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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71년 야당 대권후보로서 박정희와 맞붙어 싸웠고, 그때부터 정치적 핍박괴 박해를 받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는 것, 그리고 97년 대권4수 끝에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IMF 환난을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마침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아마 그게 전부일 겁니다.

반면 그 이전의 모습에 대해선 아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그의 진면목에 대해 언론마저 알리기를 거부했으니 그럴밖에. 까닭에 민주투사로서의 김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박정희 정권과의 기나긴 투쟁에서 피동적으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사실일까요? 전혀 준비가 안 되었던 사람이, 우연히 정치적 격랑에 휘말리고 그렇게 원치 않는 운명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거목으로 성장하고 변모하게 된 것일까요? 영화의 소재로서는 썩 구미가 당기는 스토리지만 그러나 사실과는 꽤 거리가 멉니다.

이하에서 젊은 시절의 그가 기고했던 글들을 통해 청년 김대중의 고민과 소원, 야망과 비전에 대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독재에 맞서 온 몸으로 항거한 기존의 민주투사 이미지 외에, 정치 경제 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정치한 이론을 자랑하는 지식인 김대중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아래 자료들 가운데 민족외교를 주창한 '국민에게 보내는 글'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문자료는 '역사전달자' 님이 작성한 <딴지일보>의 "청년 김대중에 대해서"라는 글에서 재인용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1. 김대중과 한국 경제

1955년 청년 김대중은 잡지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노동운동의 진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땅의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진로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이를 보면, 그의 경제사상이 기본적으로 어디에 바탕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 경제의 후진성을 지양하고 근대적 생산을 급속히 확충 발전시켜야 함을 서두른 나머지, 우선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놓고 그 후 서서히 노동자의 후생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논자가 많은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은 마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고기더러 동해 물을 끌어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개철지어의 장자고어와 마찬가지 모순으로서, 그간에 있어서의 노동자와 전 근로계급의 고초와 희생을 무엇으로 감당해 낼 것이며, 기술한 바 공산당과 대항해서 노동자가 어떻게 굳센 민주 진영의 선봉으로서 싸우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지향할 길은 죄악적인 착취와 지배를 자행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일방, 우리의 실정이 용납지 않고 겸하여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생산 능률의 후퇴를 면치 못하는 사회주의 자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결국 사유재산과 개인의 창의는 이를 어디까지나 존중하되 종래와 같은 자본만의 우위지배를 단연 배격하고 노동, 자본, 기술의 3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동함으로써 생산의 급속한 향상을 기하고 그 이윤의 분배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기술자 역시 응분의 참여가 허용될 것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종래 사회주의가 생산 수단의 사회화에만 중점하던 것을, 이제 생산수단보다도 기업운영과 이윤분배에 있어서의 사회화라 할까, 즉 노동자와 기술자를 자본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처우함으로써, 생산능률화의 감퇴를 가져옴이 없이 사회주의 본래의 목적인 근로계급의 복리의 증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새로이 각성된 세계적 사조의 지향이며, 이러한 경향은 북구제국을 위시한 구주 여러 나라와 심지어 자본주의의 본가인 미국에서까지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며 , 지금 미국에서는 각 기업체의 주권을 노동자에게 적극적으로 분배하는 노력이 의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 김대중의 두 가지 소원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연설에서 밝힌 청년 김대중의 '소원'입니다. 이를 보면, 그가 무엇을 위해서 평생 그토록 싸웠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 전라남도의 19개 선거구 가운데 무려 16개 지역에서 민주공화당이 승리했을 정도로, 박정희 정권의 관권선거가 위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민주공화당이 전남을 싹쓸이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거, 믿기지 않으시죠?

"나는 정치인으로서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비원이 있습니다. 내 소원은 돈이 아닙니다. 2억도 싫고 20억도 싫고 200억도 싫습니다.

내 소원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신라 삼국통일 이래 1500년 동안 처음으로 이렇게 국토가 갈라져 있는 사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해방후 국토가 20여 년이나 분단된 이 사실이, 나는 통일이 없으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평화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건설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박정권 아래에서 건설입네, 수출입네, 증산입네, 하면서 몇 사람만 잘살게, 몇 사람만 부자되게, 몇 사람만 배떼기 부르게 만들고 부익부... 재벌은 더욱 더 대재벌을 만들고 모든 국민은 헐벗은 가난뱅이요, 모든 국민은 더욱 빈익빈하게 만드는 이 특권경제를 타파하고, 내가 주장하고 우리 당책으로까지 채택된 중산층과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한 대중경제체제를 실현해서 나라의 혜택이 국가의 혜택이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 모든 사람의 피부와 뼈끝까지 골고루 돌아갈 그러한 올바른 경제정책이 이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의 절대적인 소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3. 김대중과 대중 민주주의

1970년, 김대중은 <1970년대의 비전>이라는 글을 통해 엘리트에 의한 통치의 효율성을 반대하는 한편,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 곧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출했습니다. 더디 가는 것같아도 결국은 대중이 승리한다고 말이죠.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란 말이 결코 정치적 수사에서 나온 빈말이 아니라는 걸 이를 보면 금세 알게 될 겁니다. 그가 왜 3당야합같은 사악한 꼼수름 배격하고 끝까지 국민과 함께 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이 점에서 그는 '바보 노무현'의 선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당야합은 호남의 김대중과 영남의 노무현을 하나로 연결시켜 준 한국 정치사의 대사건이었습니다.    

"철인정치를 구가한 고대 희랍의 플라톤으로부터 오늘의 개발독재 옹호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엘리트에 의한 통치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를 혐오하고 비판했다.

#1 대중은 무식하고 학식이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2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3 대중은 허망한 것을 약속하는 선동정객에 표를 매수당한다. #4 대중은 언제나 권위지향적이며 자조력도 발전의욕도 없다. #5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가 똑같이 1표씩 갖는 것은 불공평하다.

개발독재 옹호자들은 대중의 자치역량을 지나치게 회의하고, 지식수준의 열악함을 개탄하여 대중에 의한 지배를 회피한다...중략...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에 대한 피상적 관찰의 산물이다. 국민대중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개발독재 지지자들이나 엘리트 통치예찬자들이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우매하지도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봉건정치의 이론적 대종인 공자조차 대중을 가리켜 '지극히 어리석되 가히 속일 수 없는 존재'라고 갈파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대중은 언제나 자기의 올바른 지도 세력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독재정권의 타도에 앞장섰다.

대중은 언제나 역사의 편이었으며 또한 최후의 승리자였다. 나폴레옹도 진시황도 대중 앞에서는 무참한 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4. 김대중과 민족외교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대중은 10월 16일 '국민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자신이 주창한 민족외교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의 외교의 핵심인 햇볕정책이 어떤 사상적 기반 위에서 영글었는지 능히 감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민족외교를 제창한다.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협조를 기반으로 하고 지금까지의 쇄국주의적 외교를 지양, 중립국 외교관계를 신중히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외교는 어디까지나 민족의 이익과 주체성을 제일의적으로 하여 의존외교가 아닌 협조체제의 방향에서 모색되며, 우리의 내정충실과 평화에 대한 진지한 기여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다.

신민당의 외교는 전쟁을 억제하고 민족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큰 비중을 둔다...(중략)... 동시에 미.소.일.중공 4대국에 대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제를 공동보장토록 요구하겠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남북한 문제는 신중히 발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70년대에 통일이 이루어질 전망은 크지 않지만 남북 간의 서신교환, 기자교류, 체육경기 등 비정치적인 직접 접촉이 고려돼야 한다..."
(월간중앙 '75년 1월호 별책부록, <광복30년 중요자료집>에서 발췌.인용)

5. 김대중의 지도자론(論)  

1973년 김대중은 박정희의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 그곳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라는 책을 펴내게 됩니다. 거기에 실린 '경애하는 국민에게'라는 글의 첫머리 부분이 이렇습니다. 이를 보시면, 김 전 대통령이 어떤 마인드로 국민을 대했는지, 또 그가 어떤 태도로 일생을 살아 왔는지, 확연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도자라는 사람의 가치가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는 점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바로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었느냐, 또는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국민을 대했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자기 나라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느냐,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올바른 방향과 정책들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 그런 정책을 실현시키기위해 노력했는가 - 즉, 어느 정도로 충실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국민을 대했으며 봉사했는가, 그 실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 방식을 철저하게 가진 인물이라면 가령, 그 사람이 높은 지위에 앉았던 기간이 비록 짧았더라도 그리고 별로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역사 속에서 길이 기억하며 존경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국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정치의 기본 이념과 신조로 삼고 있다. 나는 국민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국민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것과 같은 정치 자세를 경멸하며 또한 증오한다."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기린답시고 "위대한 지도자"라고 했다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했더랬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라 불리는 까닭을 결코 이해했을 것 같지 않은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설마 노벨평화상을 받고 세계가 알아주는 거목이 됐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건 아니겠지요?




#청년 김대중 #'위대한 지도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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