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을 보내며 많은 사람과 많은 운동가를 만났다. 촛불은 평범한 시민을 활동가로 만들었고, 새로운 시민들을 불러모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촛불처럼 심지가 곧고 뜨겁게 타오르던 사람들이 때로는 모여서 큰 빛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빛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1년 동안 명멸한 촛불들도 적지 않았다.
한때는 100만인이 지켜주었고 많은 시민들이 65일 동안이나 머물러 주었던 촛불. 1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직간접적으로 촛불에 머무르면서 목격했던 것을 바탕으로 글을 남긴다. - 기자 주
촛불 1년, 아직도 뜨거운 사람들
촛불집회가 뜨거웠을 때 활약했던 '광우병대책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정신은 누가 이어받았나? 물론 공안당국의 탄압으로 짓눌린 측면이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국가폭력이란 것이 어디 한두 번 벌어진 일인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시민들과 함께 위험을 감수하며 들고 일어났던 초심이고 시민들의 마음을 끌어주던 구심점이자 사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갔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어했던 그의 사상(꿈이라고 해도 좋다)만은 남아서 많은 이들이 이 뜻을 잇는 것과 같다.
되돌아 보면 촛불 1년 동안 많은 담론과 의제가 제출됐지만 딱히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촛불이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대한 반작용에서 타올랐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반영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방의 프레임 안에서 싸우는 수세적인 싸움에서는 전선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다.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고립되고 동력은 고갈된다.
그 후로도 촛불시민연석회의,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새로운 명패를 내건 단체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시류에 따라 의기투합된 단체일 뿐 아직까지 국민적 메시지는 주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 촛불을 계승하면서 1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임은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과 강남촛불을 비롯한 지역촛불 커뮤니티, 소울드레서를 비롯한 인터넷 카페 등이다. 지금도 충분한 동력을 가지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모임의 공통된 특징은 뚜렷한 목적의식과 목적의식에 부합하는 실천방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진알시는 이웃에게 정론매체를 배포하는 일로부터 시작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1년 동안 120만부 이상 신문을 배포하며 신문을 읽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을 정도다. 현재는 60여 개로 늘어난 전국 배포망을 활용해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언소주는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으로 상징되는 언론소비자 활동을 통해 전국민에게 '언소주'라는 이름을 알렸다. 코너로 몰린 조선, 중앙, 동아일보 같은 부역언론이 정부와 결탁해 부당한 법적 탄압을 가했지만 오히려 이는 언소주의 외양을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최근 언소주가 불매운동 2차 대상으로 삼성을 지목된 데 대해서 부역언론들은 나날이 지면을 통해 '욕설' 수준의 성토를 했지만 이로 인해 언소주의 회원가입은 2~3만명 늘어 10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삼성은 이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최근에는 부역언론들이 삼성불매에 대한 비판기사를 거의 중단하다시피했다. 이는 언소주 운영자에 대해 검찰이 구속과 기소라는 강수를 뒀을 때 언소주 회원이 4~5만명 늘어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결과적으로는 국가사업 수준의 홍보와 부역언론의 대대적인 홍보를 토대로 언소주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는 것은 이 시대의 역설적인 희극이 아닐 수 없다.
강남촛불은 2008년 7월 2일부터 지금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순번을 정해 강남역 6번 출구에서 패널전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지지방문 등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촛불은 지역공동체로 파고들어 지역현안을 고민하고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는 활동을 하는 등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 4일 조계사 옆 우정국공원에서는 특별한 벼룩시장이 열렸다. 주로 여성들이 이용하는 성형수술 정보 교환 카페인 <쌍코 카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추모 광고 모금을 위한 "훈내나는 바자회"를 열었다. 소울드레서나 MLB닷컴 등 정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취미카페 등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여는 것은 촛불 이후의 풍경이다. 카페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사회적 대의와 만나서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진알시 "진실도우미 1천명 프로젝트"에 담아낸 소망
촛불 1년과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라는 의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촛불 계승자로서의 고민이었다. 여기에는 촛불 1년에 대한 성찰과 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과제는 두 가지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것인가? 촛불의 동력을 어떻게 하면 광장에서 일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이 적어도 1년 전에 일상으로 옮겨붙었다면 지금 상황은 훨씬 달라져 있을 것이다. 광장에서 헤매다가 명박산성에 막히고 전경 방패에 찍히고 검찰, 경찰 등 당국의 전방위적 탄압에 휘청거리게 되었다. 촛불집회를 비유하자면, 우리는 65일 동안 '외식'을 한 셈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외식을 할 수는 없다.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이란 바로 '일상'을 말한다. 밥을 먹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외식할 생각만 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지갑의 돈(운동의 동력)을 다 써버렸다.
진실도우미 1천명 프로젝트는 이러한 배경에서 추진된 것이다. 진알시는 전국에 60여 개의 배포팀이 있다. 자원봉사자 회원들은 매주 1회씩 경향, 한겨레, 미디어오늘 등 이른바 정론매체를 받아 이웃들에게 배포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깨띠를 매고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활동은 일반 시민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진실도우미 1천명 프로젝트>는 진알시 전 회원은 물론 일반인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최대 30부까지 신청할 수 있다. 배포대상 역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 친구, 주변 사람으로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같은 대학친구, 고등학교친구, 그리고 군대간 좋아하는오빠(-,-!ㅋㅋ), 친한 슈퍼아줌마등등...
이 기회를 같이 나누고싶은분이 너무많네요..... (작년여름부터 촛불의료봉사를 해오고있는 치위생과학생입니다)
50세 관광버스 기사입니다.
회사 동료기사 들과 함께보려합니다. (로미오)
학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정의가 살아있는 미래를 살아야할 우리 학생들과 같이 보겠습니다. (학원강사 냇가 님)
제 주변에 이맹박 비슷한 인간들이 몇 있습니다.
그런놈들부터 개몽 시켜볼 생각입니다.
더운데 몸 건강하시고 수고하십시요~~ (라마조띠)
집사람, 동서, 서울의 큰 아들, 아주 골수 장로 누님, 형님, 그리고 동호회 회원 너댓분 정도 배포할려고요.(나그네)
일단저는 좀알고싶습니다. 잘접할수도없는 진실이고 내가알아야 다른사람도 가르쳐줄수잇어서..(캐스퍼)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자주 가는 단골집 몇 집에 책을 선물해야겠어요^^(와이키키)
저희 가게에오시는 분들에게 배포할예정 (컴퓨터 수리점)(솔로몬)
배부는 내가 자주가는 소아과에 한부.. 남편회사에 2부..
그리고 나도 하나 보고, 택시 자주 타니까 택시 기사님들께..(연주)
우선 제 사무실 근무자 50명 정도되는데 같이 보고 싶구요
그리고 친구사무실 등등 해서 배포예정입니다 (또치얌)
대학 동아리방에 좀 가져다 두려구요.
저희 동아리와 연합한 곳도 있어서 몇군데 나눠서 가져다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 인터넷 동호회 모임(뮤지컬)이 있는데 거기도 몇권 가져가고 싶네요.
아 - TK토박이라 오로지 한나라당만이 진실인줄 알고계시는 저희 부모님도 빠트릴 수 없죠.(미해)
톱 10에게 정독 필명 내리고..
7월 중에 술자리(? ^^;) 만들어 정독 확인 및 양심 압박 들어가겠습니다..(제 배포 계획..^^;)(냥이엄마)
제가 다니는 Hamburg 한인 천주 교회에 몇부.(본당 주임 신부님이 마산 교구 소속인데 이번 시국 선언에도 참여하셨습니다.)
Hamburg 지역 한국 식당 5곳, 그리고, 교포/주재원 지인 분들에게 드렸으면 합니다.(민성아빠)
위에서 지침을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발한 배포계획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신청자들이 남긴 글이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기발할 수 없다.
시사IN, 위클리경향, 한겨레21 3대 정론매체 주간지가 주요 콘텐츠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즈음하여 20만부 배포한 데 이어 49재에도 역시 최대 20만부까지 배포를 할 계획이다.
진알시의 자원봉사 정신에 의해서 배송비는 참여자가 부담하며(택배비 3000원 가량), 매체는 호외인 만큼 무료로 배포된다. 10부를 신청한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위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론매체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 비해서 신뢰도가 크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는 진알시 배포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시민이 대부분으로 정론매체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매일 진알시로부터 신문을 받아보던 수동적인 입장에서 직접 챙겨서 배포를 하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는 언론운동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차 배포는 정론매체와 진알시가 주체였지만, 2차 배포는 그야말로 전국민이 주체가 되는 셈이다. 개인 신청을 30부로 제한한 것은 참여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선택이다.
<진실도우미 1천명 프로젝트>를 통해서 최소 1만명의 '개념시민'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큰 수는 아니지만, 앞으로 개념시민들은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으로는 1년 전에 갚았어야 할 '묵은빚'을 뒤늦게 갚는 것 같아 후련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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