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이는 미술활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미술학원에 보내줄까? 하고 물으니 학원은 싫고,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활동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2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미술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담당선생님은 전직 미술교사로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잘 이끌어주고 계신다. 밤톨이를 예뻐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이젠 미술활동도 좋지만 선생님 만나고 싶어 반드시 신청을 하고 있다.
요즘은 방학이지만,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주 동안 하고 있어 지금도 학교에 가 있다. 요즘 방학이 방학답지 않지만, 아이들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마음에 든다. 아이들도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고 밤톨이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좋아하며 가고 있다. 다녀와서는 엄마에게 재잘재잘 참새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모든 이야기의 끝은 아이들이 정리를 하지 않고 가 버리고, 선생님께 너무 예의 없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일기장에 버릇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끌끌 혀를 차는 어른 같은 글을 남겨놓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보통아이들 같은 경우 일상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생각과 행동을 해야 되는 걸까? 가끔은 밤톨이가 다른 아이들의 그러한 행동 결과로 남겨진 일들을 뒷설거지만 하고 오는 것 같아 엄마 입장에서 속이 상하기도 한다. 어른들 사회에서도 아주 소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생각 없이 자신의 이익만 따지며 해 놓은 일의 나쁜 결과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요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죄책감도 없으니 현대판 주인과 하인도 아니고 씁쓸한 일이다.
"엄마 일기는 왜 써야 하지?" - 밤톨이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마음치료법이야. 또 내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하거든. 그래서 두 가지의 일기를 쓰기도 해. 한 가지는 그냥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지. 그 것은 글쓰기 연습도 되지만, 너랑 다른 사람이 그 글을 함께 읽어도 되는 내용의 글이야. 그러니까 그 일기에는 정말 마음 속 이야기는 쓰면 안 돼. 너를 보호할 수 없거든. 또 한 가지는 나만 보는 글을 쓰는 거야. 그 일기에는 어떤 이야기라도 쓰면 되고,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거야. 나중에 자기가 썼던 부분이 마음에 안 들면 그 부분을 지워버리거나 찢어버려도 되지." - 엄마
"그럼 일기 쓸 때 어떤 일들을 쓰면 되는 거야? 엄마가 밥 먹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그런 것들을 꼭 쓰는 것은 아니라고 했잖아." - 밤톨이
"날짜랑 날씨는 꼭 써야지.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장군은 그런 부분을 꼭 써 놓았거든. 그리고 책을 많이 읽고, 박물관에 많이 가고,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 하고, 그런 것들을 많이 하면 쓸 거리도 많지. 특히 속상한 날은 꼭 쓰는 것이 좋아.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는 막 화가 나서 욕도 하고 싶고, 흉도 보고 싶고... 거친 말도 마구 쓰거든. 그러나 쓰면서 마음 속에 상처받은 것들이 손끝으로 나와서 그런지 글 뒤로 갈수록 내용이 부드러워지고 속도 편해져. 그리고 잘못한 일을 쓰면 반성을 해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럼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너 스스로 정신이 더 건강하게 되는 거지." - 엄마
"아! 그렇구나." - 밤톨이
고학년들이 모인 미술시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밤톨이가 쓴 글은 이런 내용이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야자수>
오늘 수채화 반에서 야자수를 만들었다. 먼저 통에다 비닐을 넣고 긴 가래떡 같은 것을 잘라서 종이로 잎을 만들어 침 핀으로 꽂았다. 그 때 침 핀이 부족해서 소○이에게 침 핀을 사오라고 하셔서 소○이가 나랑 같이 침 핀을 사 갖고 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 빨랐다. 그 다음엔 풀을 붙이고 줄을 잘라 장식했다. 그 다음에 다른 장식을 했다.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서 가끔씩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건 맞는 사실이었다. 나는 뒤쪽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딱 이 한 낱말만 했다. 이 낱말은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만 불렀다. 선생님이 참 괴로워 하셨다. 애들에게 다 해주자 아이들이 감쪽같이 가 버렸다. 참 이상한 녀석들이다.
선생님이 하신 말은 나도 동감이었다. 아이들이 많아서 예○, 나, 나○이를 시키셨다. 애들이 참 답답했다. 어떤 애는 잘 하는데, 속도가 느리고 한 아이는 엄청 쉬운 것 가지고 쩔쩔 매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신발 끈은 맬 줄 아나? 자기가 입은 옷은 세탁바구니에 넣을 줄 아나? 자기가 쓰던 물건들은 정리하고 갈 줄은 아나? 교실 청소할 때도 도망가는 아이들이 많아 남은 아이들이 끙끙거리며 청소를 다 하느라 고생하는 줄은 아나? 아니 하다 못해 실수로 발을 밟으면 밟힌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아나?
학교수업 선행학습도 중요하겠지만, 실상 더 중요한 이런 기초생활습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다른 아이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다른 학부모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아이가 대신 해주니 너는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밤톨이에게 너도 하지 마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는 안 되고, 선생님의 수고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동은 그렇게 해도 공개수업시간에 가보면, 그런 아이들의 미술 실력이 엄청 좋다. 밤톨이도 떨어지는 실력은 아니지만, 행동은 형편없어도 실력만 좋은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때론 두렵기도 하다. 밤톨이는 오늘도 즐겁게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서 밤톨이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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