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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팥빙수인지 과일 그릇인지 원. 그래도 들어갈 건 다 들어갔다.
팥빙수인지 과일 그릇인지 원. 그래도 들어갈 건 다 들어갔다. ⓒ 조명자

땀을 유난히 많이 흘리는 남편에겐 여름만큼 곤혹스러운 계절이 없다. 한여름이면 선풍기를 옆에 끼고 있으면서도 더위를 못 견뎌 괴로워하는데 그때마다 후렴처럼 등장하는 게 '팥빙수' 타령이다.

"팥빙수 한 사발(꼭 사발이라고 부른다) 들이키면 소원이 없겠네"를 연발할 때마다 나가서 사먹고 들어오라고 하지만 팥빙수 한 그릇 먹자고 다시 외출복 갈아입고 읍으로 출타하는 게 말처럼 쉽겠는가.

때때로 시골살이가 불편하긴 하구나 느낄 때가 자장면 먹고 싶을 때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부딪칠 때다. 아마 남편도 나처럼 팥빙수 못 먹는 안타까움을 시골살이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여름이 다시 돌아왔다. 타는 가뭄에 사정없이 솟구치는 수은주. 초여름부터 열대야가 장난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멘트 군단인 도심보다 시골이 더 시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전통적인 시골 농가는 방도 좁은 데다 시원한 맞바람이 들어올 창문도 없어 찜통이 따로 없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더 숨 막히는 시골집. 열대야가 올 때마다 밤새 선풍기를 돌려대다 더는 못 참고 급기야 에어컨을 구입한 것이 작년이다.

팥빙수가 생각날 때마다 빙수기 하나 사달라고 사정하는 남편에게 몇 번이나 먹겠다고 기계까지 구입하느냐고 면박을 줬더니 보다 못한 딸아이가 빙수기를 보내줬다.

"아빠 여름 선물로 보내는 거니까 엄마가 부지런히 팥빙수 해줘."

그렇잖아도 예쁜 딸이 아빠 생각해 빙수기까지 보내줬다니 받은 아빠 기분이 어떻겠는가. 완전히 감격의 도가니였다. 빙수기를 받자마자 팥빙수 해내라는데 그것도 그냥 해내라는 것이 아니고 세세한 재료까지 열거하며 주문이 까다롭다.

그릇에 우유를 넣고 얼음을 간 다음 단팥을 듬뿍 얹은 위에 꼭 들어갈 것이 찰떡, 수박, 미숫가루 등이란다. 그중에 과일은 다른 종류로 대체할 수 있지만 찰떡, 미숫가루는 필수라나.

"가시네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갖고 나만 성가시게 한다"고 구시렁댔지만 아빠를 생각하는 딸의 예쁜 마음을 생각하자니 즉각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팥빙수 재료를 사기 위해 바로 대형마트로 달려 나갔다. 삶은 팥, 찰떡, 젤리까지 팥빙수에 들어가는 일체의 재료가 포장돼 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재료는 다양하다만 중국산 팥에 알록달록한 색소, 영 께름칙하다.

 밍밍한 제과점 빙수 색깔만 보다가 딸기 쉐이크까지 섞인 빛 고운 성곡리표 빙수를 보자니 맛도 맛이려니와 먹음직스런 색깔이 끝내준다.
밍밍한 제과점 빙수 색깔만 보다가 딸기 쉐이크까지 섞인 빛 고운 성곡리표 빙수를 보자니 맛도 맛이려니와 먹음직스런 색깔이 끝내준다. ⓒ 조명자

해서 약간 귀찮지만 단팥은 우리 농산물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떡집에서 콩고물 인절미를 사고 팥을 삶은 다음 남편이 주문한 미숫가루, 과일을 준비했다. 우유는 물이 많을 것 같아 연유로 대체하고 아이스크림도 넣는다던데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략하기로 했다.

참외를 잘게 깎아 한 쪽에 놓고 수박씨를 발라내어 깍둑썰기를 했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딸기는 그냥 올리기보다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우유 섞어 믹서기로 갈아 넣으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더니 바로 먹음직스런 딸기 쉐이크가 되었다.

빙수기에서 바로 떨어진 얼음가루에 준비된 재료를 차근차근 얹고 그 위에 딸기 쉐이크까지 마저 올린 후 마지막으로 참외와 수박을 얹었더니 드디어 남편의 소박하지만 간절했던 소원 팥빙수가 완성됐다. 인간이 가진 오욕 중에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절실한 식욕 하나가 해결됐다.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앞으로 가능하다면 남편의 요구를 들어 줄 생각이다.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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