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의 임기동안 구시대의 유산들을 마무리 짓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다. 무엇일까? 그가 노력했으나 청산하지 못한 구시대의 유산들이. '포스트 노무현'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무현을 온전하게 평가하고, 이어가며, 넘어설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목했던 구시대의 유산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통치 스타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음지의 국정원과 양지의 검찰로 이루어지는 막강한 권력기구를 통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민주주의란 대화와 타협인데, 이렇게 강력한 힘을 독점하고 있는 이가 과연 그 귀찮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려고 하겠는가?
그게 문제였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는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기구들을 사적인 통치수단으로 남용해왔다는 점이다. 나를 반대하는 놈들 세무조사, 불법 도청시키고, 뭐 하나라도 나오면 구속시키고, 반대 집회하면 불허하고 강제해산과 연행으로 처리하면 간단한데 왜 대화하고 타협하는 지루한 과정을 거치겠는가?
그 칼이 계속 대통령의 몫으로 남아있다면, 결국 그것을 누가 잡든 정치가 아닌 살육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그 칼자루를 놓았다. 그는 재임시절 단 한 번도 국정원장의 독대를 받지 않았고, 국정원의 역할을 한정했다. 또한 그는 퇴임하면서 검찰총장에게 단 한 번도 전화 걸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검찰은 참여정부시절 '권력의 시녀'에서 '독립된 검찰'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을 포기하는 최고 권력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원칙을 스스로가 임기 내내 지킴으로써, 그는 이후 정권을 한나라당이 잡든 민주당이 잡든 다시는 칼 휘두르는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진했던 것일까? 검찰이 그의 측근들을 이 잡듯이 수사하던 올해 초, 한 측근은 노무현에게 과연 검찰을 그냥 풀어준 것이 옳았던 것일까를 물었다. 그는 끝까지 손을 안 댄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얼마 후 노무현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목숨을 끊었고, 안희정은 "검찰이 원한 것이 이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노무현 정권시절 그렇게 독립성을 부르짖던 검찰은 이명박 정권의 칼이 되어 춤을 추고 있다. 노무현은 구시대를 닫지 못했으며, 결국 그 스스로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 미친 칼의 춤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미완에 그친 '검찰 민주화'... 개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 좋은 걸 왜 안 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국정원장 독대는 부활되었다.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의 개정안도 발의됐다. 김영삼 정권부터 이루어져왔던 안기부-국정원에 대한 견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국정원만이겠는가. 촛불수사, PD수첩, 미네르바 등 그 하나하나가 격렬한 사회적 논란이었던 수사를 강행하며 검찰은 충실한 정권의 시녀로 복귀했다. 영국의 한 매체는 '검찰의 YTN 구속수사는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억류한 것보다 더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14년 전 어느 검사가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는다'라고 말한 이후, 검찰을 개로 비유하는 풍자가 빈번했는데 딱 그 꼴이다. 사람이 된 척 '독립성'하고 소리 내다가 날이 바뀌니 다시 주인을 위해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렇게 영악한 개는 검찰 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부터 검찰개혁에 집중했다. 집권 초기 TV로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는 이러한 노력의 시작을 상징한다. 당시 노무현은 법관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 군대만큼이나 철저한 상명하복 관계였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 검찰과 무관한, 그것도 한참 기수가 낮은 이를 주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가히 '검찰의 문민화-민주화' 시도였다고 평할 수 있다.
검찰은 법무장관에서 검찰총장으로 검찰 인사권의 독립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반발했다. 그래서 열린 것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과 검사 간 공개 토론이었다. 당시 검사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는데, 어느 검사는 "(대학) 학번으로 따지자면 대통령은 나와 동기"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고, 한 검사는 피의자를 조사하듯 "청탁전화 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이는 대통령 앞에서 당당한 기개를 보인 것이 아니라, 고졸 대통령이 검찰의 대대적인 혁신을 하려고하자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이 치졸한 방식으로 반발한 것이다.
온전한 검찰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한 독립화의 노력
"현 검찰 수뇌부를 믿지 않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때 검사하던 이들이 올라올라가 검찰의 수뇌부를 이루고 있었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검찰로 자리보전하며 올라갔던 이들을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이들에게 인사권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검찰은 독립성 침해라며 반발했다.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은 이들을 정권과 분리해서 중립성만 보장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자체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어버린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개입과 통제가 필수적이었는데, 이를 시도할 때마다 검찰은 '독립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 논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 역시 그런 프레임 속에 갇혀 있었다. 법률이 정한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권 행사였지만, 사문화된 조항이며 권력의 검찰 통제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보수 언론들 역시 정권의 검찰 장악이라 입을 맞췄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사퇴로 맞서며 조직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정말 그랬나? 역대 정권에서 지휘권 행사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을 만큼 검찰은 독립적이었나? 진실은 그냥 전화해서 시키면 되지, '지휘권'이라는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스스로 끈을 놓은 상황이었기에,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는 노무현 정부시절 상당히 진척되었다. 천성관 내정자를 사퇴시킨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제도'는 2003년에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2004년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 및 검사적격심사위원회의 도입'과 '검사동일체원칙의 완화'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검찰의 중립화를 위한 변화였다.
문제는 이러한 독립화의 노력이 온전한 검찰의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스스로 조직해서 정치권력에 영합하고 있다. 독립성은 이들이 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명목이었을 뿐이고, 역으로 더욱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된 꼴이다. 또한 X-File 사건이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검찰은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재벌 등 경제권력과 커넥션을 맺고 있었다.
노무현에게 측근이 던졌다는 질문을 다시 곱씹어보자. 과연 검찰을 '그냥' 풀어준 것이 옳았던 것일까.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만들지 못한 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정치권력의 외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지, '외부의 어떠한 통제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권력이 되어버린 검찰, 그것도 수많은 커넥션이 의심되는 검찰에 민주적 통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를 우리는 이미 지난 1년 반 동안 똑똑히 목격했다.
사회적 흉기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검찰'
우리사회에서 검찰이 가진 힘의 근원은 결정권에 있다. 어떤 사건, 어떤 방향에서, 어떤 규정을 가지고 수사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결정권이 검찰에게 있다. 이 결정권을 통해 검찰은 영부인의 사촌언니가 개입된 공천비리사건은 단순 사기사건으로, 조중동 광고중단운동은 선진국에서 일상적인 소비자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업무방해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검찰개혁을 위한 토론회에서 "형사사건에 관한 한 검찰은 법담론의 공식적인 생산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며 "검찰은 통제받지 않는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을 이용하여 사회적 사건을 '정의(define)'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부지런히 그 권력을 이용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을 입맛대로 '정의'내렸다. <PD수첩>은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란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목적인 시사프로그램이 정부 부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을 불법으로 기소하는 순간 이미 언론을 틀어막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에게는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졌다'며 '허위통신죄'이라는 낮선 법률로 기소했는데,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 공간은 얼어붙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의 검찰 권력은 더욱 극단으로 가고 있다. 천호선 전 청와대 수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용산참사 6개월, 검찰은 법원의 명령도 무시하며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철거민 농성자 외에는 그 누구도 책임이 없다며 단 한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에서 피의자 보호의 원칙 따위는 온데간데 없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릴 기세였다. 결국 검찰은 노무현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 용산 철거민들을 다시 한 번 죽이고 있다.
지금 검찰은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조차 포기한 상황. 게다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그리고 X-File과 김용철 변호사의 고발을 통해서 우리는 이들의 폐쇄적인 내부가 얼마나 썩어빠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언하건데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검찰은 분명 우리시대 최고의 문제아가 될 수밖에 없다. 그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으로 왜 그가 임기 내내 검찰 개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시대 최고의 문제아, 검찰을 민주화하자
이명박 정권 이후 정치 검찰의 시대가 다시 오자, 검찰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을 중심으로 검찰개혁특위를 추진하고자 하는 흐름이 현재로는 가장 구체적이지만, 수적인 열쇠로 그 전망이 뚜렷하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와 사회적 여론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지금만큼의 호기도 없어 보인다.
제도적인 개선에 대한 안은 충분히 제출된 상황이다. 연구의 측면에서는 노무현 정권시절 검찰개혁에 대한 연구 수요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서거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대검 중수부의 폐지와 독립적인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의 설치 안은 노무현 정권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검토되었지만 검찰의 반발로 무산되었던 안이다. 또 공안에 관한 정보수집을 국가정보원이 전담하고 공안부를 폐지하는 안, 기소독점주의나 영장청구권의 검사 독점을 깨야 한다는 안, 검찰과 법무부의 분리 안 등이 존재한다. 검찰총장과 지방검사장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이러한 통제와 개혁을 거대한 권력인 검찰에게 강제할 수 있는가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평검사들과 "이제 막가자는 거죠"라며 논쟁할 수 있는 대통령도, 그나마 기댈 구석이 있었던 국회의석도 없어진 상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다시 노무현에게로 가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그는 지금의 위기를 예상했던 것일까? 왜 '최후의 보루'라는 무거운 표현을 썼던 것일까? 그는 이 말에 이어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 했다. 그가 말했던 '우리의 미래'는 결국 '아주 작은 비석'의 받침에 새겨지게 되었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 비석을 어루만지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손잡은 것 같다며 흐느끼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공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었는데(용산 참사) 단 한 명도 책임이 없다며 기소를 하지 않고, 수사기록 역시 공개할 수 없다는 검찰. 이 정권과 반대의견을 가지고 적극적인 무언가를 한 이들을 모두 잡아들일 태세인 검찰. 용인할 수 없는 권력의 남용이며, 위기에 처한 벼랑 끝 민주주의다.
참사 6개월이 되었던 지난 월요일,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은 "수사 기록 내놓으라"며 검찰청 앞에서 울부짖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이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미완의 검찰개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했던, 노무현을 조문했던 그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으로 용산참사에 연대한다면 검찰개혁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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