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깊이 애도합니다."
2009년 5월 23일, 겉으로는 평온해보이던 토요일 아침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이게 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87일 뒤, 세 달여가 지난 2009년 8월 18일 오후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오후 1시 43분경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렸을 내 '귀 빠진 날'을 우연히 기억한 지 몇 시간 안 되어 대한민국 가슴 한쪽이 큼지막하게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곳곳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보며 "거짓말 하면 가만 안 둡니다"를 서둘러 거듭 내뱉은 건 그 충격이 말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엄연한 사실이자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내 속이 아무리 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나는 그 충격을 줄이려는 뜻에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이었다. 불안한 마음에서였을까. 김 전 대통령 병문안을 오는 정치인들을 보며 무언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몇 마디 적어 의구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충격이 준 학습 효과 때문에 낯짝을 짐짓 바꾸고 김 전 대통령 병문안을 온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함 혹은 의구심을 드러낸 게 오히려 잘못이었는지, 듣고 보고도 믿지 못할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다시 끌어안아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다. 한 마디로 충격, 충격, 충격이다.
순식간에 진짜로 10년을 '잃은' 대한민국, '민심의 향방'이 궁금하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목소리가 있었지, 아마. 여전히 틈만 나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소리가 있지, 아마. 그런데,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소리가 허공을 떠도는 사이에 진짜 10년 치 역사를 '잃어버린' 충격을 대한민국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흔히 진보, 보수로 일컫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함께 아웅다웅하는 세상이지만, 현 정부가 사사건건 '소통'을 등지고 '불통'을 꽃피우는(?) 역행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마디씩 하는 데는 진보도 보수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4대강 관련 사업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정부 정책에 여권 내에서조차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라기보다 정책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 아무래도 불안하다 싶었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더욱 자주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 그런 걱정과 가슴앓이와 고민은 모르긴 몰라도 그의 건강 악화를 불러 왔을 것이다(속 좁게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 이게 다 무엇 때문이야'하는 말들은 안 하련다, 아직).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 서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뒤잇는 일이 되면서 정치권은 물론 평범한 서민들 삶 전반에 여러모로 복잡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일단, 충격이라는 한 마디로밖에 설명하기 어려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연이어 발생한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왜 이런 일이 연이어 터지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권 인사 누구나 쉬쉬 하면서도 가장 걱정스러워했을 문제인 '민심의 향방'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애 내내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장에 기여해 온 일은 그야말로 백이면 백 다 인정한다. 지지하는 정도에서 혹시 차이가 날지는 몰라도 그 일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역시 국정 운영 방향을 잡는 데 있어서 이른바 '햇빛정책'을 끈기 있게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된 것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노 전 대통령 국정 수행 결과에 대한 평가 역시 각기 다르다 하더라도).
8월 18일 오후, 정치권은 이미 계산기 두드리기 시작했을 터
이제 정치권은 누가 귀띔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발 빠르게 계산기를 누르게 되었다. 이전 정부들은 물론 현 정부와는 그야말로 판이하게 다른 두 정부를 각각 이끌었던 두 전직 대통령들을 한 해에 '잃은' 대한민국을 다독이며 제 목소리를 내자면, 이 나라 정치인들은 누구나 싫어도 웃고 마음에 안 들어도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가장 먼저는, 그야말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찬사를 곁들여가며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해야 할 테니 말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거듭 북한 방문 일정을 연기해가며 들고 온 소식은 대단했다. 대북 관광사업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나아가 좀 더 나은 관계를 이루는 발판을 마련하는 정도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한 마디로 그 이상이었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분명한 사안 중 하나일 이산가족 상봉행사 소식을 들고 온 일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북한과 얼굴을 붉혀가며 지금껏 껄끄러운 남북관계를 맺어온 것을 놓고 볼 때, 그리고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현정은 회장이 자국민을 돌려보내는 데 직접 영향을 끼쳤던 것을 놓고 볼 때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거듭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2009년은 이제 두말할 나위 없이 '서거 정국'이 되었다. 2009년 10월 28일에는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내년(2010년) 6월 2일은 제5회 전국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책 기조를 함께 한 두 전직 대통령이 한 해에 연이어 서거하게 되면서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 시점부터 이미 수 싸움에 들어갔고 이제는 대놓고 드러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분명, 누군가는 이 상황을 활용하고 누군가는 이 상황을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테니 말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기에도 바쁠 때에 정치권 향방을 생각해보는 게 다소 섣부른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리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한 상황이 진짜 벌어질 시점에 다다른 마당에 새삼 그 우려를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8월 19일 이후,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는 어디로 갈 것인지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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