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백수였으니까요."'이런 일'이라고 하면 '하기 싫은 일', '흔히 하지 않는 일' 혹은 '고되고 건전하지 못한 일'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백수 처지에 마땅한 수입원이 없었던 A씨(27)는 친구의 소개로 '이런 일'을 덥석 선택했다
학점관리와 취업준비, 등록금 마련까지는 아니더라도 용돈벌이를 동시에 해야 할 처지에 있는 20대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아무리 88만원세대라고 우는 소리해도 청춘을 포기할 순 없는 법. 젊음을 즐기고 싶다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야만 '찐한'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볼 수 있다.
꺼림칙하지만 돈 필요한 취업준비생에겐 '제법 쏠쏠'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A씨는 J출판사의 신간서적 홍보업무를 맡았다. '홍보'가 별건가? '서평쓰기' 알바다. 카페나 블로그, 인터넷서점 게시판에 맡은 책을 평가하는 댓글을 단다. 열줄 정도의 분량으로 쓰는데 물론, '호의적'으로 써야 한다.
"(댓글알바를) 하면서도 기분이 안 좋았죠. 그동안 다섯 권 정도 서평을 썼는데 마음에 안 드는 책들도 있었어요. 그럴 때면 최대한 책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방향으로 썼지만 회사는 어쨌든 책을 홍보하는 글을 원하니까요."A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조심스럽다. "그래도 (배정받은 책을) 꼭 읽기는 하고 썼다"는 그는 좋은 책은 즐겁게 추천하면서도, 내키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마음이 어려웠음을 밝혔다.
"하루에 한두 시간 투자해서 한 달에 30만~40만 원 정도 벌었어요. 이 정도면 꽤 쏠쏠한 거죠. 큰 노력을 안 들이고도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죠. 그런데 전 백수였으니까요..."'댓글알바'도 컴퓨터 앞에서 돈을 거저 버는 것은 아니다. 치밀하고 꼼꼼한 작업이 필요하다. 주의할 것은 알바임을 들키지 않는 것.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다른 말투를 써 가며 책 내용에 기반한 서평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해당 사이트에 가입해야 하는 절차가 가장 번거로운데 "여러 번 하다 보면 가입해 둔 곳이 많아 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돈이 급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단지 황금 같은 기회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공개적으로 알바를 모집하는 게 아니라 저도 친구가 소개했거든요. 같은 출판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댓글알바들이 있는지 서로 모르는 걸요."은밀한(?) 작업인 만큼 서로간의 보안도 철저하다. 자신과 같은 '댓글알바'가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상황. 그는 인터넷 댓글로 알 수 있는 정보들은 신뢰하지 않지만 "댓글을 읽다 보면 '아, 이건 알바구나'하는 감이 온다"고 전했다.
A씨는 이제 '댓글알바'를 하지 않는다. 그만둔 게 아니라 경영사정의 악화로 인해 J출판사가 그들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아서다. 그는 제법 '쏠쏠'했던 황금기회를 놓쳐 아쉽다.
영화표 두 장에 팝콘세트까지, 싸게 파는 데 좋은 거 아닌가요?"주말에 둘이서 영화 보려면 만8천원, 팝콘이랑 콜라까지 먹으면 2만5천원이에요. 전 겨우 만4천원에 파는데 사는 사람한테도 좋은 거죠!"영화도 인터넷에서는 '암표'를 구매해 싸게 볼 수 있다. 중고상품을 사고파는 일부 네이버카페에서 예매를 대행해 주는 이들이 있다. J카페의 회원인 대학생 B씨(26)는 정식으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팔아 사는 사람한테도 이익이라고 말한다.
"우연히 제가 가진 티켓 몇 장 팔려고 갔다가 '공급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개인적으로 얻게 된 예매권을 본인이 사용할 수 없거나, 돈이 필요한 경우 팔기도 하지만 '조직적'으로 몇 십장씩이나 팔기도 한다. '공급자'와 '판매자'의 관계로. B씨는 우연한 기회로 공급자와 연락이 닿아 용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 그는 공급자에게도, 자신에게도 '당당한 일'이라고 말한다.
"핸드폰 부가서비스를 등록하면 무료로 제공되는 예매권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모아서 싸게 판다는데 문제가 되나요? 제 건데요, 뭐."어떻게 하루에 오십 장씩이나 무료 예매권이 생길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공급자가 핸드폰 여러 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급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지는 잘 모르고, 넘겨받은 예매권을 판매할 뿐"이라고 답했다.
"공급자에게 예매권을 받으면서 두 장당 1만2500원 정도 지불해요. 2천원쯤 남고, 하루에 30~50장 정도 팔면 10만원 가까이 벌죠. 매일 수량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버는 것 같아요. 두세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치고는 꽤 좋은 조건이에요."M영화관의 코엑스점 관계자는 전화통화를 통해 "이런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예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확인할 길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고 전했다. 대학생이므로 오랜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할 수 없는 B씨는 예매를 대행해주고 이익을 남기는 일에 상당한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과외를 준비하거나, 보수가 적은 알바를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시급 1만원 받고 일하다 보면 다른 일은 못해요""술도 먹어야 하고, 야한 얘기도 들어줘야 하고, 힘들죠. 그런데 시급 1만원 받고 일하다 보면 다른 일은 못해요."대학생 C씨(23)는 바(bar)에서 일하고 있다.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4시간 일하지만 하루에 벌게 되는 임금은 4만원이다. 최저임금 4천원, 술을 파는 곳에서는 5천원대를 받기도 하지만 두 배나 많은 액수다. 일반 호프집에서 일한 경험도 있지만 이곳에서 일한 후로는 다른 일자리를 얻지 않는다. 시급 차이 때문이다.
"'섹시바(Sexy Bar)'랑은 달라요. 2차 같은 거 없고, 이야기만 들어주는 거죠. 같이 일하는 여대생들도 많아요."C씨는 자신이 일하는 곳이 '섹시바'와 비교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손님과 술을 마시며 대화만 하는 곳이지 다른 일(?)은 없다는 것이다. 손님은 대부분 30대 직장인들. "상태가 안 좋은 손님도 있지만 상대 안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쉽게 돈을 벌려는 여대생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전했다.
"부모님이요? 당연히 모르시죠. 알면 쫓겨나요"'이야기만 들어주는 곳'이지만 부모님에게는 당연히 비밀이다. 그의 꿈은 연극배우. 부모님이 반대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서 용돈은 스스로 벌어야 한다. 밤늦게 끝나는 일이 힘들지만,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넉넉한 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이 일을 아직 포기할 수 없다.
88만원세대라 불리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에게 알바 선택의 기준은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보수를 높게 받는 것'이다. 노력보다 많은 대가를 바란다며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불법'은 아닌, 그렇지만 은밀한 곳에서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는 자유다.
단, 취업 준비기간은 길어져만 가는데 시간에 쫓겨 가며 각종 '스펙'을 쌓아야 하는 20대들에게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