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울로 올라와서 혹독한 '여름의 폭염'을 겪어낸 후, 올해가 되자마자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올해는 무조건 물놀이를 가겠다! 어디라도 가서 콧구녕에 바람을 넣고 오겠다고.
그렇게 6월이 지나고, 7월이 시작되자 내가 사는 옥탑방에는 찌는 듯 한 더위와 함께 여름이 방문을 두드렸다. 에어컨도 없어, 선풍기는 싫어.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참아야만' 하는 방안에 홀로 앉아서 호시탐탐 욕망만 불태우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상황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 하더냐. 실로 거창하게 '작가 지망생'이지만, 사실상 방구석에서 팽팽 놀아나고 있는 만년 백수인 나로서는 돈은 둘째치고라도 영 휴가를 가야할 명목이 서질 않았다.
나름대로 우아한 '나홀로' 바캉스, 옥상 파라솔!
그러나 내가 누구더냐, 어떠한 역경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옥탑방녀가 아니던가. 여름이 슬슬 입질을 가해오자, '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첫 번째 방편으로 옥탑방의 로망, 파라솔을 구입했다.
'우오와오아~' 함성이 터져 나오는 우아한 저 자태. 비록 벤치 형식의 우아한 곡선을 가진 파라솔은 아니지만 은근 '상큼'한 색동 파라솔은, 근처 그릇 가게에서 아저씨께 온갖 '사바사바'를 다해서 저렴하게 건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언제나 폭풍처럼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나는 바람 때문에, 혼자 파라솔과의 대사투를 벌였던 것! 내 몸보다도 더 큰 파라솔을 펼치는 순간, 하필이면 그 순간에 바람이 불어서 내 몸이 통째로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날아갈 뻔 한 것이었다.
진짜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배 잡고 구를 일! 조그만 여자 아이가, 커다란 파라솔을 들고 바람에 휘청이면서 옥상을 뛰어다니는 꼴이라니. 그래도 '발꼬락'에 힘을 꽉 줘서 버티는 바람에 파라솔을 날려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은 간신히 모면했다.
그렇게 10분간 '나홀로 사투'를 벌인 후 나의 옥상에는 빨갛고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설치되었다. 가끔 반찬과 밥을 모조리 들고 나가는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밥을 먹기도 하고,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라라라라라라~' 그리스 산토리니의 해변이 부럽지 않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투명한 해변, 탱글탱글한 해산물이 날뛰는 그 곳
아, 그러나 나의 욕망은 끝내 '발끝에 찰랑이는 차가운 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휴가 프로젝트'로 제주도 여행을 꿈꿨다. 파도가 부서지는 투명한 해변. 꼭 한 번 걸어보고 싶은 제주 올레, 한라산 정복까지 마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거기서 마쳤으면 되었을 것을,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여행계획을 세우던 중, 나의 공상은 저 혼자서 뚜벅뚜벅 현실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게 아닌가.
"야, 우리 제주도 갈 바에 돈만 조금 더 보태서 태국이라도 가면 좋지 않아?"아 태국! 탱글탱글한 해산물들이 살아서 날뛴다는 그 곳,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던 그 태국.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나의 입방정에 친구도 '급흥분'해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무모한 나의 인생모토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거야"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려던 순간, 친구의 한 마디. "아무래도 돈이 안 되겠지?"
그래, 역시 돈돈돈. 너무 부풀어진 계획 덕에 예산은 저만치 초과하고 있어, 내 주머니사정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은 실컷 김치국만 들이키곤, 이 계획, 저 계획 모두가 흐지부지해졌다. 우울했다. 이 여름에도 물에 발 한 번 못 담그나 싶었다.
눈치 볼 것 없는 맘 편한 밥상, 부산이 최고!
그러던 중 엄마가 전화가 와선 생일상이라도 근사하게 차려 줄 테니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혼자 있으면 쓸쓸할 것 같고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 다른 지방에서는 애써 피서를 즐기려 내려온다는 그 부산에 갔다.
조금은 쓸쓸하게 내려갔지만 내려가 보니 여기에 진정한 '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이 숨어있었다. 저녁이면 가족들이랑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삼겹살, 아귀찜 등을 먹었고(물론 공짜로), 점심땐 혼자선 잘 시켜먹지도 못하는 자장면을 시켜먹었고(물론 공짜로), 착한(?) 동생은 생일 선물까지 사 주었다.
게다가 케이크의 초도 불어 끄고, 생일 노래도 듣고, 밤이면 오랜 친구들과 만나서 진탕 술도 마시고, 동생이랑 영화도 봤다. 마지막 날 밤엔 엄마랑 여동생이랑 근사한 와인 바에 가서 와인도 한 잔씩 나누어 마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만하면 근사한 여름휴가 아닌가. 지금 내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동생들한테 쭈쭈바 하나 못 사줬지만, 그래도 '미안하지 않은' 가족들이라 부담 하나 없이 열심히 '얻어'먹었다. 괜히 돈 벌면 엄마, 아빠 여행 보내줄 거라고 큰 소리만 땅땅 치고 돌아왔지만 즐거웠다.
또다시 돌아온 찌는 듯 한 옥탑방. 남들은 외국도 가고, 계곡도 간다고 해서 부럽긴 하지만, 뭐 난 괜찮아. 난 괜찮다고. 이 여름을 충분히 시원하게 보내고 있는데 뭘. 더우면 파라솔도 있고, 그도 안 되면 부산 내려가면 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만약에, 이 글을 보곤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서 나를 피서지로 '보쌈'해가면 '진짜로 진짜로' 멋진 여름이 될 텐데... 그럼 정말 이 여름이 시원할텐데...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