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땅 '강진'은 '남도답사 일번지'로 직결된다. 이는 등식이 된 지 오래다. 그만큼 품격 있는 문화유적지가 많다. 지난 봄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인기를 누린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여름휴가 때도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강진을 찾는 답사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선입견일까? 강진여행은 왠지 답사기 한 권쯤 들고 가야 할 것 같다. 문화유적에 큰 관심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다지 재미도 없고...
하지만 강진에도 재미있는 곳은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면 부모들이 뿌듯한 건 당연한 일. 그 곳은 23번 국도상에 있다. 국도는 강진읍에서 칠량·대구면을 거쳐 마량에 이르는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이 길은 사철 언제라도 좋다. 강진만 동쪽 해안의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바닷가 마을과 구릉, 해변을 지나가는 묘미를 모두 안겨준다. 거리는 25㎞ 정도, 차를 타면 30여 분 걸린다. 이 길의 매력은 확 트인 강진만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바닷가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차창을 열고 달리면 드넓은 갯벌에서 갯사람들의 진한 삶의 체취가 전해진다. 해안을 따라 옹기종기 모인 마을도 정겹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것도 좋지만,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갯내음을 맡아보는 게 더 운치 있다.
아이들도 차에서 내려 직접 갯벌로 들어가는 걸 더 좋아한다. 갯벌에 들어가면 기척에 놀라 구멍을 찾아 들어가는 게의 몸놀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다 우연히 바지락이라도 한 알 건지면 정말 오지다. 갯벌체험이 아이들한테 인기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부모들도 반기고.
그렇다고 아무 갯벌에나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체험장으로 개방된 갯벌을 찾아야 한다. 바닷가에 있는 대구면 하저마을은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있다. 강진읍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오른쪽 해안가에 긴 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곳이 하저마을이다. 이 나무다리는 물이 빠졌을 때는 갯벌로 들어가는 길이 되고, 물이 들었을 땐 물 위를 걸어보는 산책로가 된다.
여기선 공식적인 갯벌체험을 해볼 수 있다. 갯벌에서 바지락은 물론 꼬막과 맛, 낙지도 잡아볼 수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가더라도 불편하지 않다. 마을에서 장화와 호미, 바구니 등 체험도구를 갖춰놓고 빌려준다. 체험료 명목으로 한 사람당 5000원만 내면 모든 장비를 빌려주고 또 바지락 한 바구니씩 채취해 가져갈 수도 있다.
바지락 채취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호미로 갯벌을 뒤적여 바지락을 주워 담으면 된다. 많이 채취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바지락과 게 같은 바다생물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생생한 현장체험이고 자연학습이 따로 없다. 그 모습에 어른들도 신이 나고 뿌듯하다.
체험할 것은 갯벌체험뿐만 아니다. 독살체험도 해볼 수 있다. 독살은 바닷가에 돌을 쌓아 만든 어장. 밀물 때 조류를 따라 이 독살로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놓고 잡는 어로방식이다. 갯벌체험은 한두 명이 가도 상관없지만 독살체험은 다르다. 단체로 갈 때만 해볼 수 있다. 예약도 필수다.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갯벌체험은 아무 때나 할 수 없는 일. 물때가 중요하다. 갯벌체험이 목적이라면 물때를 맞춰가야 한다. 바닷물이 가득 차 있으면 체험나들이가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때를 맞추지 못했다면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물때에 맞춰 가도 된다. 참고로 7월 4일(토)과 5일(일)은 12시부터 오후 2시 사이가 체험하기 가장 좋은 물때다.
하저어촌체험마을에서 강진청자도요지도 가깝다.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청자도요지에 가서 청자빚기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토요일에 가면 오후 3시부터 청자박물관에서 강진청자 토요경매 행사도 펼쳐진다. 여기선 값 비싼 강진청자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경매는 먼저 출품작에 대한 설명과 작가 소개를 한 다음, 정상 판매가의 50%를 최저가로 해서 1000원씩 올라가는, 호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10만원짜리 청자라면 5만원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부대행사로 국악공연과 즉석퀴즈도 마련된다. 경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청자박물관에서 10분 거리에 마량항이 있다. 여기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공연이 펼쳐진다. 이름하여 '마량 미항 토요음악회'다. 공연은 갯내음과 바닷물결을 느낄 수 있는 바다 위 상설무대에서 이뤄진다. 풍물패 공연과 가수, 국악인 등이 나와 생동감 넘치는 노래와 춤을 선사하는데 공연이 명품이다. 면 단위에서 하는 공연임에도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주변 횟집에서 쓸 수 있는 경품권도 추첨을 통해 나눠준다.
공연을 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곳이다. 방파제를 말끔히 단장하고 바다 위에 무대와 목재 산책로도 설치돼 있어 평소에도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여기서 보는 일몰도 황홀하다. 그 때에 맞춰 데이트 목적으로 찾는 연인들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다.
이밖에도 강진엔 가볼만한 곳이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에는 다산이 처음 와서 머물렀던 주막집과 골방이 '사의재(四宜齋)'란 이름으로 복원돼 있다. 여기서 동동주도 한 잔 할 수 있다. 강진읍에서 도암 쪽으로 빠지면 다산초당도 있다.
강진읍에는 또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도 있다. 월출산 자락의 천년고찰 무위사(無爲寺)도 좋다. 무위사 인근에 있는 차밭도 운치 있다. 강진은 먹을거리도 '일번지'답다. 가히 한정식의 일번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름난 한정식집이 많다. 장어와 짱뚱어 요리, 돼지불고기 백반 등도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해안도로 드라이브에다 갯벌체험을 하고 청자경매도 보고 바닷가 음악회까지 볼 수 있는 강진. 23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또 다른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알찬 여정이 될 것이다.
강진 하저어촌체험마을과 청자박물관, 마량항을 찾아가는 길의 출발점은 강진읍이다. 여기서 마량방면으로 23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강진읍에서 목리교를 건너면 칠량, 대구, 마량으로 이어진다. 하저어촌체험마을과 청자박물관은 대구면에 있다. 드라이브를 더 하고 싶다면 마량에서 연륙교인 고금대교를 건너 완도 고금도, 약산도까지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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