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중기청에서 한발자국도 못 나간다"중소기업청이 27일 갈산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중소기업청이 직권으로 일시정지를 결정한 다음날 28일. 롯데마트의 SSM 롯데슈퍼센터 서울 송파구 가락동점과 삼성테스코의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충북 청주시 개신동점, 경남 마산시 중앙동점 예정지 상인들도 사업조정 심의를 중소기업청에 신청했다.
이밖에도 천안 신방동, 안양, 마산 등 6곳도 중소기업청에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과 부평구 갈산동에서 잇따라 '일시정지' 결과가 나오면서 사업조정 신청을 위한 자영업자의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신청 예상지역까지 포함하면 11곳 정도가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심의를 앞두고 있다.
사실상 인천에서 물꼬를 튼 셈이다. 하지만 27일 중소기업청이 일시정지를 권고하기까지 상황은 매우 숨가쁘게 전개됐다. 27일은 입점이 예정된 날이었다. 갈산동은 옥련동과 달리 삼성테스코 측이 입점을 유보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갈산동비상대책위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는 긴장 속에서 27일 아침을 맞았다.
갈산동비상대책위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는 27일 아침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청에 면담을 요청한 뒤 27일 오후 1시 인천을 출발해 중소기업청이 있는 대전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중기청이 일시정지 권고를 유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그 순간 일이 잘못 추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회의를 소집했다"며 "비상대책위쪽 상인과 아침에 긴급하게 대책회의를 열고 중기청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하기 위해 내려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중기청에 내려가 관계자를 만나 면담을 요청한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인태연 부위원장은 "6시까지 답변이 어렵다는 거였다. 유통재벌의 횡포로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우리가 요청한 '일시정지' 결정에 대해 오늘까지 답변이 어렵다는 거였다. 기가 막혔다"며 "그래서 면담은 항의방문으로 이어졌고 거듭 일시정지 권고를 촉구했다. 답변이 없으면 중기청에서 한발자국도 뗄 수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중소기업청의 결정은 이날 7시 50분께 이뤄졌다. 결정이 있기 전까지 상인들의 가슴속은 타들어갔다. 갈산동비상대책위 한부영 대표는 "6시 20분 무렵 면담을 하고 나서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다음날 일어나보니 입안이 다 헐어버렸다"며 "일시정지 권고가 아니면 중기청에서 살아서 안 나올 생각이었다. 다행히 중기청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생활정치 보여준 '민노'... 힘 보탠 '민주'
일시정지 권고 결정 전 중기청은 삼성테스코 측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기청은 사업조정에 관한 권한을 지니고 있지만 여태껏 사업조정심의회의를 열어 강제적으로 조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자율조정을 거치기 위해 기다렸던 것.
하지만 삼성테스코는 인천 옥련동에서는 스스로 입점을 보류했으나 이번에는 입장을 달리했다. 스스로 입점을 보류할 수 없다는 것. 이에 상인들은 더욱 애가 탔다.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김응호(민주노동당 부평위원장) 집행위원은 "4시까지 삼성테스코 측이 입장을 밝히기로 했었는데 6시까지 연기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삼성테스코 측이 결국 스스로 입점을 보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중기청에 법에 명시된 절차대로 '일시정지' 권고를 내릴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번 중기청의 첫 '일시정지'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중기청과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긴밀하게 움직였다.
우선 민주노동당과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는 연수구 옥련동에 이어 갈산동에서도 중기청과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오가며 행정자문과 정책자문을 했고 상인과 같이 7일간 노숙농성에 함께했다. 민주당 또한 긴박했던 27일 홍영표(부평을) 의원과 정장선(지식경제위원장, 평택을) 의원은 직접 나서 중기청에 중소상인을 위한 결정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민노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책지원뿐만 아니라 노숙농성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인들이 민노당을 제일 고맙게 여긴다"며 "아울러 민주당도 이번에 긴박하게 움직였다. 17대 국회에서 처리(유통산업발전법 개정)했더라면 이 같은 일 없었을 게다. 민주당이 뒤늦게 참여한 점은 아쉽지만 향후 법 개정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조정 시작... 결렬 시 '중기청 직권조정'중기청은 일시정지를 권고하면서 사업조정의 시작을 알렸다. 갈산동 또한 옥련동처럼 1차적으로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재를 서는 자율조정을 거칠 예정이다. 1차 자율조정이 결렬됐을 경우 중소기업청이 중재자로 나서 2차 자율조정을 갖는다.
2차 자율조정 후에도 삼성테스코 측과 갈산동 자영업자(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간 조정이 결렬되면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가 열린다. 중소기업청장은 이 조정심의회를 거쳐 3년 이내의 범위에서 사업개시 정지와 생산품목․생산시설 축소 등을 권고(1차)할 수 있으며, 이를 대기업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취지를 '공표'한 후 법적 강제력을 지닌 이행명령(2차)을 내린다.
또한 중소기업청장은 최초 사업조정 신청자가 '대기업의 사업개시 정지 기간' 연장을 신청할 경우 다시 조정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1회에 한하여 3년 이내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10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중소기업청 소속 2급 또는 3급 공무원 중 중소기업청장이 지명하는 자가 맡는다. 위원은 공정거래위원회 1인, 지식경제부 1인으로 구성되며 나머지 7인 이내의 위원은 중소기업청장이 위촉한다.
이와 관련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인태연 부위원장은 "유통업 외 사업조정 신청이 있었던 선례 중 중기청이 아직까지 '조정심의회'가 열린 적이 없다고 한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의견대로 조정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96년 유통시장 개방해서 어느 한쪽(유통재벌)으로 쏠리게 한 게 정부다. 그래서 결국 자영업자가 이 지경 됐다. '상생'은 시장의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곧 유통재벌을 규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있다. 상인들이 공동행동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9월 국회서 반드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해야"
중소기업청이 직권으로 일시정지를 결정한 다음날 28일 갈산동비상대책위와 대형마트규제대책위는 입점 예정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한번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규제를 촉구했다.
이날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김화동 대표는 "일시정지로 기뻐할 일 아니다"며 "최근 전국상인연합회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자리에서 '왜 시민단체가 나서냐?'길래 '그렇게 얘기해도 당신(정부와 여당)네들이 안 들어주닌까 시민단체라도 찾아가서 하소연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들었다.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이용규 인천시당위원장은 "최근 정치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과 관련해 논의가 오가는데 등록제라고 한다. 등록제는 유명무실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경제 불황속에서 대형마트와 SSM 규제야 말로 자영업자를 위한 '민생'이다"며 "9월 국회에서 반드시 허가제를 골자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 초당적 협력으로 민생을 살려야 한다. 언론악법과 대운하사업은 결코 민생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업조정 관련해 이르면 8~9월 법 개정 고시를 통해 사업조정 권한 일부가 광역지자체로 이양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를 제외한 사전조정협의회와 사업조정심의 신청권, 일시정지 권고 권한 등이 지자체로 이양 된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가장 먼저 전북은 지역 상인단체와 '지자체로 권한이 넘겨지면 SSM의 진입을 차단하고 기존 SSM의 영업시간과 품목을 규제'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지방선거가 1년을 안 남겨 둔 상태라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