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 제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전날 오후 미리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으나 여객선 3등석은 이미 매진이 돼 하루 더 머무르면서 오늘이 올 여름 제주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일주일 동안 제주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아침부터(7/28) 흐린 하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여행의 마지막 날인 이날 하루는 여객선 터미널까지 길을 따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오설록뮤지엄'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이 가 본 적 있다는 제주 신시가지 안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제주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다.
성읍민속 마을을 빠져나와 9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1112번 도로를 타고 간다. 일주일의 제주도 여행 기간동안 이 길은 몇 번이고 다닌 익숙한 길이다. 언제 보아도 수려한 경관에 경이에 찬 눈길로 보게 되는 길이다. 짙은 삼나무 가로수 길은 비가 오는 날에도, 안개 짙은 날에도, 맑고 청명한 날에도 운치가 있다. 보고 또 보아도 이 멋진 길에 절로 매료되고 만다.
지나가는 길 곳곳마다 말 타는 곳과 말 방목지가 눈에 띈다. 잘 닦여진 넓은 도로, 그 옆에 울을 친 방풍림의 짙푸름...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제주도에서 눈 닿는 곳곳마다 애틋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산굼부리를 지나고 주변에 모여 있는 음식점들, 교래리를 지나고 말 타는 곳에 이른다.
도로 옆에 많은 차량들과 사람들이 있다. 역시 휴가철인가 보다. 와흘 한우단지(소 방목밭), 노루생태자연공원, 절물자연휴양림을 스쳐간다. 삼나무 뻗어 오른 도로는 빼어나게 아름답다. 1112번 도로를 지나다보면 물찻오름 입구가 보인다. 1112번 도로를 끝나고 1131번 도로를 탄다. 이 도로는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연결 도로 중의 하나다.
제주엔 왜 말이 많을까?!
가는 길에 <제주특별 자치도 축산진흥원 목마장>앞에 잠시 머문다.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하는 날씨다. 많은 관광객들이 말을 구경하고 있다. 제주도엔 정말 말이 많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제주엔 소고기, 돼지고기도 있지만 말고기도 있다.
바람 많고 돌도 많지만 제주엔 '말'도 많다. 제주, 서귀포 등을 한 바퀴 드라이브하다 보면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는 것이 말과 말 방목장, 승마장 등이다. 어쩌다 말을 방목해 놓은 오름을 만날 때도 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 말이 사육된 것으로 보이지만 근거자료가 부족하다. 처음 사육된 정확한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대충 고려 때부터로 본다. 고려 원종(1219년~1274년)때 유목민족인 우리나라가 제주도에 올라와 목마장을 설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넓디넓은 초록빛 목초지에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는 말의 눈은 어제 보았던 노루의 눈빛처럼 순하다. 1117번 도로를 간다. 이곳엔 <신비의 도로>가 있다. 서귀포에서 제주시 쪽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쪽 옆을 몇 번 지나기도 했지만 팻말만 보고 그냥 지나곤 했다.
신비의 도로
오늘은 호기심이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냥 갈 수가 없다. '신비의 도로'는 공항에서 11.5km 떨어진 해발 500m 지점, 제주시 산록도로(1987년 개설)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5.16도로와 1100도로를 연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리막길에 차를 세우면 당연히 내려가야 할 차가 신기하게도 올라간다고 해서 일명 '도깨비 도로'라고 부른다. 신기하다. 이성적으로 이해를 해보려 하지만 시도는 불발로 끝나고 만다. 차를 타고 시범을 해 본 뒤 사람들과 함께 페트병, 빈 캔 깡통, 자전거 등으로도 시도해본다. 역시 마찬가지다. 물을 채운 1.8리터 패트 병을 굴려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 앞에서 아저씨가 아무리 '맛있는 보리떡 있어요!' 하고 소리쳐도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내리막길인데 왜 올라가는지 그 의문을 풀고야 말겠다는 듯 몰두해 있었다. 신비의 도로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고개만 갸우뚱 하면서 신비의 도로를 벗어난다.
설록차 전시관, 오설록 뮤지엄
설록차 전시관으로 찾아가는 길, 1135번 도로를 타고 간다. 설록차 전시관은 제주시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에 위치해 있다. '오, 설록'으로 유명한 이곳 갤러리 안에는 세계 차 전파 경로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된 대형지도와 차를 주제로 만든 동영상, 차 역사의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되어 있고, 차 제조 공정을 보여주는 모형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안에는 각종 다구와 차 관련 기념품, 녹차 아이스크림과 녹차가 곁들어진 각종 빵 등 편안한 휴식공간과 더불어 있다. 세계의 찻잔들이 진열되어 있고 차의 종류와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설록차는 '고려시대에 차 문화가 발달해 불교의 쇠퇴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점차 쇠퇴하였으나 왕실 안에서는 여전히 다례를 행하였고 일부 사대부들 역시 차를 즐겼다 한다.
임진왜란 후 차 문화가 점차 쇠락의 길로 가다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흥기를 맞았다고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술을 마시는 나라는 망하고, 차를 마시는 나라는 흥한다'고 했다.
녹차의 효능에 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녹차 속 '카테킨'이라는 성분은 '인체가 산소를 통해 에너지를 얻을 때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일종의 불순물인 유해산소를 차단하는 강력한 항산화물질'로써 암예방과 노화방지에 탁월하다는 것과, 비만 방지와 입 냄새와 충치예방 등 다양하다.
녹차에는 카페인이 들어있어 임산부나 영아에겐 좋지 않다. 차의 찬 성질이 설사를 자주하거나 식욕이 부진한 이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고 하니 잘 알고 음용해야 하겠다. 이곳에서 차 시음도 해 보고 싶긴 하다. 가격이 좀 비싼 녹차 아이스크림 가운데 제일 작은 것 하나와 빵을 사서 우린 비 내리는 날 창 밖을 내다보며 마주앉았다.
바깥 연못에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린 군중 속에 둘 뿐인 듯 호젓하게 앉아 있었다. 가족들과 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돌아보며 녹차를 사기도 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우린 얼마동안 머물다 비 내리는 거리로 다시 나왔다. 오, 설록 전시관 밖에는 넓디넓은 초록 잔디밭 정원과 그 앞에 설록차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낮 1시 30분, 비가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폭우로 변했다. 빗길 도로 위에서 차가 흔들렸다. 차창 밖 도로는 금방 물방울로 튀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정, 금능을 지나 협재, 협재해수욕장을 거쳐 간다. 쏟아지는 비와 바람마저 높이 불었다. 구엄리를 지나 1132번 도로를 타고 가는 길, 하귀리, 외도동, 내도동, 제주시내로 진입하여 신제주시내로 들어간다.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세차게 내리는 것 같다.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 사이로 난 도로에서 차들로 엉킨다. 겨우 찾은 '거부 한정식'은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런지 넓은 식당 안이 한산하다. 점심 겸 저녁으로 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가 된 거부한정식, 배가 고팠던가 보다.
우린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그래도 조금 미흡하고 아쉬운 듯, 다음 여행 땐 좀 더 좋은 곳에서 먹자고 말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제주 여객터미널에 도착, 이제 밤을 새워 배는 항해할 것이고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를 부산에 내려놓을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여행하면서 제법 고단했던 것 같다. 돌아가는 배에서는 잠이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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