했을 때 시사 만화가 이것을 소재로 삼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동시에 드러난 다른 사건들에 대해 검찰이 보여준 형평성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부족했던 부분이다. '죽은 권력'과 '살아 있는 권력'으로 프레이밍되어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노 전 대통령에 관해 보여줬던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압박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특정 언론의 경우 이러한 편중의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강원일보>의 경우 전체 32건 중 노 전 대통령 부패 초점을 맞춘 것이 23건, 수사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4건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전체 28건 중 노 전 대통령 부패 19건, 수사 형평성 6건이었고 <중앙일보>는 전체 23건 중 노 전 대통령 부패는 17건 다룬 데 비해 수사의 형평성은 3건밖에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향신문>의 경우 전체 20건 중 수사의 형평성에 11건을 다루고 노 전 대통령 부패를 9건 다뤘으며, <한겨레>의 경우도 전체 10건 중 수사의 형평성을 6건, 노 전 대통령 부패를 4건 다루며 오히려 수사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서로 뒤질세라 노무현 죽이기에 열을 올렸지만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조선일보가 단연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의 만평은 반드시 직접 감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의 '쇼연작 시리즈'<조선일보>는 '박연차 사건'과 관련해 28번 만평의 소재로 활용하며 중앙일간지 중 가장 높은 활용률을 보여줬다. 특히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조선일보>의 만평은 공적인 만평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원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퍼붓는 악담, 조롱, 비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특히 모 통신사 광고의 카피인 '쇼를 하자'를 패러디한 '쇼 연작 만평'을 선보인다. 만평을 보는 이로 하여금 결국 노 전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모두 쇼일 뿐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 '독'창적인 만평이다.
조선일보의 철저한 '유죄추정의 원칙'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와 관련해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만평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 사실인 것인 냥 호도한 것이다. 특히 고가시계를 둘러싸고 보수언론이 보여준 보도 태도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어야 할 것이다. 만화라는 형식에 숨어 한 인간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아도 되는 건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끊이지 않는 '모욕하기' '망신주기'<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조롱과 비난을 퍼붓는다. 노 전 대통령을 '시정잡배'나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왕따'로 직접 묘사해 상종못할 인간(?) 혹은 비참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금품수수라는 비도덕적 행위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 노무현에 대한 비열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갈등관계를 겪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망각한 것일까?
반성하지 않는 절대권력 <조선일보>최소한의 염치를 가진 인간이나 집단이라면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직까지 누구 하나 반성한다거나 사과한다는 사람이 없다.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그 누구보다도 막중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조선일보>의 만평을 그리고 있는 신경무 화백은 그간 자신이 그렸던 만평이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된 나머지 넘어선 안될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그의 만평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그의 만평을 철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조선일보>가 알량한 국화 한송이를 바쳤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