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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겉그림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겉그림 ⓒ 산지니
문어는 구멍에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이런 습성을 이용한 낚시법이 '문어방'이라는 단지를 덫으로 쓰는 것이다. 문어는 단지에 갇히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엽기적이게도 단지에 갇힌 문어는 제살을 뜯어먹으며 6개월까지 버틴단다.

일본에는 이를 빗댄 '문어방노동'이란 말이 있다. 홋카이도를 개척할 노동력이 부족하자 죄수들을 끌고 가 가두어놓고 가혹한 노동을 시킨 데서 생겨난 말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집단수용소 내 독방에 감금하고 노예노동을 시켰다.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산지니 펴냄)는 최근 일본에서 부활, 횡행하고 있는 문어방노동을 다룬 르포집이다.

저자인 르포 작가 '가마타 사토시'는 G7선진국이자 국민대다수가 중산층이라는 일억총중류(一億總中流) 현대 일본에서 횡행하고 있는 문어방노동 현장과 거대한 '문어방사회'가 되어 버린 일본을 '절망사회'라고 개탄하며 그 현장을 낱낱이 파헤쳐 들려준다.

일본은 지난 2004년 '노동자파견법'을 개정했다. 통역 등 일부 업종에만 국한되던 제한을 없애고 제조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업종에까지 '파견'을 허용한 것이다.

파견노동법을 만든 장본인 스스로 파견노동자를 '필요할 때 필요한 인력을 필요한 기간 동안만 기업의 요청에 의해서 파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바꿔 말하면 파견노동자는 쓸 만큼 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면 그만인 부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권리는 일체 무시한, 기업의 입장만 있는 악법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법률로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게 하는 전 근대적인 노무관리를 부활시킨 '노동자파견법'을 확대 허용한 것이다. 이 결과  2009년 2월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40%에 육박하고 있으며 비정규직마저 얻지 못한 노숙자는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란다.

노동자층의 가장 밑바닥이었던 기간제 밑에 파견직이, 다시 그 밑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파트타임이 겹겹이 퇴적층을 형성하게 된 결과는 참혹하다.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 아르바이트와 파트타임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 파견직에서 쫒겨나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이 모여든 텐트촌 파견마을, 노숙과 PC방을 전전하는 넷카페난민….

(중략)…'프리터'라는 이름의 신분불안정 노동자는 줄기는커녕 늘기만 한다.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 근로자는 1천 6백만 명. 이중 프리터는 400만 명이다.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시간제 노동자는 늘어날 뿐이다.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은 근로자파견업의 매출은 10조 엔을 육박한다. 듣기에 그럴듯한 대기업 '굿윌'. 연간 매출 5천억 엔으로 가장 규모가 큰 이 기업을 위시한 파견업체들은 인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만 돈을 버는 '삥땅기업'이다. - 책속에서

'근로자파견업'은 일종의 인력시장이다. '고수입' '대기업근무' '공장스태프' 등의 과대광고는 파견업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파견업체들은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로부터 경비와 방값, 안전화세트 등을 부풀려 계산하여 뜯어먹고 배를 불리며 성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캐논이나 도요타, 마쓰시다 등 우리에게 명문 기업으로 알려진 대기업들도 파견업체에 인력을 의뢰, 잠시 쓰다가 버리면 된다는 식의 노동인 '파견'으로 번영과 발전을 구가한다. '위장출항'과 '위장도급'과 같은 불법 또한 이들 기업들의 단골 수법이다.

'출항'은 모회사에서 자회사로 파견하는 의미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불법파견을 위장하는 용어로 쓰인다. 파견노동자를 장기사용하면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데 '출항'이나 '도급'으로 해두면 형식상 다른 회사 직원이기 때문에 직접 고용하지 않고도 맘껏 부려먹을 수 있으며 산재가 발생해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건만, 파견일자리라도 얻으려는 사람들로 파견업체는 북적인다. 파견업체 등을 통해 조폭이 운영하는 노무자 합숙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상습 임금체불과 폭력, 빚을 빌미로 한 구금노동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빼앗기기 일쑤다. 고용불안이 계기가 된 묻지마 살인도 비일비재하단다.

경제대국이요 법치국가인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이 현실을 저자는 개탄한다. 저자의 고발은 문어방노동이 횡행하는 문어방사회에 그치지 않는다.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 같은 일본인들이 보기에도 해도 해도 너무한 일본의 부조리함과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부분들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 국철 민영화, 민주주의 후퇴 신호탄 ▲ 국철 해고노동자 1047명 18년째 투쟁 ▲ 누구를 위한 우정 민영화였나?는 제2장 '기업 프렌들리의 그늘'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다. 최근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추구했던 민영화의 폐해를 예단할 수 있는 글이라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 장에서는 '마른 걸레도 쥐어짜라'는 모토로 이윤을 추구하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기업들이 경영의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의 일등 기업 '도요타의 속사정'까지 파헤친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우체국은 도요타식 생산방식을 도입하며 직원용 의자를 치워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일본의 우정공사는 미국의 기대에 부응한 민영화로 미국 투자회사와 보험회사의 먹잇감이 되었다.

공공이라는 명목의 가면을 쓴 도심재개발은 대기업의 잇속만 채워줄 뿐? 나리타공항이 국제적 결함 공항이 된 이유는 비행기만 일단 띄우면 공항 건설을 반대한 주민들이 소음을 못 견뎌 나갈 거라고 추진한 결과라? 이런 것들을 다룬 제6장 '제네콘에 의한, 제네콘을 위한'이런 글들도 개발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니 꼭 눈 여겨 보시도록!

책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머지 장에서는 ▲ 전쟁을 위한 교육을 허용하는 교육기본법  ▲ 사상검증으로 교사사냥? 교사 길들이기? ▲ 교원노조 전원을 학교에서 쫓아내는 등의 일본 교육의 우경화와 ▲ 침략을 부인하고 전쟁의 역사를 왜곡하여 새로 쓰는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 절대 패배하지 않는 일본의 사관 ▲ 이라크전 반대 유인물까지 처벌하는 일본 정부 ▲ 서민들의 입장은 무시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한 정치인들의 전국의 오키나와화 ▲ 막가파식 원전 건설 ▲ 아직 끝나지 않은 미나마타 환자의 고통 ▲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일본 관료들 ▲ 보상비 99%가 비자금으로 빼돌려지는 경찰 범죄 등 일본의 정치와 경제, 교육과 역사관 등을 파헤친다.

일본의 절망이 우리의 미래?

저자는?
"내가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 각지에서 권력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이들의 존재입니다. 어떤 나라에 차별과 지배에 맞서 혼자서라도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그 본모습이 밝혀지면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됩니다. 일찍이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의 공감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당시의 학생과 노동자, 지식인의 자기희생적인 운동이 오늘날 한국의 밑거름이 된 것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저자 '가마타 사토시'는 르포 작가다. 그에게는 저널리스트, 논픽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전직 기자였던 그는 이 책에서도 그 실태를 소개한 도요타자동차의 기간제 노동자를 체험하고 '자동차 절망 공장'을 쓰며 르포 작가가 되었다. 이후 40년동안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고 한다. 일기 형식으로 쓴 '자동차 절망 공장 - 어느 계절공의 일기'는 국내에서 <자동차 절망 공장>이란 제목으로 1995년에 우리일터기획, 허명구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에 실린 르포들은 일본의 진보적 시사주간지인 '주간금요일'에 '통분의 현장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됐었다. 이 잡지는 일본의 전직 기자들과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1993년 11월에 창간했다.

일본의 추악한 면을 파헤친 책들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이 더욱 실감나는 이유는 저자 스스로 문어방노동자였었다는 것,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현장의 약자들과 가슴으로 만나 인터뷰함으로써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박스 기사 참고)

책을 통해 만난 일본의 현실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일본과 전혀 달라 충격이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우리보다 잘 살기 때문에 한편 부럽고 독도나 역사 왜곡 때문에 한편 괘씸한 일본의 추악한 부분들을 맘껏 엿볼 수 있다는 호기심이 우선 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아득해지곤 했다. 표현과 용어만 다를 뿐, 우리의 현실이 어처구니없는 일본의 현실과 많이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결국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이랜드 투쟁이랄지 용산참사 등 최근 국내의 이슈들이 우후죽순처럼 떠올랐다. 또한 이 책을 읽던 지난 며칠 동안 계속 들려오는 쌍용차 소식에 사회 약자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에 가슴이 저미곤 했다.

칠순이 넘도록 노동자로서, 기자로서, 르포작가로서 불의를 고발해온 이 양심적 지식인은 일본을 절망사회로 규정하고 그로부터의 탈출은 저항과 연대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가마타 선생의 이 호소는 비단 일본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한국에서도 그 울림은 충분히 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죽어도 하겠다"던 구조개혁의 결과인 '문어방 사회'는 지금 '기업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신자유주의 실행에 나선 이명박 정부 아래 한국의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만 하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 문어방 사회 일본, 통분의 현장을 가다

가마타 사토시 지음, 김승일 옮김, 산지니(2009)


#비정규직#문어방노동#일본#노사분쟁#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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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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