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바휘바'
한국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핀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아마도 이 단어일 것이다. 모 자일리톨껌 광고에 등장해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이 말은 핀란드에서 영어의 good과 비슷한 의미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핀란드가 북유럽 국가라는 것을 알 테고, 전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췄다는 것도 알 것이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 중에서 핀란드가 거리상으로는 한국과 가장 가깝다(직항으로 가면 8시간 정도 걸린다). 열강들 사이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등의 침략을 받는 등 험난했던 역사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다.
하지만 이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와 한국, 두 국가가 추구하는 방향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많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지난 14일,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핀란드 청년 패뜨리 후뚜넨(26)과 한국 대학생 김화영(25)씨가 만나 각자 화두를 풀어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패뜨리입니당."
"우와! 한국말 진짜 잘한다. 패트리?"
"패뜨리"
"난 화영 킴!"
"졸업 전까지는 취업해 일하는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한국 대학생
화영씨는 아무래도 4학년이기에 취업 걱정이 많다. 그는 경력이 중요한 패션업계에 진출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을 했었다. 쇼핑몰 관리와 MD업무를 보조했다고 한다. 그때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5일을 일하고 80만원을 받았다. "거의 최저임금에 걸리는 수준이다. 돈이 적어도 경력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패뜨리는 고교를 갓 졸업한 후 한 건설업체에서 일했다. 통나무집을 짓는 분야에선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회사인 이곳에서 그는 육체노동을 했다. 세 달간 한 달에 1500유로(약 265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고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에겐 굉장히 좋은 수준이라고 한다. 2년 전에는 지방정부의 IT지원 팀에서 일했다. 컴퓨터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돕는 역할로 한 달에 1000유로(약 177만원) 정도를 벌었다.
"1000유로 정도면 학생들 임금으로는 평범한 수준, 1500유로면 매우 좋은 편이다."
학생들은 한 시간에 최소 5유로(8838원)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패뜨리는 "잘 모르겠지만 정확한 최저임금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로 핀란드엔 한국과 같은 법정최저임금이 없다. 다만 업종별로 노동조합이 단체계약을 통해 각각 최저시급을 정한다. 핀란드 외에도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등이 이런 방식을 따른다.
패뜨리: "만약 간호사라면, 의료인을 위한 노동조합에 속해야만 하고 그 노동조합에서 매우 강력한 규칙을 통해 해당 노동자들을 돕는다. 보통 임금은 시간당 7-9유로는 돼야 한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말해주자 패뜨리는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의 생각엔 한 시간당 5유로도 매우 낮다고. 물론 양국 물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선 '법정최저임금을 낮추자'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패뜨리: "만약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면, 학교와 노동부의 고용 담당부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실업자로 등록을 하면 실업수당을 준다. 왜냐면 돈을 어디에서도 못 벌기 때문에 정부가 의식주에 필요한 돈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일을 해서 버는 것보단 적은 돈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정부가 어떤 일이든 직업을 구해주면 전공과 상관없는 일이라도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 만약 단지 청소나 판매원이라도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전공과 맞는 직업을 또 계속 찾아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도와준다."
김화영: "직업엔 사실 돈 벌기 위한 의미도 있지만 적성에 맞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데 일단 한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는 경제적인,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 내 상황부터 그렇고 핀란드 얘길 들어보니까 사회 복지제도가 바탕이 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차이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본적인 복지 문제다. 임금 수준이 더 낮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하고 있는 정책 등을 보면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인턴을 늘리고 있다. 반대 방향으로 사회 안전망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답답하다."
'취업학교'화되는 한국의 대학, 대학 안 나와도 고소득 가능한 핀란드
화영씨는 또 언제나 '취업, 취업'만 외치는 한국의 대학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전공을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많은 부담이 된다"는 그는 한국의 대학들이 취업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기업들과 연계를 늘려가고 있으며 학생들도 그런 방향을 원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대학 입학 직후부터 구직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것.
패뜨리: "보통, 적어도 내 친구들은 대학을 마치고 직업을 찾기 시작한다. 가끔은 공부를 끝내기 전에도 구직을 하긴 한다. 나는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압력은 많이 느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년에 인턴십을 구할 생각이다. 물론 이런 자리를 구하는 것에는 경쟁이 있다. 하지만 인턴십을 마치고 나면 아마도 그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한다면."
그는 또 "한국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학점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는 모습들을 보아왔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는 최소한 자신의 영역(IT)에서는 그런 압력이 없다고 말한다. 학점보다는 직업 경험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김화영: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회사에 들어가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군 이번에 어디 들어갔다, 삼성 갔다더라 하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의식한다. 핀란드에도 그런 식으로 직장에 대한 경쟁의식이 있는지? 직업의 귀천이 있는지 궁금하다."
패뜨리: "우리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노키아는 굉장히 큰 회사이고 봉급도 조금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조금 작은 곳에 가더라도 임금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비교가 없다. 핀란드에서 제일 큰 회사인 노키아와 정말 작은 지방의 회사는 물론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회사라면? 큰 차이가 없다."
대학이 취업 준비생을 위한 거대한 학원과 같이 변해가는 한국의 현실은 무엇 때문일까. 핀란드의 교육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대학까지 교육비가 없을 뿐더러, 학생들은 생활비까지 정부에서 보조받는다. 또한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입시나 사교육은 전혀 모르는 얘기다. '대학 간판'이 사회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입시에 매달리고, 대학에서조차 취업을 위한 사교육을 받는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패뜨리: "핀란드에선 한국처럼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진 않는다. 교육과정이 한국이나 미국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고등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직업학교(vocational school)가 있다. 그곳을 졸업한 사람들은 보통 바로 직업을 갖는다. 요리사, 운전기사 등의 일들이다. 또 다른 고등교육기관은 조금 낮은 단계의 대학과 같다. 여기를 졸업한 이후 주로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직업학교 졸업자들도 대학에 진학할 수는 있지만 보통은 바로 사회에 진출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실용적인 부분을 더 많이 배우고, 대학에 안 가도 직업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예를 들려 주었다. 핀란드는 숲이 많은 나라이기에 임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임업에 진출해 장비 관리 등을 맡아 의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핀란드의 복지제도를 한국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핀란드는 사회 전 범위를 망라하는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2007년 기준 국민 1인당 세금 부담률이 43%로 매우 높다(2006년 한국은 26.8%). 패뜨리는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회보장제도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한국 친구, 바빠서 여자친구도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데..."
핀란드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학생들은 '언제나 바쁘다'. 패뜨리가 핀란드에 있을 때,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온 한국 친구를 만났다. 패뜨리는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자주 놀았다. 그런데 정작 패뜨리가 한국에 오자 그 친구는 언제나 공부를 했고 취업 준비를 했으며 직장을 얻자 일 때문에 바빠졌다. 그래서 패뜨리가 한국에 머문 1년여의 시간 동안 3-4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둘 다 너무 바빴다. 그래서 그 친구는 여자친구와 오직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패뜨리의 눈에 연인인데 일주일에 1-2번 정도 만나는 건 좀 이상해 보인다고 한다.
김화영: "사실 지금 또래들이 다 일 구하느라 바쁘다. 각자 바쁘기도 하고, 아직 구직 준비하는 애들은 바쁘면서 또 그런 게 있다. 아직 취직이 안 됐고 하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도 일부 친구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다른 애는 좀 떨어진다 싶은 회사에 갔다, 그러면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패뜨리: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갈등은 없다. 왜냐면 핀란드는 항상 평등에 초점을 맞춘다. 만약 내 친구가 대학에 못 갔다, 취업을 못했다 해도 난 정말 신경 안 쓴다. 내 친구는 똑같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는다."
김화영: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패뜨리: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최고!")
한국말이 서툰 패뜨리와 영어가 약간은 두려운(?) 화영씨, 하지만 고민을 나누고 서로 알아가는 데에 언어의 장벽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늘 대화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김화영: "핀란드는 평등이라는 고른 기반이 있다. 그 위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추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부럽다. 반면 우리는 들쑥날쑥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 또 정부도 핀란드의 사회보장제도를 많이 참고해서 정책을 지금처럼 경쟁중심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게 했으면.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패뜨리: "오늘 대화에서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았다.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친구들이 말해준 적 없었지만 알게 되어서 좋았다. 한국은 가장 먼저 사회가 더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 신경을 쓰고,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하지만 그런 점은 정말 중요하지 않다. 또 한국은 인구가 많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핀란드와 똑같은 사회보장제도를 갖긴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경제 발전과 계층 불평등 해소에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조은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