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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 절 올립니다."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내용이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편지의 구석구석에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모습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대립각을 세우며 날선 공방을 벌이던 과거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자칫 'MB찬가', '백기투항' 등으로 비쳐질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두 사람 관계를 이토록 변화시켰을까. 

 

전말은 이렇다. 청와대는 31일 김 지사가 지난 29일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만나 A4 용지 4쪽에 가까운 분량의 편지를 전달한 사실을 공개했다. 29일은 정부가 '명품 복합도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한 날이다. 김 지사는 편지에서 "오늘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오늘 정부의 발표로 우리 도민들의 묵은 체증이 일시에 쑥 내려간 듯합니다. 참으로 후련하고 시원합니다. 기쁘고 눈물납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같은 내용을 앞다퉈 공개한 언론들은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다른 당 출신의 대통령에게 이 같은 편지를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급하게 방점을 찍었다. 과연 그럴까. 김 지사 측은 "정치적 해석을 자제해 줄 것"을 언론에 요청하고 있지만 해석적 상황은 그리 간단치가 않아 보인다.

 

'청와대 발' 뉴스보도에 의구심이 분분한 가장 큰 이유는 2백만 도민을 내세워 큰 절을 올린 때문이다. 민주당의 텃밭과도 같다. 게다가 정부에 대한 민심이 녹록치 않은 곳이다. 가뜩이나 미디어법 강행처리로 민심이 사나워질 대로 사나워진 시점이다. 부정적 해석의 중대 변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다. 논란의 불씨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서신은 현안을 지원해준 데 대해 순수하게 고마움을 표한 것뿐"이라고 김 지사 측은 설명하고 있지만 그동안 김 지사와 이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들을 되돌아보면 이번 감사의 편지는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팽팽한 긴장과 대립관계에서 큰 절을 올릴 만큼 유화적인 관계로 돌아서기까지 어떤 역학관계가 작용한 것인지, 또한 감사의 편지가 정치적 득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두 사람의 정치적 행보에서 읽힌다.

 

[#1] "서울에서도 서울이 안 보인다" vs "서울의 눈으로 서울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과 김 지사가 '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3년 3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최대 정책 어젠다인 행정수도이전과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무렵이었다. 서울시장과 전주시장으로 있었던 두 사람은 보수신문과 진보인터넷신문을 통해 설전을 벌였다. 당시 논쟁의 발단은 2003년 3월 1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조선일보>에 '서울에서도 서울이 안 보인다'는 제목의 글에서 시작된다. 행정수도 지방이전을 반대하는 내용의 기고다.

 

이 대통령은 기고의 글에서 "혹자는 서울을 지방의 모든 자원을 집어삼키는 블랙홀로 묘사하기도 한다"며 "그러나'지방'이라는 말에 대칭되는 단어로 '서울'을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서울은 타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풍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국고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 양여금과 같은 정부의 예산지원이 타 시·도에 비해 역차별 받고 있다"며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서도 '분권'과 '분산'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온 지역을 뜨겁게 달군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글이었다. 이에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지방분권추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지사(당시 전주시장)가 총대를 멨다. 그해 3월 2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서울의 눈으로 서울은 보이지 않는다'는 글을 통해 논리를 반박하고 나섰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조선일보> 기고에 부침'이란 부제의 글에서 김 지사는 야무지게 쏘아붙였다.

 

"서울도 '지방'이라는 이명박 시장의 전제는 행정학의 관점에서는 옳을지 모르나, 서울은 이미 행정적 단위로 평가할 수 없는 문화적·상징적·경제적 위세를 갖고 있다. 결단코 서울은 서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김 지사는 이어 "이 시장이 대단히 논리적으로 분권을 지지하고 있지만 그의 주장은 사실 분권 절대불가론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설전은 노무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행정수도 지방이전과 지방분권에 대해 서울과 지방의 시각차가 뚜렷함을 보여줬다.

 

[#2] "도민의 거대한 분노에 직면할 것" vs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야"

 

 

그로부터 4년 반이 흐른 2007년 9월 17일. 악연인지 필연인지 두 사람은 다시 맞붙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부안 새만금현장을 전격 방문한 날이다.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새만금개발사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의 지지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났다.

 

한나라당 지도부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김 지사가 현안보고를 통해 "작년에 강재섭 대표님과 김형오 전 원내대표님께서 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주겠다고 했는데 지난번 법사위에서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통과가 안 됐다"면서 "이번에 한나라당이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특별법은 폐기된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전북도민의 거대한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에 강재섭 대표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통합민주신당'을 순간적으로 '열린우리당'으로 표현할 정도로 감정적으로도 격앙된 모습이었다. 강 대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반대해서 안 됐다고 하고, 이번에 안 해주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서 솔직히 화가 많이 났다. 도와줄 테니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이 딴지를 안 걸도록 해 달라"고 쏘아붙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도 발끈했다. 이 후보는 "새만금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경제 논리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김 지사도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나도 서울시장을 했지만 시도지사가 정치논리에 너무 몰입하면 일이 잘 안 된다. 김 지사는 강 대표의 이야기대로 금년에는 발언을 조심하는 게 좋다"고 경고했다.

 

분이 덜 풀렸던지 이 후보는 "김 지사는 저도 듣는 가운데 '도민들이 분노할 것'이라는 표현을 했다. 도민이 분노해서 전북이 이렇게 됐나. 왜 (전북이) 낙후됐나"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는 또 "나는 이 문제에 정치논리는 완전히 없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을지, 3만 불, 4만 불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날 설전을 두고 "도지사를 협박한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적격성이 있나 의심스럽다"면서 "군기잡기다. 공포정치를 연상케 했다"며 한동안 한나라당 지도부와 이 후보를 비난했다.   

 

[#3] "애정과 관심을 많이 보여주셔서..." vs "절차를 밟아야..."  

 

 

다시 눈여겨 볼 대목은 2008년 1월 22일. 서울시장과 전주시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행정수도이전과 지방분권 등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사사건건 맞서왔던 김완주 전북지사가 다시 마주했다. 제17대 대선 직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회동에서 이 당선인과 김 지사의 만남 장면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 이 당선인을 접견한 김 지사는 "전북도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많이 보여주셔서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대화를 풀었다. 김 지사는 이 당선인에게 "새만금특별법도 해주고 TF(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내 새만금 TF·팀장 강현욱 전 전북지사)도 해주시고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애정과 관심을 많이 보여주셔서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부각됐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농지 중심에서 '경제도시'로 방향을 바꾼 새만금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현재 농림부가 사업 주관하고 토지용도 변경은 관계부처가 하는데 그거보다 청와대 담당부처에서 해주길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전달했다.

 

이에 이 당선인은 "어디서 하든 간에 산업단지로 바뀌면 농업단지보다 더 커지니까 농수산부에서 하긴 힘들 것 같다"며 "(새만금 사업계획은)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이라 (사업 주관 부처를 바꾸려면) 아마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지만 전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또한 "동북아의 두바이로 새만금을 건설하려면 해외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국제공항의 조기건립이 필요하다"는 김 지사의 설명에 이 당선인은 공항과 항만 추진의지를 밝혔다. 이에 언론은 "그간의 설전에 설전, 악연이었나, 필연이었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4] "대통령 결단과 추진력 덕분에 본격 개발?" vs "군주시대도 아닌데..."

 

그 후 1년 반이 흐른 2009년 7월 29일. 김 지사는 "오늘 저와 200만 전북 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 올립니다"며 감사의 편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이 편지에서 김 지사는 여러 차례 이 대통령을 추어올리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지사는 "새만금 종합실천계획안을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었다"며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감동이 밀려왔고, 대통령님과 새만금위원회 위원님들께 대한 감사함이 우러났다"고 했다.

 

김 지사는 또 2007년 9월 당시 이명박 후보가 새만금을 방문했을 때 안내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때 대통령님께서 새만금을 바라보시며 '새만금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며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한 김 지사는 "천금같은 기회를 잡고도 20년 가까이 터덕거렸는데 이 대통령님의 결단과 추진력 덕분에 드디어 본격 개발에 접어들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가 감사의 편지를 보낸 배경을 놓고 서울언론은 다양한 해석들을 쏟아냈다. '추가적인 개발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 지사가 편지에서 "이제 새만금이 날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군산공항 확장과 새만금 신항만 건설"이라고 덧붙인 때문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심상치 않은 지역여론이다. 그동안 20여 년을 참고 기다려왔다. 그런데 새만금의 작물 재배가 가능해지려면 앞으로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최근 언론보도까지 흘러 나왔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도백이 200만 도민을 업고 문서를 통해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신"이라며 "군주시대도 아닌데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려서 (개발사업을) 선물 받듯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지역 언론들 또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여론의 변인은 크게 3가지. '시점', '방법', '관계'로 압축된다. 미디어법 후폭풍으로 정국과 민심이 요동을 치는 시점이다. 또한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있는 시점이란 점도 변인과의 연계성을 띤다. 편지 내용의 공개방법도 의구심의 중요 변인이다. 청와대가 내용을 공개하고 논평까지 흘렸다.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의구심을 자극할 만한 중요 변인이다.

 

그간 두 사람의 불편했던 관계를 아직도 많은 도민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에 무게를 둔 새만금 정책이 두 사람의 관계를 쉽게 변화시켰다. 이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기실, 아직 끝나지 않은 '새만금'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5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지금 대통령에게 큰 절 올릴 만큼 도민들의 정서가 합치된 것도 아니다. '이벤트 정치', 혹은 '이미지 정치'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는 반응은 바로 그 때문이다.


#김완주지사#이명박대통령#감사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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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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