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이명박씨가 재산의 대부분을 내놓고 '재단법인 청계'를 만들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재산 의혹이 일었을 때 했던 약속이었고 또 당선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일부 비판도 있다. 그렇더라도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자연인 이명박씨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자연인 이명박씨가 동시에 대통령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유는 '재산기부 소회 발표문'에도 나타나 있다. 이 글은 (논리적인 연결도 약하고 내용도 좀 산만하지만) 자연인 이명박씨의 진솔한 인생관과 선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선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이 글이 여실히 보여준다.
두 가지만 지적해 보자. 첫째로,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서 제 재산을 의미롭게 쓰고 싶다"는 구절이 있다. 대통령이라면 이런 국민을 위해 개인 재산만이 아니라 국가 예산을 의미롭게 쓰는 방법을 당연히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강부자 정책을 추구하고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는지 모르겠다.
둘째로, 더 나아가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를 돕고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고대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권에서 어떻게 강제 진압을 통해 철거민을 죽음에 몰아넣은 '용산 참사'를 일으킬 수 있을까? 또 사후 처리를 보더라도, 반성의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인의 가치관이 정치인의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이명박씨가 역경을 뚫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헤쳐온 약육강식의 험난한 사회적 조건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명박씨가 일과 경쟁에 파묻혀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철학적 고민은 장애이자 사치일 뿐이다.(어떻게 보면 설혹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방면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단순형' 인간 같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이명박씨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대가를 주고받는 시장 속에서 각자 경쟁을 통해 힘껏 살아가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사회가 아닌 개인 차원의 선의와 자선을 통해 구제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씨가 시장과 경쟁을 기본으로 삼는 점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경쟁에는 조건이 있다. 경쟁의 성격이 적어도 소모적 경쟁은 아니어야 하고,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하며, 경쟁 결과 생기는 패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필자의 다른 글로 미룬다. 평화뉴스 2008/11/17 게재.
"경쟁은 선하고 규제는 악한가?" )
시장과 경쟁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평등"이 최소한의 의미라도 가지려면 경쟁의 세 조건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산기부 소회 발표문'은 사회적 무식 또는 위선의 증거가 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름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재래시장에 가서 목도리를 건네주어도 어묵을 먹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윤상 기자는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