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아야지…."
도시 사람들, 특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농·산·어촌)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어느 정도 밑바탕이 된 경제적 여건과 더 이상 도시적 삶의 패턴이 몸에 맞지 않게 됐을 정도의 고령의 나이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귀농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젊은 나이'에 경제·교육·문화 등 사회적 인프라가 월등히 앞서고 고급정보가 집중되는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지역으로 내려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곧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주류가 되겠다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 모두 그곳을 벗어나고픈 욕망이 있어요. 나이 들어서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도 괜한 말이 아니죠. 바쁘고, 빠르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아가기 위해선 무언가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저는 단지 지역에서 그 방법을 찾은 것뿐이죠." 지난 29일, 10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주로 내려온 전북대의학전문대학원 유효현(34) BK21 기금 교수를 만나 그가 '서울' 대신 '지역'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서울에서 이질감 느끼고, 사람에게 상처받았다" 지난 1998년, 유효현 교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근무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서울생활을 했으나, 남은 건 지친 몸과 마음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의식주 해결부터가 힘들었어요. 집 구하는 것도 어렵고, 물가는 전주보다 1.5배가 비쌌어요. 특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이 많았죠."하지만 유효현 교수가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바로 '사람'이었다.
"물과 기름 같다고 할까요. 서울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무언가 정이 없다고 할까요? 대화를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유 교수는 급기야 사람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일에 대한 스트레스,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유 교수는 결국 건강이 나빠져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복잡한 것을 싫어 한 성격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나'를 찾기 위해 유 교수는 다시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그때가 2007년 말,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간 지 꼬박 9년만의 일이었다.
"앞만 보던 서울생활,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물론 서울 생활의 장점도 많았다. 즐길 수 있는 문화혜택이 넘쳤고,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다양했다. 특히 권력의 핵심인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유 교수의 경우에는 교육학을 전공했던 만큼 교육계 인사를 만나는 거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것은 곧 학계의 주류가 되면 계속 서울에 남아 있었어야 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전주로 내려왔으니 이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죠. 어떻게 보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일단 스트레스가 1/3로 줄었어요. 여유도 생겼고요. 사회적 출세와 같은 욕심을 버리니 정말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돼 오히려 저는 더 좋은데요?"유 교수는 서울생활과 지역에서의 생활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했다. 서울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그저 앞만 보며 달렸다면, 지역에 내려온 뒤에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웃을 생각하는 그런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유가 생기니 자신을 성장 시키는데 투자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주어진 시간에 저를 밀어 넣는 느낌이었어요. 일을 하는 시간, 학원 가는 시간, 영어 배우는 시간,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면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저를 성장시키는 거죠.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음악을 듣고,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책을 찾아보고…." 유 교수는 쉽게 말해 자기계발에 대한 의미 자체가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가 중요"
삶에 여유를 찾아 때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는 유효현 교수. 복잡한 교통 환경의 서울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풀과 물을 보며 그녀는 새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제가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서 가끔은 서울 생활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때에는 분명 서울로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머리는 서울을 향하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거든요. 삶의 만족이란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그녀는 사회적인 출세나 지위, 명예 등 외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굳이 서울 생활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다만, 밖의 시선이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일상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굳이 서울이냐 지방이냐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의미다.
유효현 교수가 말하는 삶의 질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기 안에 있는지 혹은 외부에 있는지'이다.
"외부의 가치에 맞춰 행동을 계속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서울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글쎄요….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방법을 단지 지역에서 찾았을 뿐이랍니다."그러고 보니, 앞에서 한 말을 정정해야겠다. '경제적 여건과 고령이라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지역(시골)으로 내려올 수는 있다'로 말이다.
유효현 교수를 통해 알게 된 사실 하나. 결국 지역은 우리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불모의 땅이 될 수도, 반대로 희망의 터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