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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신촌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1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신촌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1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18일 타계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은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3일 폐렴 증상으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2005년 입원 이후 세 번째 폐렴 증상 입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전제로 한 기사 준비에 돌입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지금도 비서실장('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이 세브란스병원 회견장에 섰다. 그는 "우리는 세브란스 의료진을 100% 신뢰한다"는 말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병원 측은 장준(호흡기내과)·정남식(심장내과)·최규헌(신장내과) 주치의 교수진과 의사·간호사 등 13명으로 전담팀을 구성해 24시간 김 전 대통령을 돌봤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입원 이후 공교롭게 주말마다 위기를 겪는 바람에 독실한 기독교 장로인 장준 교수는 4주 동안 일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한 모범적인 환자

김 전 대통령은 입원 사흘 만인 지난달 15일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다음날에는 산소포화도가 처음으로 정상치를 밑도는 86%까지 떨어져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자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고, 7월 22일 인공호흡기를 떼고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회복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가족과 비서진의 안도와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반병실로 옮긴 바로 다음날 폐동맥이 막히는 폐색전증이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이때부터 심각한 고비가 잇따라 찾아왔다. 특히 지난 9일에는 심장이 일시 정지되는 순간까지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은 그러나 누구보다도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한 모범적인 환자였다.

DJ가 대통령이 된 1998년부터 지금까지 12년째 심장 주치의를 맡고 있는 정남식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입원 당시를 거론하며 "어느 날 밤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엄청난 약물을 투입했는데 견뎌냈다. 내가 의사로서 겪어본 수많은 환자 중에서 그런 사람은 DJ가 처음"이라면서 건강 유지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치료를 위해 의사가 권유하는 걸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식사시간이나 약 먹는 시간 등 의사의 지시를 100% 신뢰하고 따른다."

김대중-이희호와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의 인연

이런 신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 역대 대통령 주치의는 늘 서울대병원 출신이었다. 서울대 출신이 최고라는 우리 사회의 일류병과 무관치 않았다. DJ는 대통령 재임 중에 이런 '불문율'을 깼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주치의로 허각범씨 교수(연세대 의대 내과)를 임용했다.

고인과 연세대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대통령기념도서관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고인보다는 오히려 부인 이희호씨와 더 인연이 깊다.

이화여전과 서울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62년 김대중과 혼인한 이희호씨는 만학에다가 만혼의 노산인 42살 때인 63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 홍걸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세브란스는 이희호씨 부친의 모교이기도 하다.

이씨의 부친 이용기씨는 송도고보와 세브란스의전(1917년 졸업)을 나온 의사였다. 이씨의 친정은 지금도 4대째 의사 집안이다. 이씨의 둘째오빠(이경호)는 평양의전을 나온 의사로 71년 대선 때는 후보 주치의로 캠프에서 일했다. 큰오빠의 둘째아들(이선택)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미국에서 의사로 있으며 큰오빠의 장손(이상학)은 증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다.

이씨는 세브란스병원과의 이런 인연으로 아버지 유품 중에 세브란스 졸업장과 의사면허장 등 자료 가치가 있는 것을 큰조카로부터 받아 남편의 심장 주치의인 정남식 박사를 통해 아버지의 모교에 기증했다. 이씨의 일가친척들은 이번에 DJ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는 이상학 교수를 통해 DJ의 병세를 실시간으로 챙기곤 했다는 후문이다.

병원에서의 그의 마지막 가는 길과 임종도 모범적

지난 일요일(16일) 기자가 병문안을 갔을 때만 해도 비서진과 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입원 5주째에 접어드는 동안 주말마다 고비를 겪었는데 지난 주말은 모처럼 평안하게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령에다가 오랜 인공 혈액투석으로 망가진 DJ의 병세는 이미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을 만큼 악화돼 있었다. 며칠 전에는 부인 이희호씨도 비서진에게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해 마음의 준비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의 그의 마지막 가는 길과 임종도 모범적이었다. 부인 이희호 여사,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씨)과 세 며느리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임종을 지켰으며, 권노갑ㆍ한화갑ㆍ한광옥·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와 안주섭 전 경호실장 그리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을 대표해 박지원 비서실장과 윤철구 비서관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18일 오후 1시 35분경 현대사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거인의 심장이 정지되었다. 의료진은 심폐 소생술을 하지 않았다. 그는 8분여가 지난 오후 1시 43분경에 86년의 생을 마쳤다.

이날 오후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공식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박지원 의원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세브란스 의료진께 감사드린다"고 다시 한번 의료진에게 신뢰를 표시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도, 그를 보내는 이들도 시종이 여일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김대중#세브란스#시종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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