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선생님 분향소에 가야지?""아빠, 당연히 가야죠."어제 밤, 가족과 함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여수시청으로 향했습니다. 분향소는 한산했습니다. 다른 곳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던데 여기는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어디에 분향소가 있는지 홍보가 안 돼 그런 것 같다. 여수는 1청사와 2청사로 나눠 분향소를 마련했다."이해가 되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이라 시민분향소가 여수시 여서동 문화의 거리에 마련됐는데, 이번에는 국장이라 여수시청 내에 마련되어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탓입니다.
"이제 민주주의 발전, 통일, 인권은 우리 몫!"분향 후, 방명록에 주소를 적었습니다. 아이는 주소 대신 "하늘나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위로해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쓰고 싶다더군요. 그런데 부끄러워 마음 속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편안히 쉬세요"라고 적더군요. 그걸 보고 취재에 나섰습니다.
분향소를 지키는 관계자는 "어제 낮 동안 분향소를 찾은 사람은 1, 2청사를 합해 1천여 명"이라더군요. "내일부터 많이 올 것"이라면서. 부부, 가족, 친구, 일행끼리 온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조원빈(9)군은 "편히 가시라고 절을 해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합니다. 친구와 둘이 온 김준식(31)씨는 "민중의 중심이었는데 가셔서 슬프고 안타깝다"면서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푹 쉬시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분향소를 지키던 최철훈 여수시의회 의원은 이날 분위기에 대해 "특이사항은 없었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갑작스런 서거여서 놀란 분위기였던 데 반해, 김대중 선생님은 연세가 많아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처럼 차분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이끌 유일한 지도자가 운명을 달리해 북받치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제 민주주의 발전, 통일, 인권은 우리 몫"이라더군요.
'망명'과 '가택연금'이 뭐냐고? 그건 말이야..."망명과 가택연금이 뭐예요?"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이들에게 김대중 선생님의 삶의 궤적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명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망명'과 '가택연금', '사형선고' 등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망명과 가택연금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뭇거렸습니다.
왜냐면 군부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처절하게 펼쳤던 투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망명'과 '가택연금'이란 단어가 생소할 거란 생각은 미처 못했거든요. 궁색하게 갖다 붙인 게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정부였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알아?""예, 알아요.""상해 임시정부는 왜 생겼을까?""나라를 잃어, 중국으로 이사 간 거잖아요.""바로 그거야. 내 나라가 있으면서도 핍박을 피해 국외로 나가는 걸 '망명'이라 그래. 망명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부당한 국가 권력에 대항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거야. 이 경우 대부분의 나라가 받아주고 보호해 줘. 이제 알겠어?" "그런 거였어요? 이제 알겠어요. 근데 가택연금은요?""가택연금은 집에 있으면서도 감옥에 있는 것처럼 밖에 못 나가게 가두는 거지. 이건 집에서 하는 감옥살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독재정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다는 이유로. 예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가택연금을 당했지."아이들은 이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답하면서도 땀이 삐질삐질 나더군요. 어찌됐건, 현장 교육이 중요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거란 생각은 왜 못했을까? 아이러니입니다. 정녕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요? 정녕, 반갑지 않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과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