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열리나 학수고대했는데 이렇게 걷게 되니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을 이제 열다니, 너무 오랫동안 막아 놓았던 것 아닙니까?"
지난 1968년 말에 막아 놓은 이래 41년 만에 다시 열린 소귀고개(우이령)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기쁨과 함께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경기도 양주지역 주민들이 마차와 소달구지를 끌고 서울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개방 소식을 듣고 성남에서 아침 일찍 달려왔다는 40대 초반의 등산객은 그래도 기분이 매우 좋은 표정이었다.
개방 다음날인 11일 오전 10시경 우이동 탐방센터를 거쳐 소귀고개로 올랐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120번 버스를 갈아타고 우이동 종점에서 내려 곧장 소귀고개로 향했다. 고갯길은 입구에서부터 소식을 듣고 찾아온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41년 만에 열린 소귀고갯길이 반갑고 아쉬운 탐방객들대부분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모임을 통해 함께 온 등산객들은 입구에서부터 새로 열린 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지도를 함께 바라보며 어디까지 갔다 올 것인가를 의논하기도 하고, 인근에 있는 도봉산이나 삼각산 산행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길 양족에 늘어서 있는 음식점 거리를 지나 탐방안내센터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정장을 한 전경이 서있는 초소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그동안 통행제한을 하다가 새로 열린 길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왼편에 전투경찰대 막사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흙길이었다. 흙길은 산뜻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부터는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을 만큼 길바닥이 마사토로 잘 다져져 있었다. 실제로 아주머니 몇 사람은 신발을 벗어 손에 들거나 배낭에 매달고 걷는다. 맨발로 걷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으니 매우 좋다며 기분 좋게 웃는다.
주변의 숲은 싱그럽고 울창한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지역이어서 삼림이며 자연환경상태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좋아 보였다. 장마철에 활짝 갠 날씨가 무더웠지만 숲이 무성하여 느낌은 매우 시원하고 상큼했다. 고갯길 좌우에 빽빽이 들어찬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길은 약간씩 굽어 돌며 완만한 오르막 경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길 아래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유 있는 모습들이다. 길가 숲에는 빨갛고 노란 나리꽃이 피어나 예쁜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는다. 가끔씩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도 만날 수 있었다.
고갯길에서 만난 싱그럽고 멋진 풍경들1시간여 만에 고갯마루에 오르니 북쪽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모자를 벗고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갯마루에는 유사시에 길을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커다란 사각 콘크리트 덩어리가 조금은 흉물스럽다.
길가에 서있는 이정표엔 소귀고개(우이령)란 표지와 함께 '교현리 3,0km' '석굴암삼거리 1,0km' '우이동 1,5km'라고 쓰여 있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시작되는 골짜기 입구에서 탐방센터까지 거리가 1,6km이니 이곳까지 3,1km를 걸어 올라온 셈이다. 시간은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소귀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니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넓은 마당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답다.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편 길가에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선 오른편 산등성이에 솟아있는 도봉산 5봉, 다섯 바위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우람하고 멋진 모습이다. 사람들은 5봉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길가 몇 곳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멋진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자 군 유격장 안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석굴암 삼거리였다. 이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1km쯤 올라가면 천년고찰 석굴암이 나타난다.
천년고찰 석굴암과 등산객들의 체력단련장이 된 군부대 유격훈련 시설들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여기저기 유격훈련 시설이 있어서 등산객들의 체력테스트와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밧줄을 붙잡고 급한 경사각을 오르거나 암벽등반 연습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계곡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밧줄을 이용한 '밧줄타기' 코스에서는 아주머니 등산객 몇이 담력을 시험해보는 모습도 보였다.
석굴암은 암자였지만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했다. 당당한 규모의 대웅전이며 그 뒤편 산자락에 세워져 있는 범종각과 산신각의 모습, 그리고 새로 세워지고 있는 건축물들이 작은 암자라기보다 당당한 거찰의 모습이었다.
석굴암에서 5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출입을 못하도록 폐쇄되어 있었다. 석굴암 해우소로 가는 길가엔 누렇게 익은 살구들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 탐스럽다. 그 옆 길가에 피어 있는 동자 꽃들의 모습도 화사했다. 몇 사람의 등산객들은 12시부터 시작되는 점심공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굴암을 둘러보고 내려와 양주시 교현리로 향했다.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걷기는 더욱 수월했다. 그런데 오른편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망대 조금 아래 왼편 길가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놓여 있어서 노인부부가 앉아 쉬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새로 열린 우이령 길엔 쉼터가 부족하여 편히 앉아서 쉴만한 장소가 마땅찮았다. 그런데 길가에 있는 평평하고 적당한 크기의 바위는 다리 아픈 등산객들에겐 안성맞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마침 노인부부가 일어서는 중이어서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다른 등산객이 거기 앉지 말라고 말린다.
길가에 떨어져 내린 커다란 낙석 두 개, 위험은 알고 있을까?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바로 위 절벽 윗부분을 가리킨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살펴보니 이게 웬일, 바위가 굴러 떨어진 흔적이 역력하지 않은가. 조금 전에 노인부부가 앉아 있던 두 개의 바위는 바로 위에서 굴러 떨어진 낙석이었던 것이다.
"이 길은 뉴스에 보니까 어제 개방행사에 경기도지사도 다녀갔던데 아무도 보지 못했나? 저렇게 커다란 낙석이 두 개나 있는데."
"높은 사람들 눈에 이런 게 보이겠어요?"
"저 절벽 밑엔 안전 울타리라도 설치해 놓아야 할 것 같은데."
지나가던 두 사람이 어제 있었던 개방 행사 이야기를 하며 탐방객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은 그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절벽 위에서 굴러 떨어진 낙석은 개방행사가 있기 하루 전인 지난 9일 폭우 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낙석이 굴러 떨어지며 할퀸 자국엔 작은 나무들이 뭉그러지고 부러진 모습도 볼 수 있었고, 4~5미터 높이의 절벽 위엔 또 다른 낙석 위험도 있어 보였다.
길에서는 붉게 익은 산딸기를 따거나 길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며 단속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승합차를 타고 몇 번인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과연 이 낙석을 발견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에게 그 바위에 앉지 말라고 경고한 등산객은 내려가는 길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며 부지런히 내려갔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 교현리 국립공원탐방안내센터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교현리쪽 입구에는 군부대와 함께 군인들이 초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41년 만에 개방된 소귀고갯길은 이달 26일까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제한 개방된다. 그러나 27일부터는 생태계보전을 위해 출입인원을 제한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하루 780명씩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것이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쪽과 양주시 교현리 쪽에서 각각 390명씩에게만 입장을 하게 하는 것이다. 41년 만에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우이동 소귀고갯길은 산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멋진 산책명소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위험이 방치되는 것은 곤란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더욱 세심한 안전관리와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 130, 170번 이용
시내버스: 109, 144, 151, 1144, 1161, 1218 번 이용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