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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색시 입술보다 더 붉게 물들어가는 고추들. 어제 보니까 고추잠자리도 등장했더군요. 고추잠자리가 세월의 빠름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색시 입술보다 더 붉게 물들어가는 고추들. 어제 보니까 고추잠자리도 등장했더군요. 고추잠자리가 세월의 빠름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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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오는데 도로변 고추밭에서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고추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색시 입술보다 더 빨간 고추들도 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는데요. 결실의 계절,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전날에 쏟아진 폭우와 바람으로 떨어진 하얀 국화꽃 모양의 고추꽃들이 밭고랑을 하얗게 수를 놓고 있었는데요. 그래도 가지마다 탐스러운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올해 고추농사는 풍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마침 "영그는 꼬치를 보믄 꼭 자식 같다!"고 했던 하 씨 아주머니가 밭고랑 사이를 오가며 옆으로 삐져나온 가지를 바로 잡아주면서 줄을 쳐주고 있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면서 다가갔습니다.

어젯밤 비바람에 고추밭이 걱정되어 나오셨느냐고 물으니까, 바람도 바람이지만, 1년에 3-4회 정도는 줄을 쳐줘야 한다면서, 들깨랑 참깨랑 고구마랑 심은 밭에도 가봐야 하는데 종일 줄만 치게 생겼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넘어진 가지를 세워주면서 고추 줄을 치는 하 씨 아주머니. 고춧가루는 잘 말린 고추를 구입해서 닦아 빻아먹어야 한다는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넘어진 가지를 세워주면서 고추 줄을 치는 하 씨 아주머니. 고춧가루는 잘 말린 고추를 구입해서 닦아 빻아먹어야 한다는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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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추밭에도 농약 뿌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빨갛게 물드는 고추를 보니까,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주머니가 자주 밭에 나와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나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언제부터 고추를 수확하기 시작하느냐고 물었더니 7월 말이나 8월 초부터 따기 시작할거라며 "한 번 따기 시작허믄 가을까지 따는디, 처음보다 두 물이나 세 물에 따는 꼬치가 더 맛있어유. 긍게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 때 따는 꼬치를 보내달라고 전화가 오쥬"라고 말했습니다. 

씨알이 굵고 통통한 고추가 많이 열렸다고 하니까.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그리도 첫 번이는 아무리 많이 열렸어도 아까서 얼릉 못 따먹어유. 나중에는 괜찮지만 첨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그든유."라며 "올 봄이는 하우스에 꼬치 모종을 혀서 팔었는디, 내 모를 사다가 심은 밭이서 영그는 꼬치를 보믄 참 이뻐유"라며 눈앞의 고추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꺼먹꺼먹 혀짐서 썩응게 약도 안 줄 수가 없어유. 내가 먹는 꼬치다가도 주니께유. 편허게 농사짓고 싶고, 돈 들어가고 힘드는디 누가 약을 주고 싶어서 주겄어유. 안주믄 꼬치가 지대로 영글지 못 헝게 줘야지 어치께 허겄어유"라며 "그리도 내가 먹을 꼬치는 약을 뿌린 날짜를 알응게 약기운이 떨어질 때쯤 따가꼬 먹으니까 그나마 쫌 괜찮쥬"라며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작년 가을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널어놓고 말리는 고추. 고추는 맛도 맛이지만, 풍성하고 예쁘기도 합니다.
 작년 가을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널어놓고 말리는 고추. 고추는 맛도 맛이지만, 풍성하고 예쁘기도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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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얘기를 듣고 있자니까 불량 고추장을 항공사 기내식으로 판매한 농협 제조책임자가 구속되고, 불량 고춧가루를 유통 시킨 일부 농협과 초중고 급식 재료로 공급하다 적발됐다는 식약청 발표가 생각나더군요. 해서 불량 고추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긍게 꼬치가루는 사먹는 것보담 말린 꼬치를 사서 일일이 닦어가꼬 빵궈먹는 게 젤 안전혀유. 글안허믄 농약을 먹는 거나 다름 없응게유. 누가 농약을 치지 않었다고 허믄 '아나 농약!'이라고 험서 그짓말 작작 허라고 머라고 허쥬." 

"사람들은 나한티도 꼬칫가루를 빵가서 보내달라고 허는디, 위험헌 생각유. 나도 바쁜디 일일이 딲고 말려가꼬 빵가서 보내줄 시간이 있간듀. 그냥 보내야지···. 나 같은 사람도 못 허는디, 꼬치농사를 크게 전문적으로 허는 사람들이 어치게 일일이 딲어서 빵가서 보내줄 수 있겄냐 이거쥬."
  
아주머니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얘기를 듣고 나니까, 내가 먹을거리에 너무 방심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은 믿고 1kg씩 사먹었거든요. 하긴 불량 고춧가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70년대에도 가짜 고춧가루가 나돌아 주부들을 골치 아프게 했으니까요. 

찌개와 김치 등 어떤 반찬에도 들어가야 제맛이 나는 양념. 당뇨 예방 및 혈당 강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고춧가루는 시장에서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지만, 불순물과 정상적인 유통 절차 문제는 의문이 남습니다. 

불량 고춧가루를 판매하는 악덕 장사치들만 원망할 게 아니라, 소비자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서 우리 건강과 직결되는 양념이니만큼, 조금 성가지고 힘이 들더라도 믿는 곳에서 마른 고추를 구입해 닦아서 빻아 먹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불량고춧가루#고추밭#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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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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