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은 지금까지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되어 단일 방송콘텐츠로는 가장 많은 국가에 수출된 작품이란 기록을 세운 이른바 한류 킬러 콘텐츠다. 특히 대장금은 그전까진 동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되었던 한류를 이전까진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에까지 한류의 물꼬를 튼 작품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조선왕조실록에 장금이란 이름으로 짧게 몇 번 등장하는 한 여인이 500년 세월을 지나 전 세계에 한국 홍보대사 역할을 확실하게 하고 돌아온 한류 1등공신인 셈이다.
허나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봐야 할 문제가 있다. 한류란 본래 9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 한국 드라마가 수출되기 시작하고, 바야흐로 중국에 개혁개방의 물결과 함께 중국 젊은이들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중국 언론이 그와같은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지적하며 만든 신조어가 한류(韓流)였다. 뭐 그 기원이야 어찌되었든 지금은 해외에서 인기를 끌어모으는 한국 대중문화를 지칭하는 상징적 단어가 한류가 되었다.
헌데 조금 유감스럽지만 냉정하게 한류의 내용을 세세히 분석해보면 실상 사극으로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는 대장금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한류를 일으킨 한국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겨울연가나 가을동화같은 정통 멜로물, 또는 풀하우스같은 코믹 로맨스물이 대체로 그 계보를 이어왔다. 그리고 유튜브에 가보면 우리나라가 입헌군주제란 가상상황하에 만든 환타지물인 ' 궁 ', 대표적 한국 고전소설인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 쾌걸춘향 ', 전통가옥을 지키는 종가집 손녀를 소재로 한 ' 헬로 ! 애기씨 ' 같은 현대물에 한국 전통문화를 적당히 입힌 한국형 로맨스물이 대체적으로 한류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주몽이라던가 해신,대조영,이산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끌어모았던 사극들은 그야말로 우리끼리만 박수치는 드라마였지 정작 해외에 수출되어선 거의다 실패했다.
주몽의 경우 일본이나 대만에선 내용이 너무 길고 지루해 시청자들이 잘 안봐 조기종영되었고, 심지어 중국에선 드라마에서 한나라 사신을 너무 나쁘게 묘사했다며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는 사건도 있었다. 물론 이례적으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선 주몽과 서동요가 50-60퍼센트의 시청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긴 했었지만, 이는 그 나라의 특수한 방송환경이 고려되어 평가해야할 문제다. 가령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엔 아직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할만한 방송환경이 못 되어 대개는 외국 드라마를 수입 방영하며, 바로 그 이점을 이용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홍보를 목적으로 판권을 구입 그 나라 방송국에 제공하여 한국 드라마가 방송될 수 있었던 것이다.
헌데 주몽이나 해신같은 우리나라 영웅사극들이 왜 정작 해외에선 인기를 끌지 못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워낙 약소국이었고 백년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국가였기에 네로나 알렉산더 혹은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같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위인이나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사 자체가 외국엔 생소한 역사고, 따라서 그런 생소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영웅이나 인물에 그 나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주몽이든 장보고든 대조영이든 우리끼리만 열광하고 박수치는 우리끼리만의 영웅이지 외국인들이 그들의 삶이나 영웅담에서 공감대를 얻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십회짜리 장편드라마라면 그야말로 지루하고 재미없기 짝이 없는 외국드라마에 불과했을 뿐이다. 말이 나온김에 덧붙이지만 사실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조차도 외국에서는 특별히 한국학을 전공했다던가 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역시 생소한 인물일 것이다. - 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은어대로라면 그야말로 듣보잡이라고나 할까.
대장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여성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가는 성공스토리, 거기에 음식과 의술 대결이라는 일종의 전문직 드라마, 거기에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의상을 입힌 드라마였기에. 한마디로 그 드라마속 스토리와 주제가 범 세계적 공감대를 얻을수 있는 것이었기에 성공할수 있었던것이다.
여하튼 대장금이 세운 공로는 참으로 지대했다. 소위 문화전쟁의 시대라는 21세기에 각 나라마다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시기에 대장금은 지난 수십년 그 어떤 유능한 외교관이 공을 들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드라마 한편으로 너끈히 해냈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의 외교사절단이나 한국학 전공하는 사람들 우리나라로 불러들여 비싼 호텔에서 재워주고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서 배불리 먹여주고 세미나나 리셉션 두어번 가진뒤 경복궁이나 경주 데려가서 전통 혼례의상 입혀줘서 사진한방 찍어줘 돌려보내 얻을수 있는 홍보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실상 그런 사람들로 인해 그 나라에 한국의 이미지와 전통문화를 홍보되는 정도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대장금은 드라마 한편으로 우리의 전통문화 특히 한국의 전통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래서 문화의 힘 특히 대중예술의 힘은 무시할수 없는것이다.
한류가 근래들어 침체 내지는 쇠퇴기에 접어든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한류 십여년 역사동안 사극은 성공작이 대장금이 유일하다시피 하다는것은 더더욱 안타깝다. 물론 일본이나 동남아에선 소수의 한국 사극 매니아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 드라마 열성팬 즉 일빠들은 조선왕조 역대임금 순서는 못 외워도 일본 역사는 줄줄이 꿰뚫고 다닐 정도로 일본 사극에 푹 빠져있으니 이런건 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어느나라 동영상이든 어느나라에서도 접속해 볼수 있는 세상이고, 우리나라에도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 매니아가 어느덧 꽤 생긴점등을 감안한다면 이제 어느어느 나라에 소수의 한국 드라마 매니아가 생겼다더라 하는것은 언론이 호들갑떨며 보도할만한 거리도 못 된다.
대장금이 한류 킬러콘텐츠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리나라 역사를 다루었다는 점에 앞서 한 여성의 성공일대기와 교훈을 주는 동화같은 이야기라는 점이 전 세계인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장금이 우리나라 사극의 새로운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까 ? 사실 이 문제는 쉽게 결론을 내릴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글쎄, 현재 30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선덕여왕을 집필하고 있고, 바로 대장금의 작가였던 김영현이라면 답을 내어줄수도 있을련지.
여하튼 한가지 분명히 입증된 사실은 우리끼리 박수치며 열광하는 영웅이라고해서 외국인들도 공감해 주는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극은 그냥 한류대열에 동참하는것은 포기하고 국내용 드라마로만 만족해야 하는걸까. 사극중 유일하게 한류를 일으켰으며 그것도 대표적 한류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대장금이라면 해법을 내놓을수 있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