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가수 이상은씨는 '담다디'라는 노래를 통해 기억된다. 하지만 그는 <더딘 하루>(1991년)와 <공무도하가>(1995년), <외롭고 웃긴 가게>(1997년) 등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작가주의' 싱어송라이터로 거듭 났다. 특히 도쿄와 오키나와, 뉴욕, 런던 등에서 음악작업을 하며 '보헤미안 아티스트'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그런 이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이란 영토에만 가두어 두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에 이름을 올렸으며, 최근에는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무대에 올랐고, 안치환, 전인권 등 음악인 600여 명과 함께 '탐욕과 통제의 시대를 거스르는 대한민국 음악인 선언'에도 참여했다.
특히 이씨는 다음주 초에 발행될 <자본론> 해설서에 추천사를 써 화제다. 그가 직접 추천사를 쓴 책은 강상구씨의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레디앙미디어). 강씨는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와 KBS노조공정방송추진위, 민주노동당(교육국장), 진보신당(기획실장)에서 일했으며, 지난해에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문화과학사)을 펴냈다.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아야겠다는 사람에게 좋은 길라잡이"이씨는 추천사에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경제 공황이라는 큰 사건을 맞이하면서, 매일매일 내가 하는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떻게 가치로 환산되는지를 알고, 신이 되어 버린 돈의 파괴적 위력을 깨닫고, 또 어떻게 우리가 착취당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책"이라고 호평했다.
'노동의 가치'와 '물신화된 자본', '착취 구조' 등을 묻던 이씨는 "책장을 덮은 후에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하나의 벽돌이 되어 버린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고, 자기 인생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자본주의 극복의 실천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씨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바르고 투명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깊은 잠을 깨우고 현실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명경지수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하이, 마르크스 바이, 자본주의>에 추천사를 쓴 데는 아버지의 선물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2002년엔가 아버지로부터 맑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작인 <공산당선언>을 설날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하이, 마르크스 바이, 자본주의>를 펴낸 레디앙미디어의 여미숙씨는 "이상은씨가 아버지한테 <공산당선언>을 선물받았다고 얘기한 걸 본 적이 있다"며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펴내면서 이씨에게 추천사를 의뢰하게 됐다"고 전했다.
여씨는 "이씨가 매니저를 통해 '원고를 다 읽어본 뒤 결정하겠다'고 전해왔고, 이후 정말 재미있어서 원고를 끝까지 읽고 추천사를 직접 써주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공산당선언> 선물받아... 나는 23세기 한국의 젊은이처럼 행동"
실제로 지난 2005년 12월 인터뷰 웹진 '퍼슨웹'과 대중음악비평 웹진 [weiv]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씨는 "아버님이 3년 전 설날 선물로 <공산당선언>을 주셨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음악을 통해 어떤 퍼포먼스를 할 때 저 혼자 모든 문제가 해결된 23세기 한국의 젊은이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이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다음은 그가 왜 왜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인터뷰 대목이다.
- 그래도 사람들이 이상은씨로부터 기대하는 게 있을 수 있는데요."아버님이 3년 전에 설날 선물로 <공산당 선언>을 주셨는데, 그렇게 현실을 바꿔야지 하는 사람이 있고 현실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사람이 있는 거죠. 저 같은 물고기자리의 꿈쟁이는 저 혼자 23세기거든요. 뭘 바꾸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냥 저 혼자 23세기의 좋은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을 해버리거든요. 난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 사명이 있겠지만 혼자 퍼포먼스를 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음악을 통해 어떤 퍼포먼스를 할 때 저 혼자 모든 문제가 해결된 23세기 한국의 젊은이인 것처럼 행동해요. 그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른 거잖아요. 저는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요. 문제를 안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를 보면 그렇게 돼요. 그 문제가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미 그런 문제들이 다 해결된 한 200년 후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얘길 해서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든가. 그런 게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문제를 말하는 것보다 어떤 상태를 보여주는 것."
- 미래를 사는 것?"그렇죠. 언제나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해야 될 때면 아방가르드하게 진보적으로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상상하면서 보여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니까요. 딱 그 그림을 보여주는 거죠. 그건 다 역할이 다른 거니까. 이게 문제야 저게 문제야 하는 경우는 글 쓰시는 분들이 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렇게 보여주는 방법이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좋은 그림, 좋은 상태, 좋은 그 어떤 것,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 홍대 앞도 혼자 그렇게 보여요. 그럼 그걸 표현하자. 좋은 상태를."
[추천사 전문]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바르고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아마도 끝까지 다 이해하며 읽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난해하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자본론>의 내용을 조목조목 쉽고 재미있게 풀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성스레 잘 풀어 놓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경제 공황이라는 큰 사건을 맞이하면서, 매일매일 내가 하는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떻게 가치로 환산되는지를 알고, 신이 되어 버린 돈의 파괴적 위력을 깨닫고, 또 어떻게 우리가 착취당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책입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에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하나의 벽돌이 되어 버린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고, 자기 인생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바르고 투명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깊은 잠을 깨우고 현실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명경지수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모두가 바로 알아야 하는 바로 그 지점을 우리는 지금, 세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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