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으로 귀농한 지 6년째인 서원(45) 북상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이 경남도교육청에서 삭발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북상초교 5학년인 딸을 둔 서 위원장은 3일 아침 일찍 다른 학부모들과 버스로 창원에 와서 도교육청 현관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학부모와 운영위원들은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장공모제를 추진했다. 그런데 교장 후보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교육청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교장공모제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보고 있다.
북상초교 전교생은 현재 43명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장공모제를 신청했고, 지난 6월 지정 학교로 결정되었다. 4명이 신청했는데, 북상초교 교원(1명)이 지원해 규정에 따라 1차(서류), 2차(면접) 심사를 거창군교육청이 주관하고, 3차(면접)는 학교운영위에서 했다. 신청자 4명 모두 전교조 소속이었다.
1차(20%), 2차(30%) 심사 합계 50%, 3차 심사 50%를 합산해 도교육청에 1, 2순위자를 정해 임명을 의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2차까지 심사 결과 A후보가 1순위, B후보가 2순위였는데, 3차 심사 뒤 종합 점수는 A후보보다 B후보가 더 높게 나왔다.
그런데 3차 심사가 끝난 뒤 거창지역 한 신문에서 북상초교 교장공모제 심사의 문제점을 보도했다. 거창에는 7개 신문이 있는데, 1곳에서만 보도한 것이다. 이에 도교육청은 심사에 대한 감사에 나섰고, 지난달 31일 '공모학교 지정 취소'를 통보했다.
도교육청은 "심사 진행 과정에서 지원자 중 1인이 일부 심사위원에 대한 불공정성을 제기하고, 지역사회와 언론을 통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는 등 물의가 야기되었다"면서 "교육청에서 진상 조사한 결과 학교경영 정상화와 교장공모제의 발전적 차원에서 간과할 수 없는 흠결이라 판단해 공모학교 지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도교육청 '물의 야기되어 공모학교 취소한 것'
도교육청이 밝힌 공모학교 지정 취소 이유는 신청자 중 1인이 이의를 제기하고, 언론에서 보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도교육청은 감사 결과 1, 2차 심사 점수와 3차 심사 점수의 편차가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장공모제 관련 규정에 보면 '물의를 야기하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으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임성택 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언론에 보도되고 거창지역에서 이슈가 되어 감사를 했는데, 심사에서 사회 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물의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공모학교 지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1, 2순위자 중에 점수 편차가 컸다는 주장도 했다. 가령 1차, 2차에서 A후보가 10점(가까운 점수)을 받고 B후보가 0점을 받았다면, 3차에서는 B후보가 10점을 받고 A후보가 0점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임 과장은 "심사 때는 '집중화'와 '관대화'를 방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번 심사에서는 그런 점들이 나타났다"면서 "심사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점수를 공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교육청은 "합의하면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도교육청 주장대로 심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심사위원을 새로 구성할 용의를 없었느냐"는 질문에, 임 과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전교조 출신을 교장에서 배제하기 위한 차원도 아니며, 교육청이 교장공모제를 반대해서 요건이 안 되는데 취소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3차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의 불법·부정, 담합, 금품수수 등의 의혹이 발견되었느냐"는 질문에, 임 과장은 "그런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학부모-운영위원 "심사에 부정 없다"
학부모와 운영위원들은 '교장공모 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서원 위원장과 임종귀, 조재선 거창군의원, 학부모 등 20여 명은 이날 도교육청을 방문해 권정호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먼저 교육감실로 찾아갔으나 권 교육감을 만나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연 뒤 서원 위원장은 도교육청 현관 앞에서 삭발했다.
이들은 교육청이 공모학교 지정과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 학부모들의 요구를 묵살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 위원장은 "앞으로 2~3년 안에 전교생은 20명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교장공모제를 할 경우 자율특성화 학교로 지정되어 우선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교장공모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다수가 찬성했고, 8명인 학교운영위원(학부모 4명, 교원 3명, 지역 1명)을 대상으로 한 찬반에서는 5명이 찬성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육청에서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 학부모와 지역주민 추천자 명단을 제시했으나 교육청은 묵살했다"고 덧붙였다.
서원 위원장은 "1, 2차 심사와 3차 심사 결과는 뒤바뀔 수 있다. 1,2차 때 1순위자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는데 그것은 왜 문제가 되지 않느냐. 점수기준표에 보면 '우수'는 10점이고 '미흡'은 0점을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심사위원의 재량과 권한으로 얼마든지 10점과 0점을 줄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3차 심사위원들은 담합이나 청탁, 금품수수 등 불법․부정한 형태가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오로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좋은 교장이 와야 한다는 차원에서 심사했는데, 거기에 부정이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청이 심사 점수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서원 위원장은 "현행 규정상 심사표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 "그런데도 교육청이 공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교장공모제를 얼마만큼 임의로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와 운영위원들은 거창의 한 신문사에 심사 채점 내용이 유출된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도교육청이 공모학교 취소 결정 통지를 늦게 한 것(7월 31일)도 학부모와 운영위원들이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한 차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공모교장 취소 공문을 철회하고 즉각 원상회복할 것"과 "본말이 전도된 공문 결정에 대해 진상을 재조사할 것", "내부 점수 유출과 관련된 자들을 조사하고 엄중 문책하여 파면할 것", "공공연히 실추된 학교운영위원 심사자에 대한 명예를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북상초교 학부모와 교육위원들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앞으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을 내기로 했다. 또 이들은 법원에 '공모교장 취소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내부 점수 유출자에 대한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고소고발', '학부모 학교운영위원 전원 사퇴와 향후 운영위원 구성 거부', '9월 1일자 부임 학교장 불인정'을 해나가기로 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거창합천의령함안창원진해)은 "교육감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교장공모제는 교육감의 재량권이지만 학교를 살리는 방향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북상초교뿐만 아니라 이전 교장공모 학교에 대한 심사 자료를 요구해서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