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의 뒷면에는 강제수용의 아픈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1980년 국방부는 무건리 일대의 땅 550만 평을 수용하여 한·미 두 나라 연대급 병력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는 대규모 군사훈련장, 무건리 훈련장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 곳에서 살던 직천리·무건리 주민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쫓겨나 대부분 근처 마을인 오현리로 이주를 오게 됐다.
비록 쫓겨온 땅이었지만 이주민들은 원래 오현리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다시금 소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정착한 지 10여 년, 국방부와 미군은 급기야 오현리 땅까지도 훈련장으로 사용하고자 넘보기 시작했다. 1996년 국방부는 무건리 훈련장을 비롯한 주변 훈련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권역화 훈련장(총 1050만평)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오현리 일대를 훈련장 확장부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2008년, 국방부는 오현리 일대를 강제수용하기로 결정하고 보상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에 반발한 오현리 주민들과 여러 시민단체들은 '무건리훈련장 확장저지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만들었다. 대책위는 국방부의 일방적인 오현리 땅 수용을 막기 위한 활동을 벌임과 동시에, 국방부에 각종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대책위의 타협안에 대한 검토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현재 미군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전 유연성' 계획과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평택미군기지 확장 문제와도 연관이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현재 오현리 주민들의 사정은 평택미군기지 이슈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언론비평웹진 필화 기자 일동은 3박 4일 동안 오현리 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무건리 훈련장 확장 문제를 집중 취재하였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계획이 오현리에 남긴 것들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버스 창문 너머 빗줄기 사이로 현수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반대', '주민들의 삶의 터전 빼앗는 국방부는 각성하라' 현수막에 적힌 각종 구호들이 버스가 오현리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버스가 선 곳은 어느 군부대 입구. 경비를 선 군인의 총부리가 왠지 모를 서늘함을 준다. 그 서늘함을 애써 무시하고 마중 나온 박석진 대책위 상황실장의 차량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는 허수아비가 서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느 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허수아비가 아니다. 허수아비들이 하나 같이 '미군은 물러가라' '주민들은 살고 싶다' 등의 문구가 적힌 옷들을 뒤집어쓰고 있다. 박석진 상황실장은 대학생들이 오현리 주민들과 연대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준 허수아비라고 일러주었다.
이윽고 차가 멈춘 곳은 옛 직천 초등학교 건물. 운동장은 여기저기 파여 웅덩이가 고여 있고, 학교 건물은 어른 키 높이로 자란 풀들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가 않는다. 상황실장을 따라 들어간 학교 안은 각종 폐자재와 도자기 파편,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하다. 이곳이 폐교된 지 오래된 학교임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직천 초등학교는 오현리 주민들이 자식들 교육을 위해 직접 돈을 모아 지은 학교라고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계획을 발표한 이후 학교를 폐쇄하였다. 이후 잠시 지역발전 차원에서 진행됐던 '도자기 학교'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강제 중단됐다. 결국 지금은 거미줄과 폐자재가 풍기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이 학교 건물에 남아 있게 됐다.
마을 입구의 현수막과 허수아비, 그리고 폐교된 학교건물. 이 모든 것이 국방부가 훈련장 확장을 계획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남긴 것들이다.
"여러분, 절대 그들에게 속으시면 안 됩니다"이윽고 땅거미가 내리고 시계바늘은 9시를 향해 간다. 발걸음을 학교건물 옆 비닐하우스 건물로 옮겼다. 비닐하우스는 대책위가 촛불집회 자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자그마하게 마련된 무대 위에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 338회'라고 적힌 게시판이 놓여 있었다. 338회. 그간 오현리 주민 분들의 지난한 투쟁 과정이 338이라는 숫자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한 명, 두 명 도착하는 주민들 중에는 막 하루 작업을 끝마치고 작업복 차림 그대로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는 분도 있었다. 박석진 상황실장은 이 분들이 하루 일을 끝내고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할 시간도 반납하면서 오시는 거라고 귀띔해줬다. 사실 말이 하루 1시간이지, 매일 가족들과 보낼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주민들 간의 결속을 다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 사실 거대한 국방부와 주한미군의 힘에 맞서 자신의 땅을 지켜내고 그곳에서 농사일을 짓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투쟁의 한 과정이리라.
약 20명 정도의 주민들이 모이자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마을 주민 몇 명의 발언이 차례로 이어지고 주병준 대책위 위원장의 발언이 있기 전에 뒤늦게 도착한 마을 주민 한 분이 연설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오늘도 국방부 측 장교 급 인사들이 집에 찾아와서 자신에게 "지금 팔지 않으면 나중에 손해보실 거다. 당신들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다"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분, 절대 그들(국방부)에게 속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도둑질이 아니고 뭐야"촛불문화제가 끝난 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주민 분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주민 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토지감정을 한답시고 하필이면 작년 9월 16일에 감정평가사들이 마을에 들어왔어. 그것도 연휴(한가위) 땐데 말야. 감정평가사하고 전경이 600명 병력을 이끌고 와서 위압감을 조성하는데 그게 뭐냔 말이야. 그래서 우린 저항했지. 손으로 (전경을) 때리면 옆에서 전경들이 카메라로 찍어낸 뒤에 연행해 버리니까 손을 안 쓰고 어깨로 밀치면서 말이야. 그렇게 하니까 잡아가지 않더라고. (웃음) 하지만 감정평가사들이 가져온 지적도를 뺐었더니 다 잡아가더라고. 무슨 업무방해였나 공무집행방해였나 하는 이유를 들어서. 이게 무슨 공무집행이냐고. 도둑질이지. 남의 땅을 아무 허락 없이 그냥 막 들어가는 게 도둑질이 아니고 뭐야."당시의 토지감정은 오현리 주민들의 땅을 훈련장 확장부지로 만들기 위한 수순 중 하나였기에 주민들의 저항은 거셀 수밖에 없었다. 경찰 측은 이러한 저항에 '공무집행방해죄'라는 혐의를 들씌워 마을 주민 7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파주경찰서 앞에 찾아가 집회를 벌인 주민 30여 명까지도 경찰은 마구잡이로 연행하였다.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죄'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한 주민 할아버지는 "예를 들어 훈련장 주변 토지가 한 평에 50만원 한다고 하면 국방부는 토지 보상으로 20만원도 주지 않으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법에 따라서 보상계획을 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법이 국민들을 위하여야 하는 것 아니냐 이말이여. 제발 지금 오현리 상황을 많이 알려주고, 이런 상황을 바꾸도록 노력해 줬음 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언론비평웹진 필화(www.pilhwa.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