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야, 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거 재밌어?""네.""그 동안 공부한 거 너한테 도움되는 거 같애?""예. 이제 잘 알겠어요."00이와 1학기 마지막으로 나머지공부를 하였습니다. 2학년이지만 학기초 학년 자체로 본 시험 점수가 낮고 수업시간에 낱말뜻도 잘 모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는 낱말이 부족하고 말놀이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보충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아이에게 5월쯤 물었습니다.
"선생님하고 남아서 국어 공부 좀 해볼래?"좋다고 하여 어머니에게도 허락을 얻어 1주일에 두 번 남아 닿소리, 홀소리, 숫자 쓰는 순서부터 끝말잇기, 낱말 찾기를 하였습니다. 수학공부는 수모형으로 두 자릿수 덧셈과 뺄셈하기, 시계보기를 하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곱셈을 공부하였습니다.
왜 마지막이냐고요? 방학이 다가오기도 하고 이제 어느 정도 기본적인 내용이 갖춰졌다고 봐서입니다. 7월 학업성취도평가에서는 절반의 성취를 했습니다. 100점에 비하면 낮다고 볼 수 있지만, 아이가 학기초에 비해 아주 많이 좋아졌고 친구들과 말놀이도 잘 합니다. 확실한 기준은 없지만, 처음에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너무 자의적인 판단이고, 나중에 또 부진아가 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사 마음대로 아직 어린아이를 부진아로 판단해 체계적인 자료도 없이 지도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니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사실 이 부분이 걱정되어 항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에서 하는 부진아정책은 이보다 심하고 비계획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진아에게 도움을 주는 건지? 고통을 주는 건지? 지난 3월 전국 초등학교 4-6년이 진단평가라는 명목으로 일제고사를 보았습니다. 작년부터 본 이 시험은 교과학습부진아를 선별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아이들 파악이 어느 정도 끝난 3월 말에 본 이 시험에 비판도 많았습니다. 담임이나 학교차원에서 할 일을 굳이 국가에서 보느냐,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수업시간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 교사 업무 줄여서 수업이나 하게 해다오 여러 말들이 있었습니다.
교과부는 강제가 아니라 시도교육감이 자율로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책임지도"를 외쳤습니다. 뒤늦게 채점프로그램이 나와 5월 8일 어버이날 선물로 개인성적표를 주고 교과학습 부진아를 선정하였습니다. 학교마다 지도수당을 주고 담임이 책임지도하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언제 어떤 식으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도 없습니다.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은 30시간이 넘는 수업에다가 부진아 지도까지 하고, 교과학습 부진아도 지친 몸으로 보충수업하랴 피곤한 선생님 눈치보랴 고생하고 있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부진아에서 탈출하는 걸까요?
학습 부진아, 낙인만 찍고 구제는 나몰라라교과부는 시도교육청별로 시험을 본 것이라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는가 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8월과 12월에 시험을 봐서 결정한다고 합니다. 공문으로는 나온 적이 없고 교감선생님들에게 메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들어들어 알고 있거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언제부터 이메일로 주요 정책이 오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지역은 담임이 한다는 곳도 있고 전혀 이야기가 없다는 곳도 있습니다. 3학년 기초학습부진아는 부진아 지도 강사도 있고 지도계획, 자료, 평가계획이 명확하지만, 더 많은 학년에 해당하는 교과학습 부진아는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국가가 보고 왜 책임은 담임들에게 다 떠넘기냐는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 천안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3월에 일제고사 보고 교과학습 부진아가 된 아이들에게 열심히 해서 6월 시험 잘 보면 구제해준다고 했어요. 남는 걸 싫어하는 아이인데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에는 점수를 잘 받았어요. 그런데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천안교육청에 물어봤더니 구제해주면 안된다고 해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냐니까 모른다고 해요. 아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학년에서는 담임들이 알아서 구제해주기로 했어요.그야말로 부진아증만 남발하고 이후 계획은 제대로 세우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경제위기에 이어 민주주의 후퇴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MB난민이 생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도 그 중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제 일제고사로 부진아가 된 아이들까지 난민으로 만들 계획인가요? 교과부의 직무유기가 아이들에게는 이중, 삼중의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전에 교과부는 일제고사 부진아 지도 실태와 구제계획부터 내놓기를 바랍니다.
진단따로, 처방따로 멋대로 정책학교에 부진아정책 추진 일정을 안내한 서울시교육청도 문제는 있습니다. 전국적인 진단평가는 2008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부진아정책은 조금 변했습니다. 작년에는 진단평가 시험지 그대로 보고 구제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이전 학년에서 부족한 내용을 보정해서 현재 학년에 결손을 방지한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은 현재 학년 내용을 가르치고 그 내용으로 구제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진단 내린 내용과 처방내용, 완치(구제)여부 판단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실로 들어가보면 분명히 3월에 부진아 판별을 안 받았는데 수업 이해도도 낮고 학업성취도 점수가 낮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정작 부진아라는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점수도 잘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조차 문제가 있다고 항변합니다.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는 건가요? 도구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요?
대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이는 일제고사정책이 교육 현장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내린 해결책이라기보다 정보공시제를 추진하기 위한 부대정책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이 아니라 정치라는 겁니다. 정말 이러다 부진아들이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학숩부진아를 선별한다는 일제고사가 정책효과나 책임도 없는 묻지마 정책은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부진아의 개념과 부진아 지도 실효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정책은 제발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전국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기본적인 내용부터 추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