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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당신이 이삿짐 트럭을 운전하려면, 적어도 [HILL]이란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HILL]을 [힐]로 소리내어 읽을 수 있어야만, 적어도 시간낭비 하지 않고 이삿짐을 제 시간에 내려놓을 수 있다.

얼마 전 일했던 [HILL**]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 이삿짐이 트럭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짐을 내리던 아저씨 한 분이 투덜거리며 말씀하셨다. 이 분은 이삿짐 차를 몰고 목적지인 [힐****] 아파트를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삿짐을 내릴 주소는 그 근방인거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힐****] 아파트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 주위를 빙빙 한참을 돌다가  못찾고 결국 지나는 사람을 불러 [힐****] 아파트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아파트가 그렇게 찾았던 아파트였던 것이다.

그 분은 영어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파트도 못찾게 됐다고, 영어모르는 사람은 이 일도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심결에 아무렇지 않게 보고 지나쳤던 [HILL**]이 누군가에게는 읽을 수 없는 암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HILL]을 [힐]로 읽지 못하는 내 부모님 역시 [HILL] 앞에서 까막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얼마 전 지하철을 기다리며, 눈 앞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영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짧은 영어 낱말이 아닌 하나의 완전한 영어 문장을 보는 순간, 내가 지금 대한민국 지하철 역 안에 있는게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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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아

이 문장을 보고 지나칠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의 뜻을 알까?. 중학교 1학년 영어 과정만 배워도,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알 만한 아주 쉬운 문장이지만, 내 어머니에게, 내 아버지에게 이 암호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나이 60이 넘은 아버지에게 2009년 대한민국은 문맹인 딱지를 붙인다. 그 힘들던 시절,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신 아버지는 그나마 한자와 한글은 읽을 수 있어 사회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그런 아버지에게 [당신은 송도를 아십니까?]라는 짧은 문장 하나 읽을 수 없는 까막눈 딱지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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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아

광고는 광고일 뿐이니, 어쩌겠느냐고 넘어가보자. 같은 지하철 역사에 걸려있는 지자체 광고도 부모님 문맹인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하이 서울]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지자체마다 지역 이름 앞에 영어 낱말을 하나씩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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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아

예전에 내 고향 진주는  문화,예술,교육의 도시 진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아니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지금 진주시는 [CHARM JINJU 참진주]란다. 몇 년전 진주시에서는 [Hi Seoul]을 예로 들며 앞에 붙일 영어 형용사를 공모했는데, 그 때 당첨된 것이 [Well-being,웰빙]이었다. 얼토당토않은 [Well-being Jinju,웰빙 진주]보다는 그나마 봐줄만한 [CHARM JINJU 참진주]로 바꾼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정작 진주에 사시는 내 부모님이 [참]이 [CHARM]이라는 영어낱말 발음이라는 것을 아실는지 모르겠다.  BRAVO ANSAN[브라보 안산]이고 Smart Asan[스마트 아산]이고 Yes Gumi[예스 구미]란다. 거기에 KOREA[코리아]는 Sparkling[스파클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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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아

저 정도 영어단어는 거뜬히 읽어내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별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 부모님은, 나이 60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까막눈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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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아

영어가 간판에 쓰이고 광고에 짧은 단어로 쓰이면서, 디자인 개념으로 이해되던 시대는 이제 옛날 일인가. [Do you know Songdo?]라는 문장을 지하철역에서 보는 순간, 이제 영어가 단지 광고에, 단지 간판에 이유도 없이 괜히 세련되어 보이라고 썼던 시대가 지났음을 느꼈다. 이제는 영어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대한민국 지하철 역사에 쓰이는 날이 온 것이다. 이렇게 점점 시간이 흐르다가는 부모님이 영어를 몰라 은행 업무를 못 보는 때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한글을 몰라 은행을 가지 못했던 분들 얘기가 가끔 티비에 나오듯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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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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