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찾은 용산참사 현장처음으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갔다. 참사가 발발했을 당시 난 내 삶에 쫓긴단 핑계로 그들을 외면했었다. 그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짓눌린 난 그 후로도 좀체 그들에게 다가가질 못했다.
지난 20일은 용산참사가 있은 지 딱 반 년이 되는 날이었다. 정부는 사과는커녕 대화 한마디 없이 용산참사 희생자와 유족들을 철저히 무시해왔고, 이에 분개한 유족들은 이날 시신을 메고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가려했다.
하지만 역시나 '명박산성'은 높았다. 유족들이 계획했던 천구 의식은 불법집회로 낙인찍혔고 경찰들은 영안실 안쪽까지 치고 들어왔다.
반 년동안 쌓여온 울분, 이를 터트리고자 했던 유족들에게 또 하루의 짙은 울분이 더해진 것이다. 걱정이 됐다. 혹여 이들이 희망의 한 뭉텅이를 뎅겅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난 이제 더 이상 그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외면했던 지난 182일. 183일째 날부터는 내가 변해야 했다. 그들이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희망, 그것의 한 부스러기라도 되어야 했다. 용산참사 반 년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21일, 난 용기를 내어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가난과 주림에 떨면서 원망에 지친 자와 괴로워 우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히 사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불의가 세상을 덮쳐도'란 성가가 울려 퍼지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집전하는 추모미사가 시작되었다. 이날의 미사는 유가족들을 비롯하여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경건한 성가만큼이나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도 차분하고 진지했다.
이강서 신부님은 "어제 너무 긴 하루를 보내서 오늘도 마치 어제의 연장인 듯합니다"고 운을 뗐다. 이어서 이 신부님은 정부에 쓴 소리를 했다.
"우리 정부는 정부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는 영혼이 없는 정부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단지 경제 이익만을 쫓는 이익집단일 뿐이란 사실이 어제 다시금 판명되었습니다."강한 성토이고 날이 선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 신부님이 이 말을 할 때에는 증오가 아닌 평화가 느껴졌다. 미간의 주름도, 목소리의 격앙도 없었다. 그저 차분하고 고요한 모습이다. 이 신부님은 "깨달음을 준 이명박 정부에게 오히려 감사해합시다. 여유를 가집시다"며 사람들을 위로했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유족대표 발언을 통해 "힘들어도 저희가 겪어야할 일입니다. 신부님들이 저희 주변에서 울타리가 되어주셔 감사합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권씨는 또한 "밟고 밟을수록 우리는 더 다져집니다. 유가족이 똑같이 뭉쳐서 6개월을 버텼습니다. 6개월이 아닌 6년이라도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겠습니다"며 정부의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미사에 참석한 시민들을 향해서는 "여러분들이 더욱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세요"라며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늘은 어둑해지고 봉헌된 촛불들은 발그레 빛났다. 미사의 마침성가는 '그날이 오면'.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왜 그랬을까. 눈물이 솟아 남몰래 닦고 닦아냈다.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아픈 추억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마치 꼭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부르는 노래 같았다. 그들에겐 과연 '그날'이 올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안하고 좌절하는 것은 비굴함이다"좀 더 용기를 냈다. 미사를 마치고 문정현 신부님을 찾아뵈었다. 40여 년간을 낮은 사람들 곁에서 '길 위의 신부'로 살아온 문 신부님. 혹시나 천구 의식의 원천봉쇄에 유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실망에 빠져있진 않을까. 문 신부님께 나지막이 여쭤보았다.
"경찰이 열어주지 않지요." '경찰이 당연히 열어줄 일 없지요'란 단언적 느낌이 묻어났다. 문 신부님은 20일의 상황이 그렇게 되리라는 걸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성취해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늦출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야지요.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가는 겁니다. 왜소한 내 자신이 이루지 못하더라도 가야합니다. 그래서 어제 일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었지요."문 신부님에 의하면 유족들은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을 넘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다.
이어서 문 신부님은 용산참사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를 건넸다.
"이런 참사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파괴가 어디 있나요? 희생자의 가정을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알고서 그냥 비켜간다는 것은, 피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좌절하는 것은 비굴함과 같습니다. 걱정만 하지 말고 행동해야지요. 유가족들의 곁에 와서 아픔을 공유합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이 깜깜해집니다. 그렇지 않고선 세상에 희망이 없지요. 우리의 후세에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맙시다. 가야할 길을 갑시다."
가슴을 찔렀다. 이 이야기는 나를 향한 이야기였다. 용산참사에 어렴풋한 관심은 있으되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나의 일상 챙기기에 바쁘다며 눈물이 맺힌 이웃의 눈가를 알아채지 못했던, 더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도 가야할 길을 가지 않았던, 그런 나를 향한 이야기.
용산구 한강로2가의 남일당 건물. 그곳에선 내일도 추모가 계속된다. 그곳에선 그 어느 누구도 희망의 부스러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