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님. 정치는 현실이고 힘입니다. 일대 결단을 내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김완주 지사가 한나라당 입당과 정부요직을 맡아 전북 낙후를 벗어나는 대전환의 길을 가는 것 말입니다."
한때 '투사 정치인'으로 불렸던 손주항(76) 전 국회의원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의 고향(전북 임실) 후배이자, 학교·정치 후배이기도 한 민주당 소속 김완주 전북도지사에게 주문한 메시지가 충격적이다. 감사편지에 이어 다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손 전 의원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편지를 썼다가 거센 지역민들의 비판여론에 직면한 김 지사를 향해 '정치는 현실이고 힘'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과거 투사 답지 않게. 생뚱맞고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랜 정치경륜에서 우러나온 충고일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손 전 의원은 5일 전주MBC 라디오 '손우기가 묻는다'는 아침(8시 35분) 프로그램에 전화로 참여한 인터뷰에서 "새만금사업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 것도, 그가 쓴 편지 내용이 공개돼 비판의 칼날 위에 선 것도 전북이 힘이 없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에둘러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시절 전북도지사가 여당 소속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소속 당이 다르다보니 본의 아니게 각을 세워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며 "김 지사의 전북을 사랑하는 마음은 믿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좋다"고 말문을 열었다.
"쑥스러워 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이 더 떳떳하게 보일 수 있다?"
이날 손 전 의원은 김 지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더 당당하고 박력 있는 행동을 주문했다. 그는 "쑥스러워 말고 당당히 대통령을 독대한다든지,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이 더 남자답고 떳떳하게 보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또 "정치는 힘이고 현실인데 전북은 이러한 힘이 없어 분통하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전날 지역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김 지사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던졌다. 4일 <새전북신문>에 기고한 '전북도지사 김완주 귀하'란 제목의 글에서 그는 "김완주 지사는 김대중 대통령 때 DJ 당으로 전주시장이 됐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도지사가 됐다"며 "이에 대해 도민들은 '전북낙후의 회생을 위한 열정이 컸기 때문이지 벼슬이 탐나고 당에 최고위원이 되기 위해서이겠는가'하고 넉넉하게 이해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과 MB는 전북에 큰 관심을 가졌고 도민의 절대 염원인 '새만금 대역사'에는 강현욱 전 지사와 손잡고 새만금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이런 시점에 민주당이 지금 사생결단하며 거리 투쟁하는 때에 민주당에 소속된 김 지사가 지난 29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민주당으로서 배신을 느꼈을 수도 있으니 지금 때가 다음 개각과 총리 교체설에 충청권과 호남권으로 압축된 상태이기에 호기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오히려 직선적으로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큰 발걸음으로 정정당당하게 천년왕도 전북의 영광을 되찾고 새만금사업 공정을 앞당기기 위해, 전북출신 11명 국회의원이 하지 못하는 숙원을 속시원하게 해결하는 선봉장으로 나설 때 떳떳하고 남자답지 않은가요?"
헷갈림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는 현실이고 힘"이라고 강조한 그는 "내 의견으로는 김완주 지사가 한나라당 입당과 정부요직을 맡아 전북낙후를 벗어나는 대전환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는 재차 주문했다.
비꼬는 주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행간을 들여다 보면 그의 충고엔 진정성이 담겨 있다. 열거해 놓은 다음 논거들에서 읽힌다. "세계 최장의 33km 새만금 방조제 완공에 따른 내부개발 등을 마무리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한 그는 "그래서 전북인에게 지루한 장맛비 속에, 여름 뙤약볕 속에 속앓이하고 있는 전북 민초들에게 축복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좌고우면, 갈팡질팡 눈치 보지 말고 MB와 동참하는 것이..."
그는 또한 "2007년 MB가 한나라당 후보로 새만금 현장에 왔을 때 김 지사는 새만금 특별법 통과가 국회에서 안 되는 것은 한나라당 때문이라면서 전북도민 200만 명의 분통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그러나 MB 후보는 '말조심 하라'고 험하게 김 지사를 질책하고 전북 아닌 전남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좌고우면하고 갈팡질팡 눈치 보지 마시고 MB와 동참해 전북과 전북인을 위하는 대명단을 내리십시오"라고 결론을 던진다. 전주대사습 장학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9대, 10대,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으로 9대와 10대는 임실·순창·남원에서 무소속 당선됐다. 또 10대 때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채 옥중 당선되는 특이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한편 "오늘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 절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김 지사의 감사의 편지를 청와대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이후 파문은 쉽게 가라 않지 않고 있다. 전북도청 홈페이지 '자유발언대'와 '도지사에게 바란다'는 연일 비난과 옹호의 글들로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힘이고 현실'이기 때문일까. 지역언론들은 김 지사 옹호론에 무게를 두어 보도하는가 하면, 아예 관련기사를 싣지 않는 신문들도 눈에 띈다. 대신 한승수 국무총리가 6일 1박2일 일정으로 전북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 총리는 6일 고창과 진안·임실·장수군을 들러 시·군정 현황을 청취한 후 전주 한옥마을에서 숙박하며, 김완주 지사 등과 만날 예정"이라는 기사에서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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