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옷장에 감춰둔 해골은 없는가.(말하지 않은 비밀이 없느냐는 뜻) 만약 당신이 그걸 지금 당장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경로를 통해 그걸 찾아낸다면, 당신은 '아웃'이다. 말 그대로 끝장이다." (백악관 인사담당자가 후보자와의 면담에서 가장 마지막에 하는 말, <청와대 vs 백악관> 중 157쪽에서 인용)
천성관이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3, 14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에 말바꾸기와 거짓말로 일관했다. 결국 자신은 총장직을 잃었고 자신의 조직 검찰을 국민들이 극도로 불신을 표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그의 혐의는 두 가지였다. 부동산 투기 여부와 지인 박모씨와의 금전 거래 의혹.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이 아무리 형편없다 해도 어떻게 이런 의혹조차 사전조사가 되지 못했던 것일까. 한심하다는 자평은 일단 젖혀두자. 우리보다 기준이 몇 배는 더 엄격하다는 미국 백악관의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서두의 인용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백악관의 후보자 조사는 매우 강도가 높으며 긴장의 연속이다. 한겨레 기자 박찬수씨가 이번에 펴낸 <청와대 vs 백악관>이라는 책에는 백악관 인사검증 시스템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백악관의 검증시스템은 수많은 절차를 갖추고 있다.
우선 백악관 인사국장과의 면담이 진행된다. 면담 중에는 영미권의 유명한 속담인 '당신 옷장에 감춰둔 해골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꼭 등장한다. 면담 중에 밝히지 않은 건이 차후에 밝혀지면 곤란해질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그 면담을 무사히 통과한 후보자는 10여 종의 서류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 서류들은 과거 세금 납부와 환급 기록을 조사하는 데에 동의하는 서류, FBI가 후보자의 배경조사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항목의 질문지, 기타 재산 서류 등이다.
FBI의 후보자 배경조사는 으레 몇 주일이 소요되며 투입되는 인원도 대규모다. 그 조사가 끝나면 말 그대로 "후보자의 발가벗은 몸이 햇볕 아래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조사 결과 후보자의 재산 중에 공직과 이해 충돌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후보자는 윤리위원회를 통해 그 재산의 처리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 마디로 "공직 지명 전에 그 재산을 팔라"는 지시를 받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재산이 아까우면 공직을 포기하고 아니면 재산을 팔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남자, 그 남자의 배신
인사검증 절차와 투입비용만을 놓고 봐도, 미국에서 고위공직자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천성관'이라고 불릴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9․11이 낳은 영웅' 버나드 케릭이다.
버나드 케릭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뒤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했던 인물이다. 9․11 당시 뉴욕경찰청장이었던 그는, 당시 매우 헌신적인 현장 처리능력을 보여주며 전국적인 인기를 모은 바 있었다. 그때 그는 현장에서 부시를 만났다. 케릭을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하는 과정에는 예의 백악관의 '표준검증 절차'가 가동되었다. 하지만 케릭은 '왕의 남자'였다. 그에 대한 FBI의 배경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후보자 지명을 발표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리고 언론의 대대적인 검증이 시작되자, 케릭의 과거가 속속 드러났다. 한 마디로 그는 절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낙마한 데에는 불법 이민자를 고용해 탈세했다는 것이 가장 컸지만, 정작 시민들의 분노를 산 것은 그가 "경찰로 재직하며 조직범죄에 연루된 회사와 불법커넥션을 가졌다는 점, 자신의 아파트에 부과된 세금을 미납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점, 9․11 이후 경찰관 휴식용으로 제공된 아파트에서 애인과 밀회를 나눈 점" 등이었다.
검증이 물렁하면, 언론에 '물먹는다'
케릭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언론은 인사검증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의혹을 세상에 알린 것도 언론이었다. 그의 의혹이 처음 보도한 것은 7월 8일 한겨레신문의 기사(제목 "천성관 수상한 '고급승용차 리스'", 관련 링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4570.html)였다.
이후 다른 언론들도 여러 의혹들을 캐내며(그 의혹에 대한 태도들은 제각각이었지만) 다양한 내용의 팩트들을 쏟아냈다. 물론 이런 의혹들을 청와대에서 몰랐을 리는 없다. 천성관의 지명 직전의 아파트 판매나 야당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사전 로비건에서 보이듯 이를 대충 덮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의 흠집을 숨길 방법만을 고민했을 뿐, 정작 여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전혀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총애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확실치 않은 (혹시 자신에게?)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다니"라는 말을 직접 내뱉게까지 된 것이다. "그 흠집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나중에 여론의 평가가 어떨지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기준
<청와대 vs 백악관>에서 저자 박찬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하다고 말한다. "몇 주간 FBI가 달라붙어 고위 공직후보자의 뒤를 캐는 미국보다는 못할는지 모르지만, 단기간에 검증을 하는 데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엔 백악관이 '표준검증 절차'를 본떠 청와대만의 '인사검증 매뉴얼'을 만들기까지 했다.
"장관이 대개 대통령과 4년 임기를 같이 하는 미국과 달리" 보통 1년이면 장관이 바뀌는 우리의 경우는 며칠 안에 장관 후보자를 가려내야 하는 실무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그런 데 익숙해져 있다. 정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2~3일이면 중요한 사안들은 거의 체크할 수 있다"(『청와대 vs 백악관』 168쪽에서 재인용)고 말한다. 정부 전산화를 통해 후보자의 부동산, 위장전입, 병역, 전과 등이 불과 몇 시간만에 도착한다는 말이다.
<청와대 vs 백악관>. 이 책은 이밖에도 두 나라의 인사검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의 글을 선보이고 있다. 2부 <'권력의 허브'를 구성하는 것들-인사검증에서 정상회담까지>에서는 '인사검증 시스템의 허와 실' '부동산 투기 vs 탈세' '낙하산 vs 스포일스시스템' '3000 vs 6500' 등 인사검증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와 각 기관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점 등을 다루고 있다.
매번 인사검증의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 만큼, 인사를 미리 준비해보는 '섀도우 캐비닛(shadow cabinet)' 방식은 어떨까. 이런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답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범적인 고위공직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참 여러 가지다.
"우리나라에선 미리 인사를 준비하는 게 어렵다. (…)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리스트가 외부로 흘러나갈 경우, 대통령 후보가 입게 될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다. (…) '미국처럼 제도화된 인사준비팀을 꾸리는 순간, 여러 가지 정치적 오해와 논란을 빚게 된다. 상대 당의 공격 뿐 아니라, 리스트(후보군)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반목이 생긴다. 아마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걸 견뎌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이 책, 193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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