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2003년. A씨는 요구르트 신제품 홍보를 위해 '충격적'인 이벤트를 열었다. 그는 한 화랑에서 일반인과 기자 수십명만 들여보낸 가운데 알몸에 밀가루를 바른 전라의 여성누드 모델들을 등장시켰다. 분무기로 요구르트를 알몸에 뿌려 밀가루를 벗겨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모델들은 마지막으로 무대를 돌며 관객들에게 요구르트를 던져주었다.
[사례 2] 2002년.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B씨의 가게엔 성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물건이 즐비했다. 그중에는 '실감나는' 남성용 자위기구도 있었다. 이 기구는 사람 피부와 색깔·감촉이 비슷한 실리콘을 소재로 하여 여성의 허벅지, 성기, 항문 부위 등을 본뜬 제품이었다. 그는 밖에서 보이는 쇼윈도가 아닌 내부 진열대에 이 제품을 전시했다. 여러분이 보기엔 어떤가. 그 정도는 허용해도 된다? 저속하다?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의견이 갈리겠지만. 아무튼 법원은 A씨와 B씨를 처벌했다. 이유는 한마디로 'OO하다'는 것이었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다음 설명을 더 들어보자.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시키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대법원 2000도4372 판결 등)
주관적인 음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바로 '음란'이다. 추상적인 이 문장이 우리 사회의 음란을 처벌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A씨와 B씨는 이 기준에 따라 불법을 저지른 셈이다. 그런데, 뭔가 속시원한 기준은 아니다. 그만큼 처벌대상으로서의 음란을 정의하기 힘들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오죽했으면, 미국 대법관 스튜어트는 40여 년 전 판결에서 "음란한지 아닌지는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라고 했을까.
사실, 음란의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가릴 것 다 가려도 야한 몸짓을 보여주는 연예인을 보며 음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선 옷을 다 벗고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법은 주관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특정한 행위를 놓고, 그것이 음란하다고 판단하면 처벌하고 규제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법원은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인의 입장에서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2006도3558 판결 등)는 일관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평균인의 입장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이 글에 나오는 법원의 판결을 냉철하게 평가해보길 바란다.)
실제로 한 화가는 여고생이 성인 남자의 성기를 빨고 있는 모습, 팬티를 벗어 음부와 음모를 노출시킨 모습 등을 묘사한 그림을 책으로 만들고 전시회를 여는 등 '예술활동'을 하였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그 화가의 예술작품을 두고, 법원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음란하다"고 본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도 논란이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형사처벌의 단죄를 피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 법이 허용하는 선인지 알기 위해선 구체적인 사건을 놓고 판단하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그걸 왜 알아야 하느냐고? 전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알몸 요구르트 퍼포먼스 '유죄'... "성기노출은 음란"위의 사례를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우선 A씨가 벌인 퍼포먼스는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직접 노출된 것이 문제였다. 대법원(2005도1264)은 "신체노출의 방법 및 정도가 제품홍보를 위한 행위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섰으므로 음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음란 행위가 반드시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적인 의도를 표출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아직 성기 노출까지는 안된다는 대법원의 방침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자위기구를 전시한 B씨는 왜 유죄일까. 답은 '진짜 성기와 너무 똑같아서'이다. 대법원(2003도988 판결)은 "어떤 물건이 음란한지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나 반포, 전시 등의 상황에 관계없이 그 물건 자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판시했다.
"남성용 자위기구가 수요가 있고 어느 정도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기구는 형상 및 색상 등 여성의 외음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나 진배없는 것으로서, 여성 성기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통념상 그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시킬 수 있고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자위기구가 법원의 처벌을 피하려면 실제 성기와 생김새가 달라야 하고, 성욕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말일까. 눈으로 보았을 때 아무 느낌이 없고, 흥분되지도 않는 물건을 자위기구로 사용하라는 말일까. 성적 도의관념에 적합한 자위기구는 도대체 어떤 걸까. 이런 기구를 쓰는 사람이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은밀히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위기구 남성용은 유죄, 여성용은 무죄?그런데 최근 상반되는 판례가 주목을 받았다. 여성용 자위기구에 대해 법원이 관대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사례3] 성인용품을 수입하는 C회사는 2007년 여성용 진동 자위기구를 수입했다. 이 물건은 전체 길이가 21.5㎝ 정도에 진동기가 내장되어 있으며 실리콘 재질로 발기한 남성 성기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물건은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세관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며 수입통관을 보류한 것이다. C사는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은 C사가 승소했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제 상고심의 판단만 남아있었다. 지난 6월 23일 대법원(2008두23689)은 다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기구는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재현하였다고는 하나, 그 색상 및 형상이 성기를 개괄적으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고 그 정도만으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서 "이 기구가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물건이 저속한 건 사실이지만 법으로 규제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의 의견이다.
기존의 판례도 음란물을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2008도254 판결 등)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인터넷사이트에 성행위 장면을 올린 혐의(음란물 유포)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법원은 최근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은 "동영상들은 성교나 자위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성기나 음모의 노출이 있거나 폭력이나 강제를 수반하는 등의 장면은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교성과 함께 성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또한 출연자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처럼 연출한 것으로 보일 뿐이므로, 음란성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화끈한' 손님 접대, 법정에 선 결과는 음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다음 사례를 보면 법원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례 4.] 유흥주점 사장 D씨는 단속에 걸렸다. 여종업원들의 손님 접대가 '화끈'했기 때문이다. 한 여성은 브래지어만 착용한 채 남자 손님이 가슴을 만지도록 했고, 다른 여성은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가슴이 보일 정도로 어깨끈을 밑으로 내린 채 손님을 접대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손님들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수치심을 해하였다"며 D씨를 기소했다. 솔직히 말하자. 검찰의 시각대로 이 정도를 음란으로 본다면, 전국의 단란주점, 룸살롱은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한민국 유흥가에는 이보다 더 진하고 노골적인 풍경이 얼마든지 펼쳐지고 있다.
대법원도 이걸 두고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사회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2009년 2월 선고 2006도3119)고 말했던 걸 보면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하다.
이 판결은 "'음란'이라는 개념은 사회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이고도 유동적인 것"이라며, "음란성에 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사회 일반의 성적 도덕관념이나 문화적 사조와 직결되고 아울러 사생활이나 행복추구권 및 다양성과도 깊이 연관되는 문제로서 국가형벌권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적절한 분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음란은 양지로 나와야 한다여러 사례들을 보니 대법원의 판결에 수긍이 가는가. 딱 하니 정리되는 것은 별로 없는 듯 싶다. 그래도 확실한 건 성기(특히 여성)가 등장하면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개인 의견으로는 특정인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비록 성적인 행위라도 법이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법원은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음란을 평가한다"고 강조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음란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우리가 언제 공개된 장소에서 성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 법원의 판결은 소수 법률가의 시각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차병직 변호사는 <상식의 힘>이라는 책에서 "성적 흥분을 일으키면 대체로 수치심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법률가들의 감정판단에 음란물을 맡겨서 과연 상식적인 결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단적인 예로 '스와핑', '쓰리섬', '페티쉬' 같은 낱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음지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 모른 척 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것도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규제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하면 그 자체로 음란한 것인가.
음란이라는 개념도 양지로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다소 민망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예술가, 문학가, 사회학자, 여성학자와 함께 공론의 장에서 얘기해야 한다. 복잡한 세상은 저만치 법을 앞서가고 있다. 언제까지 법원에만 음란의 판단을 맡겨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뒤로는 별의별 성적 쾌락을 다 좇으면서 앞에서는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음란하다.
법에서 처벌하는 음란, 어떤 것이 있나 |
법에는 음란이라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대부분 처벌이 뒤따른다. 법에서 규제하는 음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형법이다. 제243조(음화반포등)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목적으로 음란물을 제조, 소지, 수입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형법에는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죄, '공연음란죄'라는 것도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여고 앞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바바리맨을 떠올리면 된다. 이것도 음화반포와 같은 수위로 처벌 받는다.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래방, 이발소, 목욕탕, 여관, 유흥주점 등에서 음란행위를 하게 하거나 알선하면 안된다. 음란물을 판매, 대여하거나 보게 해서도 안된다. 징역 3년, 벌금 2천만 원 이하의 형을 받는다. 또한 위계 또는 위력으로 성교행위 등 음란한 내용을 표현하는 영상물 등을 촬영한 사람(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징역 10년 벌금 1억 원 이하의 중형을 받을 수도 있다.
언론과 인터넷도 음란물 규제의 대상이다. 방송이 음란, 퇴폐 및 폭력 등에 관한 심의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1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인터넷)신문, 잡지, 뉴스통신사가 음란한 내용을 보도하여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한 때에는 발행정지나 등록취소를 당할 수도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인터넷에 음란물을 올리거나 판매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뿐 아니다. 자동차에 음란 행위를 묘사한 그림이나 문자를 표시하거나 음란한 광고물을 설치해도 전과자가 될 수 있다. 음란업소에 취업을 소개한 사람은 징역 7년의 중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청소년보호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군행형법, 유선 및 도선사업법, 전파법,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등에도 음란은 처벌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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