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는 집안 식구들의 권유로 결혼중개소에 들렀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국 남자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어딘가 우수에 빠진 눈빛이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어리고 훨씬 키 크고, 예쁜 여자들이 많았다. 당연히 같이 갔던 예쁘고 늘씬한 여동생이 선택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은 형수를 선택했다.
나중에 형수가 '좋은 여자들이 많았는데, 도대체 왜 나 같은 사람을 선택했냐?'고 물었다. 형은 '그냥 좋았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대답을 했다.
형수는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한 번도 어머니로부터 포옹조차도 못 받아봤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 결혼한다고 하니 그제야 식구들이 처음으로 안아줬다고 하는 것이다. 형은 가족들이 너무 하다며 형수를 꼬옥 안아주었다.
형수는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체격이다. 키150m 정도에 몸무게가 36kg다. 너무 작고 가냘파 보이지만 일 하나만큼은 똑부러지게 한다. 생존을 위해 타고난 생활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 동료 여직원들에게 많이 놀림을 받았다. 사람들은 형수가 외국인데다가, 키도 작고 여리고 약해 보여 많이 놀렸다. 무엇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형수가 미웠던 것이다.
형은 형수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 다툼을 많이 했다. 형수는 그런 형이 좋았다. 비록 백반증이 있었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이 한국으로 가자고 하면 한국으로 갔고, 필리핀으로 가자고 하면 필리핀으로 갔다. 항상 형을 뒤따랐다. 형이 백반증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못하고, 돈을 제대로 벌어주지 못해도 뭐라고 따지지 않았다. 형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조용히 내조했다.
형이 필리핀에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쌀가게를 열어서 운영했다. 그런데 형수네 가족들이 계속해서 형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두 사람이 사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어떤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경제적인 것을 계속해서 요구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수에게는 차가운 대접을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수는 그 집 식구가 아니었다. 식모처럼 부려먹기 위해서 입양된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살림을 도맡아했던 것이다. 눈칫밥을 오래 먹고 살다보니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조용했다.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심지는 아주 곧고 강했다.
부모뿐 아니라 오빠나 동생조차 형수를 식모살이 정도로 바라보며 부려먹었던 것이다. 결혼중개비는 가족 몫이었다. 게다가 이젠 한국인과 결혼했으니 '뭐, 뽑아먹을 것 없나?'하고 형수를 못살게 굴었다. 완전히 현대판 '신데렐라'였다.
우리 가족은 형이 결혼을 하고 한참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보통 같다면 화낼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불쌍한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기 좋다는 것이다. 천생연분이라며 형수에게 더 잘해주라고 형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형의 몸이 안 좋을 때부터 '좋은 배필감이 없을까?'하고 고민했다. 형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몇 명 있었다. 형은 백반증으로 사람을 기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의 적극적인 구애를 거절했다. 어머니도 그런 사랑은 곧 사라진다고 말하고 형의 배필감은 없을까 늘 고민해왔다.
어머니는 부모도 없이 고아로 자란 마음 착한 처자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어머니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형수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형수님은 우리 가족들에게 아직도 늘 조신하게 대한다. 형수님은 아무런 질병도 없었지만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식모처럼 불우하게 살아온 것이다. 고생한 형수님이 신데렐라처럼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형과 형수에게 작은 희망의 바람이 불길 빌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블로그 정철상의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과 다음뷰에게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