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변. 해마다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로 유명한 곳이다.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관동마을. 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산골마을이다. 마을이 온통 매실나무와 밤나무, 감나무에 파묻혀 있다. 장맛비 탓일까? 200여 명에 가까운 주민이 생활하는 곳이지만 인기척을 찾을 수 없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계곡물만이 우렁찬 소리를 질러대며 섬진강을 향해 내달린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친환경 선도마을' 표지판만이 외지인을 맞는다. "수려한 풍광과 친환경 농업이 저희 마을의 자랑이죠." 수확하고 남은 매실 하나를 따서 입에 넣는 방선호(58) 이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관동마을은 '친환경 품질인증' 마을이다. 그것도 한두 농가의 얘기가 아니다. 마을주민 67가구에서 농사 짓고 있는 202㏊ 전체가 인증을 받았다. 이 가운데 58가구는 매실과 배, 밤, 감농사를 지으며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나머지 9가구는 무농약 품질인증이다. 그런 연유일까. 과수원 바닥이 온통 들풀들의 세상이다.
관동마을 주민들이 모두 친환경 품질인증을 획득한 것은 지난 2006년 9월.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지 10년만의 결실이다. 마을 전체의 친환경 농법을 이끈 이는 방 이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친환경'이란 말조차도 생소하던 1993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친환경 농업만이 살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자신의 농원 한쪽에 실험실을 만들고, 실험 결과물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이를 토대로 묵묵히 친환경 농업을 실천했다. 제일 먼저 항공방제를 거부했다. 항공방제의 특성상 어느 한 곳만 빼고 농약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한테 눈총도 많이 받았다.
"주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죠. 과수 농사는 한 번 망치면 끝이거든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1996년 마을 이장이 되면서 주민들에게 친환경 농업을 적극 권장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한 명씩 한 명씩 설득해 가는 보람은 쏠쏠했다.
처음엔 "어떻게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느냐"며 반발도 컸다. 한밤중에 몰래 농약을 치는 주민도 있었다. 심지어 주민들끼리 찬반논쟁을 벌이며 다툼도 일어났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방 이장의 성공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친환경 농업에 가속이 붙고 대세가 되어 갔다.
주민들은 자체 규약도 만들었다. 농약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직불금 변제와 함께 민사상의 책임까지 지기로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유기농업을 같이 실천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약초 추출물을 이용,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신할 친환경 약재와 천연비료도 만들었다.
한편으론 해충을 잡기 위해 마을과 과수원에 유화등 1000여 개를 설치했다. 이 유화등은 매화문화축제 때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무엇인지 몰라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해충잡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다. 따로 알리지 않았는데도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을 보여준 셈이 됐다.
주민들에게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큰 소득이었다. 이젠 직접 판로 개척에 나섰다. 마을의 옛 지명을 딴 '귀골친환경영농회'란 자체브랜드도 만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 공동선별장과 저온창고, 그리고 액비 제조시설과 미생물 배양시설까지 갖췄다.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위한 노력은 기본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엔 친환경 농산물 1555톤을 생산해 전문 유통업체와 직거래 등을 통해 23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올해는 직거래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유통마진을 줄이면서 조금이라도 주민소득을 높여보기 위해서다. 계약 재배를 통한 안정적인 판로 확보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마을을 농업인과 소비자들이 직접 보고 체험하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교류와 직거래도 활성화시키고요. 생태체험, 소비자 교육, 의식주에 친환경농업을 접목한 자연치유, 전통가공식품과 유기농 음식체험 등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머무는 농촌체험 관광지로 마을을 바꿔가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태산 같다는 방선호 이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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