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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열린책들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로 조금 나아졌지만, 솔직히 자신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자기 이익을 위한 삶보다는 다른 이 특히 서민과 약자를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 얻었다면 우리들이 쓰는 바보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력하고,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상징하는 '바보'가 꼭 필요한 세상이지만 얼마 없는 것이 문제이고, 우리가 쓰는 바보는 필요가 없지만 의외로 많아 문제이다. 이 바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별 하는 일 없이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하면서 능력 있는 척하고, 진보와 발전을 가로 막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보임을 모르고 다른 이는 무시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과 어리석음까지 겸비한 이들에게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따위를 쓴 움베르트 에코가 지은 칼럼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허를 찌를 듯한 웃음과 해학, 유머로 읽는 이들을 즐거움으로 이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에코가 기호학자에서 유머 작가로 변신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장난기 어린 익살꾼이 되어 썰렁한 웃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1부 실용 처세법에는 '기내식을 먹는 방법',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 따위를 싣고 있다. 그 중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에서 에코는 "미국의 철도 교통을 생각하면 핵전쟁 이후에 달라질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말한다.

 

이유는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예닐곱 시간은" 늦고, "기차역은 썰렁하고 휑뎅그렁하기"하고, "차량은 불결하고 모조 가죽 좌석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미국 기차, 아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에코의 일갈로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있고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48쪽)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기차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라가 경제대국이니, 경찰국가이니 하면서 지구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구상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읽는 이들은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에코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 수 있다.

 

세상과 권력은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항상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맞습니다'라는 답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에코 생각은 다르다. 에코는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느 세제회사 경품으로 받은 것임을 누구나 빤히 아는 백과 사전을 가지 집 거실에 버젓이 진열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맞습니다'라는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백과 사전을 찾아 맞으면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이렇게 말한 답은 "훌륭하십니다"이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었던 안 죽었던 상관이 없다. 아니 에코는 "훌륭하십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은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면 잡아가는 세상이다.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의 채증에 걸려 경찰이 당신에게 연락하여 "경찰입니다. ooo씨입니까?" 묻는다면 당신은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ooo 짐 꾸려!"라고 답한다. 아니다, "야구 보러 갈까요"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상관없다. 오직 "맞습니다"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에코처럼 할 수 있을까? 경찰이 "ㅇㅇㅇ씨 입니까" 물을 때에 "맞습니다"가 아니라 "포도 좋아하는데요"라고 멎지게 한 방을 먹이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에코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7쪽)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ㅣ이세욱 옮김 ㅣ 열린책들 펴냄 ㅣ 9,500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2003)


#유머#패러디#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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