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비닐봉지풀
- 글 : 방미진
- 그림 : 오승민
- 펴낸곳 : 느림보 (2009.6.26.)
- 책값 : 9800원
(1) 비어 있는 그림, 또는 열려 있는 그림
그림책 《나무》가 있습니다. '옐라 마리'라는 분이 나무 한해살이를 말 한 마디 없이 그림으로만 보여주는 책입니다. 아무 말이 없이 어떻게 나무 한해살이를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나누어 보여줄 수 있겠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림책을 펼치고 보면, 참으로 말 한 마디 없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답고 싱그럽게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빈자리가 있는 아름다움'이라고도 합니다만, 꼭 빈자리가 있기에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빈자리를 둘 수 있는 마음결이 되기에 아름다울 뿐입니다. 빈자리가 없도록 하는 마음밭이기에 아름다우며, 빈자리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바탕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봅니다. 말마디가 아주 짤막합니다.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앞뒤 면지까지 해서 서른 쪽짜리 그림책을 살피는 동안, '말없는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뿐 아니라 그림까지도 붓질이 몇 번 가지 않은 그림이라 '그림 드문 그림책'이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 비닐봉지는 혼자서 놀아. (3쪽)
국민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어느 겨울날이었고, 저는 그때 3학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면 1984년쯤일 텐데, 교실에는 나무를 때는 난로가 한복판에 있고, 저는 난로하고 퍽 멀찌감치 떨어진 조금 뒤쯤 되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추위로 곱는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겨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50분 동안 그림을 뚝딱 그려야 하기 때문에 옆 짝꿍하고 수다를 떨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그려내지 못하면 선생님한테 긴 자로 머리를 짝 소리 나도록 얻어맞거든요.
저는 여느 동무들처럼, 겨울날 눈싸움하는 동네 모습을 어기적어기적 그립니다. 눈이 오는 날 눈싸움 그림이니, 바탕은 온통 하얀 크레파스를 발라야겠는데, 그리 깨끔하게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추위에 땀 빼며 그려낸 내 그림이니 혼자서 잘 그렸다고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습니다. 다 그린 그림을 선생님한테 내는데, 어느 동무 하나가 도화지를 온통 하얗게만 발랐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는 동무인데, 선생님이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 온통 눈밭인 모습을 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뭐야? 그렇게 그려도 되냐?' 하면서 흠칫 놀랐고, 동무녀석 말이 옳다고 느끼면서, 나도 저렇게 생각했으면 더 쉽게 그렸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동무녀석이 그렇게 하얗게만 바르며 눈밭을 나타내는 그림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누구한테서 들었는지는 알쏭달쏭입니다. 누구한테서 들었든 책에서 보았든, 그 녀석이 우리 반에서는 맨 처음으로 그렇게 그렸으니, 앞으로 다른 동무들은 그렇게 따라 그릴 수는 없습니다. 따라 그리면 흉내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개는 훌륭한 상상력으로 이렇게 그렸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렇게 따라 그리면 맞아죽을 줄 알아!" 하고 윽박질렀습니다.
― 비닐봉지가 풀 사이에 앉았어. 조심조심 풀인 척. (11쪽)
눈밭을 하얗게만 그리는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데에서도 얼핏 들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점 하나만 찍는 그림도 있다는 이야기 또한 뒷날 들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점 하나 찍어 놓고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점 하나만 들여다볼' 뿐이고, 점을 둘러싼 아주 넓은 하얀 자리는 못 본다는 이야기도 어느 때인가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에는, 언제나 '종이를 꽉 채우는 그림'만 배웠습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무슨 빛깔로든 채우도록 배웠고, 못 채우고 남긴 곳이 있으면 자이든 몽둥이든 지휘봉이든 무엇으로든 신나게 얻어맞은 다음 채워넣기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 와 그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학교 그림그리기 시간은 우리한테 생각날개를 달아 주는 그림그리기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제도권 수업과정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 가만, 풀들이 손짓해. 같이 놀자고! (17쪽)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라고 떠오르는데, 이무렵 학교 국어시간에 '여백의 미'라는 말마디를 배웁니다. 쉽게 풀어내면, '빈자리가 있는 아름다움'이요, '빈 곳을 남기는 아름다움'이며, '굳이 다 채우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채워서 맛이기도 하나, 안 채워서도 맛입니다. 역사책 《연려실기술》에는 빈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하는데, 이 역사책을 처음 쓸 때에는 '아직 제대로 모르는 대목'이 틀림없이 있을 터이니 뒷사람들이 채워 놓을 수 있게끔 빈자리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리는 그림도 '그날그날 꼭 그리고픈 만큼'만 그린 다음, 나중에 더 생각이 나거나 다른 마음이 들 때 더 그려도 됩니다. 어떤 사람 눈으로는 '마무리 안 된' 모습일지라도, '마무리 안 된 그대로 좋은' 그림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가 다 되었다 할지라도, 기나긴 세월이 흐른 다음 돌아보면 '좀더 손질하거나 보태어야 할' 그림이 될 수 있어요.
그래, 그림책 《비닐봉지풀》은 빈자리가 넘실넘실거리는 그림책입니다. 빈자리가 가득가득인데 고작 서른 쪽짜리 그림책이면서 값은 9800원입니다. 책방에 선 채로 후루룩 라면 먹듯 훑으면 몇 분이 되지 않아 후딱 읽어치울 만합니다. 이 그림책 그림 하나하나를 한 시간씩 물끄러미 바라볼 사람이 있을 테지만, 이 그림책을 돈다발 세듯 주루룩 넘기며 "책 하나 다 봤어!" 하고 외칠 사람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서 덮었으나, 다음날 다시 한 번 들출 사람이 있고, 그 다음날 또다시 들출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거듭 들출 사람 또한 있겠지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에 넉넉한 자리를 두고 있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이란 넉넉한 마음자리로 받아안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에 넉넉한 자리를 두지 못한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이란 시시껄렁하다고 한 번 훑고 잊어버릴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2) 비닐봉지와 우리 삶
그림책 《비닐봉지풀》은 세 해가 꼬박 들도록 애써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이라고 합니다. 말마디 몇 줄 없고 그림자리 몇 가닥 없는 데에도 세 해를 꼬박 바친 책이라고 합니다.
틀림없이 《비닐봉지풀》은 퍽 썰렁하구나 싶도록 느끼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몹시 바쁜 우리 삶에 잠깐 느긋한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쉬는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이야, 참 환한 그림책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어린아이 하나가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흐름을 좇을 수 있다면,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보면서 어렴풋이 그림책 《나무》를 떠올려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다가 길가 풀포기에 걸린 비닐봉지를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가브리엘 벵상' 그림책 《꼬마 인형》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켜보거나 바라보거나 들여다보아 주는 이 없는 '버려진' 비닐봉지가 어찌 되는가에 눈길을 둘 수 있는 마음새라 한다면, 책을 덮고 나서 '마리 홀 에츠' 그림책 《나무 숲속》이 생각나 이 그림책을 새롭게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 비닐봉지풀은 바람이 되었어. (28쪽)
시를 쓰면 문학잡지에서 으레 한 꼭지에 5만 원이나 1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긴시를 쓰건 짧은시를 쓰건 매한가지입니다. 소설이나 산문을 쓰면 원고지로 셈해 한 장에 1만 원을 주곤 합니다. 원고지 1장에 2만 원 넘게 주는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열 몇 해 앞서도 시값은 5만∼10만 원이었고, 소설이나 산문 쓰는 값도 원고지 한 장에 5천∼1만 원을 쳐 주었습니다.
나라안에 시를 실어 주는 문학잡지는 그리 많지 않으며, 나라안 시인 숫자를 헤아린다면, 한 달에 두 군데 문학잡지에 시 두 꼭지씩 싣는다 하면, 시를 써서 20만∼40만 원을 버는 셈입니다. 그런데, 다달이 시를 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문학잡지는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많은 시인이 당신 시를 문학잡지에 실을 수 있을까요.
그림책 《비닐봉지풀》을 덮으면서 문학쟁이들 글삯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ㅅ 일꾼하고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아직도 원고지 한 장에 만 원밖에 안 줘요? 5만 원은 줘야 먹고살 수 있지 않아요?"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3년 전 7월 어느 날, 은행나무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은행알들이 다글다글 붙어 있었거든요. 외로워서 저렇게 꼭 붙어 있구나. 꽃들도, 풀들도, 모두 외로워서 닿으려고 닿으려고 손을 뻗으며 안간힘을 쓰는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길가에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낄 곳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요. 사람들이 삼삼오오 오가는 거리에서 그 풍경에 녹아들지 못하는 내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그 비닐봉지처럼 느껴져서 한참을 바라보았지요 .. (글쓴이 방미진 님 말)
이 땅에서 '사람 돌보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았을까요? 대학교 등록금이 한 해 천만 원이라지만, 오늘날 유치원 한 해 교육삯 또한 천만 원이 조금 못 미칠 만큼 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학원을 보내고 학교옷을 맞춰 주고 급식비 내고 뭐 하고 저거 하느라 바쳐야 하는 돈이, 해마다 얼추 천만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 해에 삼천만 원을 번다 한들, 아파트 장만하려고 진 빚을 갚느라, 자가용 굴리며 기름 넣고 보험삯 내랴, 또 때때로 식구들하고 나들이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책도 사 읽히느라, 또 가끔가끔 맛난 바깥밥을 사먹이고 동무들하고 술잔을 부딪히느라, …… 제법 많은 돈을 일삯으로 받고 있다고 하여도 모두들 한목소리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가난한 이는 가난한 대로 힘들고, 돈있는 이는 돈있는 대로 힘듭니다. 모두들 너무 힘들고 고달프다 보니, 더 '내 한 몸 사리기'로 움츠러들고, 이러면서 바깥으로 내쳐진 사람이나 따돌려진 사람이나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 춥고 배고프고 쓸쓸합니다. 가게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를 못 쓰도록 법률을 마련했다 하여도 어느 가게에나 비닐봉지는 많이 쓰입니다. 게다가, 비닐봉지를 안 쓴다 하여도 큰 마트마다 물건들을 죄다 비닐이나 랩으로 뒤집어씌워 놓고 있습니다.
맨흙이 드러나는 땅바닥이 거의 모두 사라져 버린 도심지에는 망초처럼 목숨이 질긴 들풀이 뿌리를 내릴 만한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보기 좋으라고 심은 벚나무는 스무 해라도 버티면서 도심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또 시골에서도, 푸른빛을 뽐내는 풀과 나무를 만나기는 만만하지 않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길에서 푸르디푸른 푸나무를 만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아파트에서 자가용으로 갈아타고, 자가용에서 내리면 곧바로 시멘트와 쇠붙이로 지은 건물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낸 다음, 다시 자가용을 타고 몇 군데 가게를 들러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하늘 올려다볼 틈이건 땅 내려다볼 겨를이건 없는 가운데, 집구석에서 키우는 꽃그릇 하나라도 제대로 살펴보는 말미란 없다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비닐봉지풀'만 저 혼자 외따로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가는, 온 동네방네 심어 놓은 은행나무와 벚나무 가지에 걸려 새까만 나뭇잎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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