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김철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랜 극단 생활을 거쳤지만 아주 잠깐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금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 다시금 제자리였다. 대신 후배 골빈이 그의 아이디어를 모방해 유명 코미디언으로 성장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지아 할머니와 살고 있는 그는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해 놓은 것이 없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미래가 확실하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게다가 그를 지하철 잡상인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동창회에 나가면 사회 주류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소위 '출세'의 길을 달리는 동기들이 그의 속을 긁어놓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칫솔과 같은 물품이 담긴 커다란 가방과 튼튼한 두 다리뿐. 그나마 지하철 잡상인 일마저도 쉽지 않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가난, 끊임없는 절망의 연속 등에 빠진 그에게는 이제 체념이나 세상에 대한 복수밖에는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철이는 쉽게 화를 내지도 체념하지도 않는다. 코미디언 특유의 넉살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다.
2009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날아라, 잡상인>은 바로 이런 철이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자신의 아픔을 과장되게 표현하며 깊이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소설은 조금 유치하지만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밑바닥 인생들을 바라본다. 마치 '각박한 이 세상에 따스한 행복과 건강한 웃음'을 전염시키겠다는 듯이.
때로 바보가 현자보다 더 지혜롭기도 하지. 바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지 않니. 그건 현자가 알려 주는 지식보다 더 가치 있는 거야. 어쩜 이렇게 꼭 맞을까. 너는 바보, 광대잖니.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야. 이 카드의 번호 0은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란다. 이제 너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게 될 거야. (본문 97쪽)
절망하는 건 쉽다. 체념하고 모든 걸 포기한 채로 세상에 원망을 돌리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리 쉽게 끝까지 내달리고 나면 다시 돌아올 길이 막막해진다. 세상은 밑바닥에 주저앉아 분노하는 이에게 다시 기회를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레일은 돌아가고 쓰레기로 간주되는 사람, 사물들에게는 자비가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스스로 주저앉아 목을 매든, 아니면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 밝게 웃어 제치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철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조지아 할머니가 소개해준 지하철 잡상인계의 전설 '미스터 리'다. 사람들에게 물건뿐 아니라 '빛'을 판다는 그는 철이에게 삶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은인이나 다름없다. 그로 인해 철이는 비로소 잡상인을 부끄럽지만은 않게, 오히려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갇혀 있던 마음을 활짝 연다.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보면 제대로 된 관찰이 되기 어렵다. 오해, 편견이 작용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타인을 향한 벽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모두 자신들만의 온전한 벽을 갖고 있다. 넌 날 알지 못해. 난 너와는 달라. 미스터 리는 철이에게 수치심은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낮게 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갖출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결정적 두 번째 인물이 수지다.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그녀로 인해 더 심한 장애를 앓는 그의 동생과 동생의 연인인 지효까지 만난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 기꺼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로그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의 언어를 알게 된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본문 164쪽)
이 언어는 전 세계에 두 명밖에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희귀어 중 희귀어였다. 효철이와 지효가 주로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릴 때 사용하는 원시언어로, 손바닥, 팔뚝, 어깨, 등허리, 허벅지 등의 신체 부위에 자기들만 알아먹을 수 있는 기호를 그리며 소통하는 언어였다. (본문 169쪽)
철이는 수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수화와 점자를 배우고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풋사랑이었지만 그가 내딛은 길에는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또 어떤 발걸음을 내딛게 될까. 수지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 다른 세계와의 교감은 철이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날아라, 잡상인>은 심사평 중 한 구절처럼 너무 건강하지도, 밝지도 않은 적당한 웃음의 온도와 채도로 세상을 비춘다. 충분히 괴로워했고, 실은 지금도 그런 사람들. 그들은 골방 마냥 유폐된 작은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말라 비틀어져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을 터. 이 누추하고 못난 인생들이 소설 안에서 경쾌하게 세상에 대항하는 모습들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
백 퍼센트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자신의 고통이 크게 느껴지는 법. 다만 과장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진정한 소통의 교감이 필요한 시대다. 어려울수록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것 외에는 답이 없지 않은가.
느리게 걷자는 이 소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지나치게 착하고 올바르기만 한 생각이 고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 않은 패러디와 몇몇 문장들은 오히려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썰렁하다.
하지만 썰렁하면 또 어떤가. 결코 건강하지도, 올바르지도 못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힘겹게 살아간다. 자신의 것은 어떻게든 덮고, 남의 죄는 크게 돋보이게 하는 것이 소위 '큰 어른'들이 잘 하는 짓거리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 철이나 수지, 지효의 행동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미스터 리의 말대로 그들은 물건이 아니라 읽는 독자에게 빛을 파는 셈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다 읽고 나면,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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