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영농조합법인 '연두농장'에서 분양한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도시텃밭을 분양받아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첫 삽을 뜬 건 3월 29일. 이날 처음으로 우리 가족은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며 풍년을 기대했답니다. 집과 멀어 지난 4개월 동안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2주에 한 번꼴로 농장에 나가 주말마다 농사일을 해왔답니다.
10여평 남짓의 텃밭에 그동안 꽤 많은 농작물을 정성껏 심었더랬습니다. 고추만 해도 100여주 가량 심었습니다. 그리고 호박 가지 토마토 상추 등 십여가지 작물을 묘종이나 또는 씨앗으로 심거나 뿌렸답니다.
지난 6월 초에는 심어 놓은 고추가 넘어지지 말라고 2만여 원어치의 지주를 사다가 하나씩 지주에 묶어주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이제는 접어야 할것 같습니다. 지난 몇 달간 소중하게 가꿨던 밭이 몇 차례 수해로 고추는 겨우 세 그루 정도만 살아 남았고 나머지 작물도 모조리 물속에 잠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수경재배 가능한 상추만 몇번 뜯어 먹은 게 전부인 '텃밭농사'
지난 3월 말 시작된 올 텃밭농사는 지난 5월 중순경까지는 순탄하게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6월 중순경 밭에 나갔는데 작물이 온통 시들어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수해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10여평 남짓의 밭 중 끝 부분의 작물이 몽땅 죽어 있었습니다. 유독 싱싱함을 자랑하는 것은 상추 뿐이었습니다. 그 옆에 씨를 뿌려 제법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던 아욱은 누렇게 뜬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욱 옆에 심어 놓았던 호박도 제법 잘자라는 것 같더니만 잎이 말라 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물에 잠기면서 일어난 현상 같았습니다. 저희 텃밭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물고랑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곳을 도로 공사하면서 메운 게 그 원인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어쨌든 비가 많이 와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격적 장마철도 아니고 갈수기인데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의심을 품으면서도 이날 금속재질의 지주를 20여 개 사와 고추와 토마토 줄기를 세워주기 위해 땅에 박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묶어주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두 아들들은 고추 한 주씩마다 비료를 정성껏 뿌려주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날도 작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아무런 농약을 치지 않은 상추잎을 양껏 뜯어와 이곳저곳 인심을 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상추는 무척이나 빠르게 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3월말에 심고 5월 초부터 서너번 뜯어다가 무쳐도 먹었습니다. 또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싱싱한 상추가 있는 핑계를 대고 두어번 삼겹살 파티를 푸짐하게 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수경재배가 가능한 상추의 특징을 몰랐기에 말입니다.
새로 심은 고추는 물론 다른 작물들도 몽땅 시들어 버리고
3주 전이었습니다. 2주만에 정왕 텃밭에 나갔는데 그 앞서 심었던 고추묘종이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보름여 사이에 뭔가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살펴보니 한참 잘 자라던 고추묘종에는 자라다만 고추가 시든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또 다시 수해를 입은 것입니다. 가지도 몽땅 죽어 있었습니다. 다른 작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상추만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다른 작물은 몽땅 시든 채 죽어 있었습니다. 고작 살아 있는 것은 밭 상단 귀퉁이에 토마토 두 그루 정도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을 뿐입니다. 같이 간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거봐! 저번에 내가 비료 조금만 주라고 그랬잖아."
"비료 때문이 아니잖아!"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자기가 봐도 비료 때문에 작물이 죽은 것 같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2주 전 새롭게 고추묘종 2판(한판에 40개 남짓)을 사다가 새로 심었는데 그때 잘자라라고 비료를 한움큼씩 뿌려줬는데 아내는 시든 채 죽은 이유가 비료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밭 고랑은 물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살펴보니 한동안 잘자라다가 물에 잠기면서 고사한 거였습니다. 밭이 몇 차례 수해를 입게 된 것은 그러나 자연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바로 옆에 도로를 새로 내면서 물골을 강제로 메워버리고 도로를 만든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밭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폭 1미터 남짓의 자연형 수로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떠다가 밭에 물을 준 적이 있는데 그곳을 살펴보니 수로가 완전히 흙으로 메워져 있었습니다.
그 물골을 타고 빗물이 흘러가지 못하니 지형이 낮은 우리 밭쪽으로 물이 밀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날 상추만 몇 움큼 뜯고는 불편한 마음을 금치 못한 채 농사일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밭은 물웅덩이로...."아빠 이거 올챙이다!"
일요일(19일) 이었습니다. 3주 전 텃밭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온 뒤라 아내에게 밭에 가자고 해도 시큰둥합니다. 가꿀 작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올 농사는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정왕 텃밭으로 둘째 아들과 함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텃밭으로 가는 길에 둘째 아들의 말이 의미심장 합니다.
"아빠 밭에서 고기 잡을 수 있을까?"
"?"
둘째 아들은 지난번 텃밭을 보고온 후 새로 생긴 물웅덩이에 물고기가 들어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말을 제법 심각하게 하는 거였습니다. 씁쓰레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요.
3주 만에 다시 와본 텃밭의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둘째 아들의 말마따나 밭고랑은 물로 가득 차있었고 밭 한 편에는 자연스럽게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작은 올챙이가 꾸물거리고 있었습니다.
호박을 심어놓은 밭 가장자리에는 갈대가 어느새 수북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졸지에 밭이 무논으로 바뀐 것입니다. 각종 잡초들은 어느새 밭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자라 있습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제법 탐스럽게 자라던 각종 작물들은 이제 그 자취조차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물이 가득하고 땅이 질척거려 밭에 들어가 나머지 작물을 수확할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그나마 아내가 용기를 내 밭에 들어가 서너주 가량 남아 있는 고추에서 풋고추를 따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토마토 가지에서 채 익지 않은 푸르스름한 토마토도 몽땅 거둬냈습니다. 올해 농사는 이걸로 마감을 하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도로를 만들겠다며 밭 옆에 만들어 놓은 도로에는 자연스럽게 물고랑이 만들어 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더라도 자연은 또 다른 물고랑을 제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토마토와 고추를 따서 담은 바구니가 그나마 묵직합니다.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다른 텃밭을 살펴보니 그쪽 농사는 포실합니다. 우리집 텃밭 농사가 몇 차례의 수해로 빈털털이가 된 반면 다른 텃밭들에는 각종 채소와 야채가 7월 햇살을 담고 푸르고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농사를 망친 이유는 결국 도로를 새로 낸다며 땅을 갈아 엎은 인재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도로를 만든다고 물고랑을 멋대로 메워서 난데 없는 물벼락을 맞게한 책임을 그 건설회사에 물어야 하는지를 한동안 고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