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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3이란 숫자는 각별한 인연을 갖는다. 불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삼보(三寶)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의미한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는 각 걸음마다 부처님과 법(가르침·진리), 그리고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절에서는 하루에 세 번 예불을 올린다. 그때마다 불가의 기본 수행법인 절을 한다. 전통적인 절은 108배와 1080배, 그리고 3000배가 대세다. 36겁을 세 번 떨치는 것이 108배이고, 360겁을 세 번 떨치는 것이 1080배이다.

요즘은 '108배 다이어트'니 '108배 하고 미녀 되자'는 프로그램이 나올 만큼 절 수행법이 대중화되어 1만 배를 하는 불자들도 종종 있다. 이처럼 생활불교에서는 절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3000배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성철 스님이 입적했을 때이다.

성철 스님의 3000배... 명진 스님의 천일기도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은 채로 잠을 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과 용맹정진(勇猛精進) 10년 수행으로 유명한 성철 스님은 평생 속세와 관계를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했다. 큰스님은 종단(宗團)의 분규가 아물지 않은 가운데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여전히 합천 해인사 백련암(白蓮庵)에서 구도를 계속했다.

성철 스님은 백련암으로 자신을 찾아온 대중들이 3000배를 해야 만나주곤 했다. 사람마다, 또 수련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3000배를 하는 데는 6~1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땀이 비 오듯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꼬박 3000배를 한 뒤에 큰스님을 친견했고, 어떤 이들은 3000배를 마친 후에 '스스로 답을 찾았다'며 그냥 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백련암에서는 큰스님의 3000배 가르침을 기리는 불자들이 모여 3000배 수련을 한다.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19살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006년 11월 주지로 취임하면서 절의 살림과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매일 아침 예불을 거르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그리고 도심의 대형사찰로서는 처음으로 신도들에게 모든 재정을 공개하고 일절 문밖 출입을 금하고 천일기도를 올리면서 사찰개혁을 이끌고 있다.

사실 스님이 예불을 올리는 것은 학생이 공부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수행보다 포교에 전념하는 도심사찰에서는 스님이 예불에 빠져도 용인되곤 한다. 그런데도 명진 스님은 하루 세 번 예불에 참석해 1000배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약속한 1천 일을 못 채우고 907일째 되던 날인 지난 5월 29일 산문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불교의식의 재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봉은사 20년 신도인 권양숙씨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명진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한 '3치'가 MB 정권의 시대정신"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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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명진 스님은 회향일(8월 30일)까지 하루 세 차례씩 3000번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기도가 2999번에 그칠 것을 아쉬워하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명진 스님은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도라는 것, 수행이라는 것이 뭡니까? 법당에 가 절을 해야만 기도이고 선방에 들어앉아 참선을 해야만 수행입니까? 아닙니다. 세상과 더불어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는 것이 기도고 수행입니다. 더군다나 뜻하지 않게 죽은 이를 천도해주십사 하는데 수행자가 그 간절한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명진 스님 역시 불자인지라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방패와 곤봉, 경찰력으로 지탱하는 이명박 정권을 질타하면서 "몰염치하고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3치'가 MB 정권의 시대정신"이라고 일갈했다. 최근 느닷없이 중도 강화론과 서민 강조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이른바 '2MB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3치'는 안성맞춤의 치수이기도 하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만, 연설할 때마다 '첫째, 둘째, 셋째'가 입에 붙어 있는 김대중(DJ) 전 대통령만큼 3을 좋아하는 정치인을 찾기도 쉽지 않다. 71년 대통령후보 시절에 '3단계 통일론'으로 박정희를 혼쭐나게 했던 DJ는 지난 1월 이명박 정부 1년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3대 위기'라는 프레임으로 가둔 바 있다.

이 가운데 서울광장과 용산참사, 그리고 비핵개방3000은 이른바 '2MB 정권'의 3대 위기를 상징하는 '현장'이다.

'2MB 정권'의 3대 위기를 상징하는 현장

이명박 대통령은 2002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하자마 시청 앞 광장 조성을 추진해, 2004년 5월 1일 서울광장을 개방했다. 그는 당시에 "시청 앞 광장이 집회나 시위의 천국이 돼 시청이 심한 소음에 시달린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면서 "시청 앞 광장이 시정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이후 서울광장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는 광장이 열려 있을 때보다 경찰버스로 닫혀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오죽했으면 참여연대와 야당들이 나서 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자는 조례 개정운동을 벌일까 싶다.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 참사는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째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신 5구는 아직도 차가운 냉동고 속에 갇혀 있고, 이명박 대통령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대통령의 침묵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묵시적 동의를 의미한다. 경찰이 이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신부를 버젓이 구타하고, 검찰이 1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경찰 핵심 지휘관들의 진술조서 등이 포함된 3000여 쪽을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도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오히려 공권력의 폭력을 사면하는 인사로 책임자들을 중용하고 있다. 용산 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최근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로 복귀했다. 용산 참사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수사기록 3000쪽을 은폐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또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는 최근 용산 철거 현장 화재 사건 당시 작전을 그대로 재연한 종합전술훈련을 보란 듯이 했다.

서울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지난 2월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지난달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철거민 참사'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지난 2월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지난달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철거민 참사'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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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공권력의 폭력을 사면하는 인사로 책임자들 '복권'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뒤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공약이자 현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다. 그러나 비핵개방3000은 남북관계 악화의 주범으로 간주된다.

현재의 남북 갈등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남측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물론 노태우 정부 시절에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1조 1항조차 존중하지 않으면서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고 자존심을 긁고 있으니 북측이 대화의 자리에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여전히 홍보 부족을 탓하며 현장을 강조한다. 대통령은 재래시장 떡볶이집에 가서 어묵을 먹는 것으로 서민과 소통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서민 중의 서민인 철거민들은 폭력배로 몰아 대화를 거부하면서 도대체 어떤 서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대통령의 현장 강조 행보 때문인지 한나라당도 국민 곁에 다가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곁에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특히 사회적 갈등이 커질수록 현장은 많아진다.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아무리 부지런해도 현장을 다 돌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장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광장이다. 광장에서 소통하면 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 쉬운 길을 외면한 채 먼 길만 찾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活人)의 3000배를 외면하고, 살인의 3000쪽을 은폐하고, 북한 주민의 자존심을 욕되게 하는 3000달러만 고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은 광장의 소통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제 풀에 지쳐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청맹과니 정권이다. 또 용산참사에서 보듯 서민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야 할 공권력이 서민을 폭력배로 몰아 때려잡는 인면수심 정권이다. 또 상대가 받지 않을 비핵개방3000만 툭 던져놓고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전략인 '무대뽀' 정권이다.

그러나 앞으로 3년, 1천 일이 남았을 뿐이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 및 대선까지 선거도 3번이 남았다. 현명한 국민은 그때까지 참을 인(忍) 자를 3번 가슴에 새기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만큼 지켜봤으면 천일기도와 3000배를 안해도 스스로 답을 찾을 때가 되었지 않는가.


태그:#3000배, #3000쪽, #서울광장,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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