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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와서 10년 넘게 친정집 뒷바라지한다고 늘 남편에게 미안했는데, 저만 나쁜 여자 됐어요. 이러다 조카만 아니라, 친정집 가족 다 잃게 됐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N은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딸아이 앞에서 설움에 받쳐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차마 딸아이 앞에서만큼은 눈물을 참아보려 하는지 눈물이 글썽한 가운데서도 끅끅 소리를 삭이고 있었고, 덕택에 눈동자는 물론 콧등까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가 설움과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다. 사건은 그녀의 조카인 응우엔이 지난 4월에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거품을 입에 물고 쓰러지면서 발생했다. 병원으로 실려 간 응우웬은 응급처치도 받기 전에 숨을 거두었고,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던 응우웬의 유해송환을 친척인 N이 맡게 되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았다고 하지만, 유해송환 절차에 대해 무지했던 N은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노무관계를 담당하는 대사관 직원들이 유해송환을 위한 서류 발급 비용과 시신 화장 비용으로 칠백만원을 요구하였고, N은 모든 비용을 상해보험에서 처리를 해 준다는 말에,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에서 요구하는 비용을 선 지불했다.

 

N이 유해송환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느낀 것은 대사관측에서 요구한 비용이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상해보험 보상이 있다고 하니 큰 문제 없을 거라 기대했던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응우웬 유족에 대한 상해보험 보상비는 일천 오백만원이었다.

 

그런데 유족 보상금을 받아 든 친정에서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 조카 목숨 갖고 장난치느냐"며 성토를 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있던 유가족이 N에게 화를 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받았던 보상금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었다.

 

유가족은 '자신들이 알기로는 회사 일 끝나고 노래방에서 직원들과 놀다 죽은 사람도 삼천만원을 받았는데,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집에 가던 사람이 죽었으면 그보다 더 받아야 하지 않느냐. 최소한 삼천만원을 받았어도 말을 않겠는데, 어떻게 된 게 보상을 천오백을 받았다 하고, 거기서 또 칠백을 썼다고 하느냐. 한국에 살면서 그럴 수 있느냐'며 N을 몰아세웠다.

 

그 말을 들은 N은 삼천만원을 보상받았다는 사람이 일했던 회사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달리 보상이 잘못된 건지 확인해 보려 백방으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근로자 상해보험> 약관상 질병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자연사한 경우, 최대 일천오백만원이라고 명시돼 있어서, 보상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산재처리가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느라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노무사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절차적인 문제만 놓고 보면 유족이 받은 보상금액은 보험 약관이 정한 최고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 측에서 N을 나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은 저렇게 받았는데, 이쪽도 최소한 어느 정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보험 약관에 대한 규정은 상관할 바 없다는 태도였다.

 

말로써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 측은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고, 보상금이 적다는 이유 때문에 N이 고생한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당히 불신하고 있었다.

 

N은 그로 인해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여간 미안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유해송환 과정에서 선 지급했던 돈을 조카를 위해 썼다고 생각하고 정 끊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N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N의 남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조카가 죽기 전에 임금체불 문제로 한 번 찾아왔던 적이 있다고 했다. N남편은 '당시에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관련 규정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했다.

 

N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응우웬의 사진만으로는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어찌됐든 N은 조카 응우웬 생전에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런데 응우웬의 유족은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라 한다"는 꼴로, N을 닦달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서 돕는다고 나섰다가 돈 잃고 사람까지 잃게 된 N의 딱한 처지가 안타까웠다. 멀리 이국에 시집 와서 10년 넘게 친정을 돌봤는데, 돈도 잃고, 사람도 잃게 되니 모든 게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 옆에 서 있던 딸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0년 넘게 고단한 삶을 살았을 N에게 조카의 죽음은 모진 상처가 되어 아픈 곳을 후비고 또 후비고 있었다.


#결혼이주여성#유족 보상금#외국인근로자상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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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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