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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후군 시리즈 1편
▲ <실종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1편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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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에서 실종이나 유괴는 흔한 소재가 아니다.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요즘 세상에서, 실종이나 유괴는 다소 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 작가 누쿠이 도쿠로는 실종과 유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발표했다. <실종 증후군> <유괴 증후군>이 그 작품들이다.

'사건'이 아니라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실종과 유괴가 일본 사회에 증후군처럼 퍼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증후군 시리즈' 1편인 <실종 증후군>을 읽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작품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실종된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모의 곁을 떠나서 혼자 살고 있으며 학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카운셀링같은 인생상담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들도 몇 명 된다.

실종되는 젊은이들, 유괴되는 아이들

이런 공통점만으로는 각각의 사건을 추적하기가 힘들다. 납치나 살인사건이 아닌 단순 실종사건은 경찰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실종됐을 가능성이 많다. 부모의 억압과 사회적 책임감에서 벗어나고자 신분을 바꾸고 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젊은이들의 생활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학교를 그만둔 여성은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한다. 조직생활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비추어보면 낙오자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식의 실종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증후군처럼 퍼져간다는 점이다. 가출한 여고생은 좋아하는 밴드를 따라다니며 마약에 손을 대고,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실종으로 시작된 사건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사회와 가정에서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다.

<유괴 증후군>에 등장하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어린아이를 납치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납치하고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한다. 정해진 금액을 받으면 아이는 하루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낸다. 납치범은 버젓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가 아이를 납치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머리만 조금 쓰면 곧 '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 자신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일이 진행되는 것,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납치범의 유일한 낙이다.

증후군 시리즈에서 활약하는 다마키 비밀수사팀

아이를 납치당한 부모는 납치범의 협박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한다. <실종 증후군>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수사력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증후군 시리즈에서는 다마키 비밀수사팀이 움직인다. 경시청 인사과에 근무하는 다마키를 대장으로 퇴직한 경찰관들이 모인 수사팀이다.

이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찰생활을 그만두고 현재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건설현장 노동자, 거리의 탁발승, 사립탐정 등. 이들은 수사과에서 다루기 힘든 사건들을 초법적인 수단으로 해결한다. 증거를 조작하고 용의자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기도 한다. 용의자를 동요하게 만들려고 거짓으로 기사를 조작하고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런 수사방식 때문인지 다마키 비밀수사팀의 실적은 검거율 100%를 자랑한다. 그렇더라도 범인을 잡기 위해서 비도덕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수사팀의 한 명은 그동안 신뢰를 보여왔던 대장 다마키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마키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기계같은 태도로 다마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나하나 처리해간다. 가정에서 탈출하려는 젊은이처럼, 다마키도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적인 증후군에 감염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종과 유괴라는 독특한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런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다마키 비밀수사팀의 모습 또한 흥미롭다. 거기에는 현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덧붙이는 글 | <실종 증후군>, <유괴 증후군> 누쿠이 도쿠로 지음 / 노재명 옮김. 다산책방 펴냄.



실종증후군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다산책방(2009)


태그:#실종증후군, #유괴증후군, #누쿠이 도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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